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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응우옌티탄

등록 2019-04-01 00:4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왜 여성과 아이뿐이던 우리 가족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나요.” 지난해 4월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원고로 나와 승소를 이끌어낸 두 베트남 여인. 동명의 응우옌티탄이었다. 1968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135명이 희생당했다는 꽝남성 하미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1957년생)은 당시 11살. 온 가족을 눈앞에서 잃고, 자신은 수류탄에 왼쪽 청력 상실, 왼쪽 다리와 허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또 다른 응우옌티탄(1960년생). 당시 8살. 같은 해 74명이 희생됐던 꽝남성 퐁니·퐁넛 학살에서 어머니 등 다섯 가족을 잃고 살아남았다. 왼쪽 옆구리에 총상을 입은 채.

그날, 진짜 법정은 아니었으나 한국 지지자들의 힘에 기대 떨리는 증언대에 섰던 두 여인. 눈물의 증언을 했고, 결국 승소했다. 무심한 세월 속 상처는 그대로지만 진짜 법정에서 퐁니·퐁넛 학살을 증언할 그날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평화운동가가 된 두 여인

승소 후 4월 제주에 온 이들은 제주4·3 생존 여성들의 손을 잡고 서로의 아픔을 나눴다. 누구나 처음부터 투사가 되지는 않는다. 원래 싸움꾼인 어머니는 없다. 몸에 새긴 전쟁의 피해자인 두 응우옌티탄이 20여 년간 진실을 말하라며 찾아간 곳은 결국 어딜까. 평화의 문을 여는 거였다.

4·3 71주년을 앞두고 이들에게 제주4·3평화재단이 주는 제3회 제주4·3평화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봄소식이 전해졌다(본상은 으로 제주4·3을 세상에 알린 소설가 현기영에게 돌아갔다). 어쩌면 이 상이 그들의 오래 단련된 전쟁의 슬픔과 고통의 시간에 조금은 위로가 됐을까. 상이라니! 두 여인의 마음엔 어떤 파도가 일었을까. 긴 시간 베트남의 상처 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를 통해 이들의 소감을 먼저 들을 수 있었다.

“상의 기쁨을 같은 아픔을 가진 베트남의 다른 피해자 유가족들과 나누고 싶고, 이번 상이 내가 평화의 집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이는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그는 “한 아이의 어머니인 나는 내 아들이 이런 고통을 두 번 다시 받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번 수상이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갈 젊은이들이 우리가 겪은 역사를 잘 아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퐁니·퐁넛 마을의 응우옌티탄은 “수상 소식에 당혹했다”며 “한국은 내게 무서운 나라다. 법정에 서는 일은 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퐁니·퐁넛에서 희생된 74명의 영령을 대신하는 심정으로 그날을 증언했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놀라움과 기쁨 속에 학살로 죽은 어머니, 많은 마을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손을 잡아준 친구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이들은 지금 ‘유감’을 넘어선,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벌이며 평화운동가의 길을 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서 끊임없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평화운동가의 삶을 살다 떠난 김복동 할머니처럼. 그러면서 최근엔 그들과 같은 생존자 유가족들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경험과 함께 한국군 민간인 학살 진상 조사와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에 함께하자고.

광주에서 만나는 베트남

우리가 사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땅에서든 앞서 과오를 범한 이들이 진실에 응답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짐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이어받지 않았는가. 우리 땅 곳곳이 깊은 고통에 갇혀 있다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슬픈 얼굴이 얼마나 많은가. 마침 제주전에 이어 고경태 기록전 ‘한마을 이야기-퐁니·퐁넛’ 광주 전시회’(4월3~30일)가 5·18기념문화센터 전시실에서 열린다. 응우옌티탄의 증언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4월의 첫날 상 받으러 이들이 다시 제주에 온다. 두 평화운동가가 노랑 꽃술 눈부신 이 찬란한 봄기운을 조금은 채우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허영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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