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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분홍색 댄스복을 사다

가장 불행한 나이 40대 후반, 돌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우울해하던 정숙씨 이야기
등록 2020-12-14 08:52 수정 2020-12-16 01:49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아줌마!” 이럴 때 돌아보면 십중팔구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 대개 지적이나 무례가 따라온다. 후줄근한 차림이면 더하다고 나는 느낀다. “아줌마~.” 상냥하게 말하는 사람은 나한테 뭘 팔고 싶은 거다. 개랑 건널목에 서 있는데 뒤에서 불렀다. “아줌마!” 손짓으로 비키란다. 까딱까딱. 길 가로막고 섰던 거 내가 잘못했다. 그런데 부아가 치밀었다. “비켜주세요” 말로 하면 안 되는가?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사람끼리 서로 주고받기로 약속한 예의 좀 차려주면 안 되는가? 더 짜증 나는 건 내 분노가 정당한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아줌마라고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거 같다”고 엄마한테 하소연했더니 그런다. “너 자격지심 ‘쩐다’.”

‘가장 불행한 나이’ 47.2살 또는 48.2살

엄마 말이 반은 맞다. ‘아줌마’인 게 자격지심이 된 까닭은 한국 사회에서 지위가 없는 중년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내가 수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줌마를 향한 사회의 시선이라고 생각한 것은 내가 아줌마들에게 보냈던 시선이기도 했다. 피부색에 특정 속성을 얽어매듯 나이에도 그렇다.

40대 중반이 되고 노동시장에서 내 가치는 ‘파격 세일’ 중이다. 그래도 안 팔린다. 남성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여성에게 주름은 ‘존엄’을 위협한다. 정희진은 책 <나이듦 수업>에서 “가부장제, 이성애 제도에서 여성은 젊음과 외모라는 몸을 기준으로 남성은 권력과 자원이라는 사회적 요소를 중심으로 정의된다”고 썼다.

사실, 나한테 화가 났다. ‘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야.’ 40대가 되니 내가 생각했던 ‘나’와 실제 나 사이 어마어마한 크레바스(빙하 표면에 생긴 깊은 균열)가 정체를 드러냈다. ‘언젠가 뭔가는 되겠지’ 생각했는데 앞으로 쭉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팔자주름이 선명해진 이 낯선 몸 안에 15살 그대로인 내 욕망과 결핍이 갇혀 있다. 관계맺기에는 여전히 서툴고, 실수인 줄 알면서도 같은 행동양식을 주야장천 반복한다. 무려 40년 넘게 그러고 있다.

중간결산을 받고 자신의 적나라한 ‘꼬라지’에 절망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 다트머스대학 데이비드 브랜치플라워 교수가 132개 나라 자료를 분석해보니,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나이가 선진국에선 평균 47.2살, 개발도상국에선 48.2살로 나왔다. 긴장, 슬픔, 불안 등 15개 항목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니 그렇단다. 게다가 곧 내게 갱년기가 올 거다. 머리로는 ‘완경’이라 쓰지만 가부장제에 속속들이 절여진 내 마음은 ‘폐경’이라 읽는다.

“이대로 사라졌으면….” 김정숙(52)씨는 갱년기를 지독하게 앓았다. 개인차가 크지만, 영국완경학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45~64살 여성 응답자 42%가 갱년기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답했다. 안면홍조, 발한, 기억력 감퇴, 불면 등 증상도 다양했다. 정숙씨는 그 가운데서도 최상급 고통을 겪었다. 멀미처럼 시작한 어지럼증 탓에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 때문에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손바닥,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았어.” 같은 시기를 지나는 친구들까지 정숙씨에게 “유별나다”며 마음을 후벼 팠다.

라인댄스반 언니를 만나고 나서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건 허무함이었다. 열심히 살았다. 자식 둘을 성인으로 키웠다. 애견미용사, 피부미용사, 플로리스트 자격증도 땄다. 시도 배웠다. “그런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거야. 나는 왜 하나도 꾸준히 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50살이 되니, 이제는 늦었고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계속 났어.” 그 와중에 어머니가 근육병으로 쓰러졌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오빠 셋은 병간호를 맡지 않았다. 돌봄은 정숙씨 몫이 됐다. “극진하게 간호하고 싶었는데 엄마를 보면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었어. 다 부숴버리고 싶더라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숙씨는 자기를 파괴하는 생각에서 뛰쳐나가기로 했다. 몸치 박치지만 안 해본 걸 했다. 핑 돌면 부채처럼 펴지는 분홍색 댄스복을 사고 ‘라인댄스’를 신청했다. 50~70대 여자들이 줄지어 가요나 팝에 맞춰 춤을 췄다. 혼자 추는 춤과 달랐다. 다른 사람의 리듬에 내 몸을 맞추다보면 들러붙었던 생각이 멀어졌다. 한 71살 ‘언니’는 선글라스를 끼고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녔다. 그 가방에는 동생들에게 나눠줄 귤과 빵, 유산균 음료가 들어 있었다. “정수리에 얹을 뚜껑”이라고 새로 산 부분가발을 자랑하며 언니는 뭘 자꾸 먹였다. “예쁘다, 예쁘다” 하며 정숙씨를 터널 밖으로 밀어냈다.

고추, 상추, 가지, 무당벌레도 도왔다. 정숙씨는 어머니가 살던 시골집으로 내려가 텃밭을 가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고추랑 이야기하고 그래. 이상하게 사람을 안 만나도 외롭지 않더라고. 단풍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져.” 그 시골집에서 그가 “짐승처럼 울던 날”,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이것저것 하는 건 집중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야. 당신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야.” 그때 정숙씨는 생각했다. “이게 나구나.”

노년을 다룬 책들을 읽어보면, 행복곡선은 저점을 찍고 천천히 다시 오르며 U자를 그리는데 이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자기통합이다. 자신의 밝음과 어둠, 직선과 곡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이게 자기합리화나 자신을 처벌하는 자책과는 다르다고 책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에 썼다. “내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 그것은 자기 변화를 위해 유용한 질문이다.” 고미숙은 책 <나이듦 수업>에서 “인간은 81난을 겪어야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덜어낼 수 있다”고 했다.

‘생산’의 몸에서 ‘공감’의 몸으로

변화는 완전한 몸과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똥 싸고 늙고 죽을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했다.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건 불완전한 타인을 끌어안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행복곡선의 바닥을 찍고 나서 ‘생산’의 몸에서 ‘공감’의 몸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몸으로부터 숨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없으리라.”(마사 누스바움)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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