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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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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는 곁에, 신청은 먼 곳에

등록 2020-02-08 16:26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우리 애가 배달하다가 의식불명에 빠졌는데 한 달 만에 깨어났어요. 병원비 1500만원이 나와서 있는 카드 다 끌어모아서 긁었는데, 산재 신청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려움에 가득 찬 질문들

오토바이 헬멧 블루투스로 넘어오는 전화 목소리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의식불명은 불행이었고, 깨어난 건 희망, 병원비는 절망이었다. 도로 소음 때문인지, 답답한 상황 때문인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통화했다. 큰 병원이면 대부분 산재 지정 병원이라 치료받는 동안 병원에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산재 신청을 왜 미리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병원에선 산재 신청을 천천히 해도 된다고 했단다. 태어나서 산재라는 걸 단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병원 원무과의 무심한 대답은 커다란 권위였다.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는 기간의 생계비와 병원비는 이른바 전문가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시간차 때문에 사람의 생계가 크게 흔들리고 빚지고, 비싼 카드 이자가 빠져나가게 생겼다.

병원은 산재 지정 병원이었지만 산재 신청은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하라고 안내했다. 1500만원의 병원비만큼 근로복지공단 방문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는 일하고 있어 근로복지공단 방문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의 근무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출근해야 하는 때이다. 노무사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사고의 경우는 확실해서 노무사까지 필요 없다고 안내했다. 사실 자신이 없었다. 혼자 산재 신청을 하다가 포기할까 두려웠다.

배달 라이더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는 종종 사고 소식이 올라온다. 산재가 뭔지도 몰랐다가 산재가 된다고 하면 그때부터 두려움에 가득 찬 질문들이 올라온다. 아예 산재신청서 사진을 올리고 뭘 써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대표이사 이름 하나 적는 것도 과제다. 가령 배민라이더스 대표는 김봉진이 아니다. 배민라이더스는 우아한형제들의 자회사인 우아한청년들이라는 회사의 서비스 이름일 뿐이다. 산업구조를 모르는 라이더들은 자신의 대표 이름을 찾는 것부터 과제다. 사업장관리번호가 뭔지, 목격자와 증거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르면 칸을 비워도 되는지 일일이 묻는다. 병원 직원에게 물어도 될 것 같지만, 산재 지정 병원의 직원은 서류 빈칸을 채워오라고 어려운 용어가 쓰인 용지를 던져줄 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전화를 걸어오는 노동자들이 있다. 4대 보험이 뭔지 산재비를 이만큼 내는 게 맞는지부터 사망사건의 유족까지 사연도 사람도 다양하다. 회사와 병원에 물어야 하지만 말을 꺼내는 것조차 두렵다.

산재보험에 직접 가입해야 한다?

배달노동자뿐만이 아니다. 배달업체를 운영하는 동네 배달대행 사장님들로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의 상담전화가 온다. 최근 발표한 한국노동연구원의 ‘배달업 종사자 현황 실태 파악 및 보호 방안 연구’를 보면 배달대행 라이더 252명 중 0.4%만이 산재보험에 가입됐다. 이를 보도한 에선 배달대행 라이더가 직접 가입해야 하는데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가입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전속성 있는 배달대행 라이더들의 산재보험은 업체 사장이 가입시켜야 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잘 몰라도 자동으로 산재보상이 되는 게 맞다.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자고 환자들이 따로 신청서를 쓰는 경우는 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산재신청서를 쓰고, 돈 내고 서류를 떼고, 증거 자료를 찾아다니는 것만큼 서글픈 장면이 있을까. 다친 사람에겐 치료를, 위험을 유발하는 사람에겐 책임을 지우는 원칙 위에서 산재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때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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