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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 받다 엉엉 운 딸

학원 온라인수업 받다가 엉엉 운 딸… 코로나19 시대 초등학생 입학시키기
등록 2020-05-05 00:09 수정 2020-05-07 14:35
4월20일 광주의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집에서 태블릿PC로 온라인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20일 광주의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집에서 태블릿PC로 온라인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서방, 이거 안 되는데?”

제1308호 표지이야기 취재에 정신없었던 4월6일 오후, 장모님 카톡이 왔다. 시계를 보니 초등학교 1학년 큰딸의 영어학원 첫 온라인수업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평소 손녀 둘(올해 유치원에 입학한 둘째 아이가 또 있다) 뒷바라지를 맡아주시던 장모님께 손녀 온라인수업 미션까지 추가됐다. 우리 장모님은 스마트폰 정도는 능숙히 다루는 이른바 ‘신식’ 어르신인데도 영어학원 누리집에 접속해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연동되는 온라인 강의 접속에 애를 먹으셨다. 주말에 내가 직접 했던 예행연습도 굉장히 복잡했으니 장모님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어른 학생’한테도 생기는 일

영상통화로 “박 서방, 안 되는데. 왜 안 되지”와 “장모님, 그거 말고 저거 눌러보실래요? 네네, 그거요”를 거듭한 끝에, 수업시간 10분이 지나고서야 로그인에 성공했다. 1시간짜리 수업을 마친 뒤 10분 쉬고 2교시가 시작되는데, 2교시에 즈음해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1교시가 끝난 뒤 딸은 아무 생각 없이 노트북을 꺼버린 뒤, 거실로 달려나와 둘째와 같이 텔레비전을 봤다. 10분 뒤 2교시 시작 때 다시 접속해주려던 장모님은 꺼진 노트북을 다시 켜, 처음부터 로그인 과정을 밟았다. 딸이 2교시에 접속하지 않자, 학원에선 아내에게 왜 안 들어오냐고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아내는 장모님께 다시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걸었더니 딸이 통곡하고 있었다. “1교시는 재미있었는데, 2교시 때 할머니가 뭘 잘못 눌러서 내 얼굴만 크게 나오고 선생님이랑 다른 애들 얼굴은 안 보였어. 나 이거 안 할 거야, 엉엉~.” 화상회의 플랫폼에서 뭔가 잘못 눌렀는데, 성질 급한 딸이 수업을 포기한 것이다. 전화통을 붙잡고 어르고 달래, “다음에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고 말한 뒤 전화를 끊으니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다. 온라인수업은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온라인수업이 ‘수업’이 되려면 이를 돌봐줄 어른이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온라인수업은 어린이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 학생에게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내가 다니는 야간대학원 온라인수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컴퓨터 설정을 잘못해서 교수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 들려요”를 채팅창에 반복하는 학생이 숱했다. 교수님 역시 튕겨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수강생이나 교수님이 발표하는 중에 자신의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업무 관련 대화를 그대로 생중계하는 수강생도 있었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초등학생은 오죽하겠나.

긴급 돌봄교실에선

학원 온라인 강의야 안 하면 그만이지만 학교는 아니다. 초등 1학년 개학은 초·중·고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늦은 4월20일로 결정됐다. 딸은 오전 9시부터 시간에 맞춰 EBS 방송을 보는 것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3학년 이상 언니 오빠들은 (쌍방향) 온라인수업을 시작했다. 교육부와 학교 쪽에선 개학 준비에 나름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였다.

온라인 개학이 결정될 즈음 학부모에게 텔레비전, 태블릿PC 등 온라인수업을 할 여건을 갖추었는지 확인했다. 개학 전 담임선생님이 먼저 전화해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생활습관은 어떤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상담했다. 온라인수업에 필요한 ‘학습꾸러미’도 개학 전에 나눠줬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받으러 올 수 있도록 해서, 온라인 개학 일주일 전이던 4월13일, 마스크를 끼고 학교에 가 아이가 앉을 자리도 확인하고 학교 구경도 했다.

그때 긴급 돌봄교실을 살펴봤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모를 위해 마련된 곳이다. 석 달째 유치원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봐주고 계신 장모님의 피로가 누적된데다 동생의 방해 없이 아이가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 듣는다 해도 TV 속 선생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고민되던 차였다. 늘 집 안에서 텔레비전 보는 시간만 늘어가는 게 걱정돼, 우리 부부는 아이를 긴급 돌봄교실에 보내기로 했다.

4월20일부터 아이는 매일 아침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삐뚤빼뚤 글씨를 쓰고, 학습꾸러미도 빠짐없이 채워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 먹어보는 ‘학교 급식’도 맛있다고 했다. 앞니·옆니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아 급식으로 나오는 큰 사과를 못 먹는 것 말고는 괜찮다 했다. 아이의 불만은 아이들과 재밌게 놀지 못한다는 것. EBS 수업을 하지 않을 때는 혼자서 보드게임을 한다고 했다. “친구랑 놀고 싶어도 친구 자리로 못 가. 선생님이 친구랑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안 된대.” ‘거리 두기’도 잘 유지되나보다.

사실, 초등학교 입학 준비는 나에게 아내 출산 준비 이상의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아이가 새롭게 만날 선생님, 친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도 걱정이 많았다. 유치원이야 사정 생기면 안 보낼 수도 있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기에 더욱 걱정됐다. 그래서 학교나 정부의 대응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이나 태블릿PC, 인터넷이 없는 집도 있을 텐데, 디지털 격차가 분명 있을 텐데 괜찮을까. 1~2학년에게 일방향 수업이 교육 효과가 있을까. 학습꾸러미도 좀 예쁘게 만들어주지 흑백 프린트가 뭔가.

아이들이 손잡고 학교 가는 날을 기다리며

그러나 지금 상황에 만족하냐는 물음에 “코로나 없어지면 괜찮아지겠지”라고 답하는 딸을 보면서 살짝 머쓱해졌다. 전례 없는 위기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온라인 개학을 했고 이에 따라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접속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온라인 개학을 위해 단 며칠 만에 300만 명이 접속 가능한 온라인학습 플랫폼이 구축됐고, 아이들이 통신료 부담 없이 접속할 수 있도록 통신사들은 데이터를 무료로 풀었다.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와 담임선생님의 학생들 현황 파악이 잘 이뤄지고 부모들이 이에 잘 응한다면, 뒤늦은 개학에 따른 문제도 최소화될 수 있을 것 같다.

4월27일과 28일 이틀 동안, EBS 초등 1학년 수업의 ‘봄’이라는 과목에선 학교 시설을 알아보는 내용이 다뤄졌다. 학교에선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 놀이기구와 교실 사진을 이어붙인 동영상을 보내줬다. 모든 아이가 친구들 손잡고 학교를 구경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란다. 곧 괜찮아지겠지.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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