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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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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리조트 입에 걸레를 문 회장

직원을 노비로 아는 회장 일가족… 취업규칙에 괴롭힘 행위 예방

명시하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7월1일 시행 앞둬
등록 2019-01-12 13:43 수정 2020-05-03 04:29
직원을 노비로 아는 사장들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명빈 마커그룹 대표가 직원을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 갈무리 화면.  연합뉴스

직원을 노비로 아는 사장들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명빈 마커그룹 대표가 직원을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 갈무리 화면. 연합뉴스

경기도 가평 북한강 변의 한 아름다운 리조트.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롭고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최고급 개인 별장형 리조트다. 성현(가명)씨는 멋진 리조트에서 품위 있는 손님들을 상대로 행사를 기획하고 영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웨딩·행사 업체를 정리하고 가평으로 내려갔다. 리조트는 17동이었고 큰 건물은 2천 평 규모였다. 4인 기준 ‘강가의집’ 주말 요금이 143만원. 고급 리조트를 표방해 일반인보다 부유층과 기업 연수의 이용이 많았다. 북한강을 마주하는 150평 규모의 야외 ‘인피니티 풀’을 새로 개장했다. 그는 이 ‘품격 있는 리조트’가 마음에 들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입사 첫날부터 40일 동안 하루 휴식도 없이</font></font>

성현씨는 리조트 예약 상담과 별장 투어 업무를 하는 영업관리부에서 일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상담과 방문이 이어졌다. 주 5일, 하루 9시간 근무를 하기로 했지만 회장은 그를 날마다 불러냈다. 출근카드나 출근부도 없었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회장은 성현씨와 부서 사람들에게 날마다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게 했다. 그는 출근부를 만들어 자신과 팀원들의 출퇴근을 기록하게 했다.

회장은 부인, 딸과 함께 리조트 내 별장에서 살았다. 회장은 아무 때나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장소는 회장이 사는 별장이었다. 회장은 성현씨 혼자 부르기도 했고, 영업관리부 직원을 모두 소집하기도 했다. 청소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전화 응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밤샘 근무 뒤 퇴근하지 못한 채 바로 업무를 보라고 했다. 성현씨는 입사 첫날부터 4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회장은 입에 ‘걸레’를 물고 살았다. 개새끼, 씹쌔끼, 또라이새끼, 미친놈, 씨발놈이라는 욕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어느 날이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리조트 투어를 요청받았다. 성현씨는 차로 손님에게 리조트를 안내했다. 회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 새끼 큰일 날 새끼네. 미친 새끼 아냐. …이거 미친 자식이네. 미친 새끼야, 이거 상식이지, 이 새끼야. …너 같은 새끼 처음 보네. 이거, 이 새끼 관둬야지 안 되겠네. 정신병자 아냐. 거기 앉아갖고, 병신 같은 거. 난 너 같은 새끼 젤 싫어하거든. 그만두려면 그만두고.”

회장의 폭언은 20분 동안 계속됐다. 리조트 투어를 회장에게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영업관리부 업무이고, 하루에도 투어를 수십 건 하기 때문에 일일이 보고할 일이 아니었다. 성현씨는 죄송하다고 연거푸 사과했지만, 회장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는 호출과 폭언에 조금이라도 불만을 보이는 직원은 예고도 없이 잘려나갔다. 회장은 다른 직원들이 있는 곳에서 “너 같은 새끼는 나랑 안 맞아. 그냥 꺼져, 이 새끼야. 또라이 정신병자야!”라는 욕설을 퍼붓고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서울에서 같이 근무하다 그가 제안해 리조트에서 일하게 된 동료들이 회장의 폭언과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리조트를 떠나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떡볶이 사달라, 집밥 해달라, 텃밭에서 일해라</font></font>

회장 부인도 직원들을 부렸다. 퇴근도 하지 못하고 야근하는 성현씨에게 떡볶이를 사다달라고 했다. 운전해서 원하는 장소에 태워줘야 했다. 직원들을 불러 별장을 수리하라고 했다. 회사에서 실장 직책을 달고 있지만, 직급 부서도 없고 하는 일도 없는 회장 딸도 마찬가지였다. 비 오는 날 전화해서 우산을 갖다달라고 했다. 회장 부인과 딸은 영업관리부 직원 3명을 불러 단체카톡방을 만들고 잡무를 시켰다. 호텔, 레스토랑, 웨딩홀 등 많은 곳에서 일해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저는 불만조차 내비치지 않고 죽어라 일했습니다. 잘리면 생활고로 시달리는 게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하 직원들 앞에서 온갖 폭언과 욕설을 듣고, 정말 개처럼 근무했던 모습이….”

견디다 못한 성현씨는 직장갑질119에 신고했다. 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을 넣어 초과근무수당 500만원을 돌려받았다. 퇴사한 직원 2명도 체불임금을 받았다. 그는 회장의 폭언에 대해 형법상 모욕죄로 경찰에 고소했고, 현재 검찰로 넘어간 상태다.

직원을 노비로 아는 사장, 저축은행·마을금고 지점장, 농·수·축협 조합장들의 갑질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한 신입사원은 대표의 개인 운전기사는 물론 대표 부인의 자동차 세차를 해야 했다. 직원들은 대표의 개인 밭에서 옥수수를 따서 팔기까지 해야 했다. 주말 휴일에도 직원들을 불러 일을 시키고, 시간외 근무수당을 주지 않았다.

한 저축은행의 새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술을 강요했다. 한두 잔 정도가 아니었고, 남녀도 가리지 않았다. 업무가 끝나면 개인 사정과 관계없이 술자리에 오게 했다. 회식을 거절하면 회사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다. 중국집에서 회식하는 날엔 먹고 난 짜장 그릇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게 했고, 일반 식당에서는 냉면 사발에 술을 섞어 마시라고 했다.

한 주유소 사장은 직원에게 집밥을 해달라 하고, 사업주의 텃밭에서 농사일을 시켰다. 쉬는 날 전화해 주유소에 나와 일하라 하고, 3분 늦게 근무지에 도착했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근무 중 지역 건설회사 대표인 손님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했는데도 단골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하고, 합의서 작성을 강요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장님, 냉면 사발 권주도 범법입니다</font></font>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국회를 통과해 7월1일 시행된다. 처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을 법률에 도입했고, 피해자 보호와 사용자의 2차 가해 처벌 규정을 마련했으며,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 인정 범위를 넓혀 직장갑질을 줄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가해자 처벌 조항이 없고, 가해자가 대표인 경우도 많은데 대표에게 신고해야 하는 등 보완해야 할 내용이 많다. 하지만 취업규칙의 필수적 기재 내용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사항이 포함되도록 했다는 점은 의미 있다.

직장갑질119는 2만5천 건의 제보 사례를 바탕으로 과 을 발표했다.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폭행, 폭언, 모욕, 협박, 비하, 무시, 따돌림, 소문, 반성, 강요, 전가, 차별, 사적 지시, 배제, 장기자랑, 태움, 감시 등 32가지로 명시했다. 욕설이나 폭언 등 위협적·모욕적인 언행, 회식, 음주, 흡연 또는 금연을 강요하는 행위 등이다.

처벌 조항은 없지만 취업규칙에 명시한 행위를 하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된다. 욕을 달고 사는 리조트 회장님, 직원들에게 냉면 사발로 술을 먹이는 은행 지점장님도 자신의 행위가 범법이라는 사실을 알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후원계좌 010-119-119-1199 농협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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