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좋았다. 조카를 돌보는 일도 즐거웠다. 주변 사람들은 천성이라며 유치원 교사를 하라고 했다. 대학 전공으로 주저 없이 유아교육과를 선택했다. 작은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하다 지인의 소개로 ○○시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규모가 크고 월급도 괜찮아 ‘얼집 샘’(어린이집 선생님) 사이에선 부러움을 사는 직장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직장에 맞는 외모를 가져라?</font></font>어느 날이었다. 덩치가 큰 샘이 걸어오고 있었다. 원장이 말했다. “이래서 부모님들이 좋아하겠어요? 몸이 그래서 빨리빨리 움직이겠어요?” 다른 교사들이 보고 있는 자리였다. 덩치가 큰 샘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원장은 직장에 맞는 외모를 가지라고 했다. 20㎏ 이상 빼지 않으면 만 1살 반으로 배정하겠다고 했다. 싫으면 집에 가라고 했다. 얼마 뒤 원감샘이 말했다. “원장님이 원하시는데 지방흡입술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원장은 화장하지 않은 교사 한 명을 지목해 말했다. “화장 안 하면 부모님들이 봤을 때 아파 보이지 않겠어요? 병 있는 거 아니냐고, 부모님이 싫어해요.”
아침 8시30분이 출근 시간인데 8시20분까지 오라고 했다. 1분만 늦어도 지각 처리, 지각 3회면 연차를 깠다. 그런데 정작 원장은 셔틀버스를 핑계로 8시40분이 넘어 도착했다.
원장은 교사들에게 공부를 강조했다. 유아교육과 비전공 교사들에게 말했다. “10월까지 결정하세요. 그만두든지, 공부해서 학위를 받든지.” “다른 원은 대학원도 나오고 보통 석사인데, 우린 쪽팔려서 다른 원장들과 말을 못한다니까.” “기업으로 치면 우린 대기업에 종사하는 교사고 월급도 많이 받는데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원장은 방송대를 입학하고 4년 내에 졸업하지 않으면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서약서에 교사의 서명을 받았다.
원장은 호봉이 높아 월급이 많은 교사들을 싫어했다. 10호봉 이상 교사들을 수시로 불렀다. “호봉 수가 그렇게 높아 월급도 많이 받아가면서, 그만큼 값어치를 하고 있으세요?” 날마다 교사를 불러서 괴롭혔다.
교사들은 ‘잊혀진 계절’이 오는 게 두려웠다. 10월1일부터 원장과 상담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몇 년차인데, 월급을 얼마 가져가는데, 왜 일을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괴롭혔다. 상담 기간에 근로계약을 연장할지, 이직할지가 결정된다. 원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내보내고 싶은 교사들은 사고를 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가게 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못 견디고 어린이집을 떠나도 원장의 ‘갑질 유령’이 교사를 따라다닌다. 최근 그만둔 교사가 수도권에 있는 어린이집에 원서를 냈다. 전화를 받은 원장은 교사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다. “어디 가서 취직할 때 나한테 연락이 안 오겠어? 내가 어떻게 말하겠는지 생각해봐.” 아이를 좋아하는 천성은 원장의 갑질 앞에 유리 조각처럼 깨졌다.
수도권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10년 가까이 일했다. 원장은 딸 결혼식뿐만 아니라 지인의 결혼식까지 교사들을 불러 음식을 나르게 하고,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원장은 원아 이름도 잘 모르고, 어린이집 운영에도 관심 없었다. 업무 시간에 사우나에 다니는 일도 잦았다. 취미는 홈쇼핑, 주문했다가 쓰지 않는 물건은 교사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선물로 주고 서명을 받았다. 교사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장의 손자가 마실 음료를 사러 마트에 가야 했다. 어느 날 원장실에 담배 냄새가 나고 연기가 가득했다. 문제를 제기했더니, 원장이 말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데 돈 보태달라고 한 적 있어요?” 교사는 이런 원장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직장갑질119에 편지를 보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보육교사 875명 온라인 모임</font></font>전남의 한 복지관 어린이집 보육교사. 교회 부목사가 관장으로 있는 복지관이었다. 교사들은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매월 십일조와 후원금 5만원을 냈다. 노인 무료급식을 위한 바자회. 참깨와 참기름 세트 10상자, 배즙 세트 10상자를 45만원에 팔아야 했다. 살 사람을 찾지 못한 교사는 45만원을 후원계좌로 입금해야 했다. 채용하기로 한 교사가 오지 않았다. 힘든 평가 인증 기간이 끝나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교사가 그 시간을 ‘땜빵’ 해야 했다. 교회 장로의 조카였다. 교사가 물었다. “어린이집이 있는 이유가 아이들에게 질 좋은 보육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인의 돈을 벌어주기 위해서인가요?”
직장갑질119 온라인모임 ‘어린이집 갑질근절 보육교사모임’(band.us/band/68845059)에는 보육교사 875명이 가입했다. 게시판에 원장의 갑질을 신고하고, 서로 위로한다. 노동법을 문의하고, 대처법을 함께 고민한다.
“요즘 원장님 눈에 가시가 되어, 하루하루 힘겹게 다니는 중입니다. 폭언이라는 것이 어디까지가 폭언입니까? 욕설은 하지 않지만 비아냥, 고성, 결재 파일 책상 위에 집어던지기 등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저 때문에 어린이집이 시끌하네요. 알아서 나가라는 건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9월 초 올라온 글이다. 밴드 담당자인 권남표 노무사가 제보 사례를 중심으로 어린이집 원장 ‘5대 갑질’을 정했다. ①블랙리스트. 이력서에 과거 어린이집 경력을 적도록 하고, 원장에게 확인 전화를 한다. 노조에 가입하고, 권리를 주장하거나, 원장에게 바른말 하는 교사를 나쁜 선생으로 매도해 재취업이 어렵게 한다. 아동학대, 횡령 등 어린이집의 문제도 고발하기 어렵다. ②페이백. 근로계약서 8시간 노동, 근무시간 6시간. 통장에 8시간 임금 받고, 현금으로 2시간분을 반납한다. 처우개선비 등 지자체 수당을 받으려면 하루 8시간 이상 노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③CCTV 괴롭힘. 원장이 찍은 CCTV를 다른 교사들과 함께 돌려본다. 아이가 우는데 대처하지 않았거나, 촬영 각도 때문에 구별이 불가능한 장면을 아동학대라며 협박한다. 모든 교사 앞에서 인격모독을 당한다. 찍힌 교사는 따돌림을 당하고, 치욕이라고 생각해 그만둔다. ④연차 대체. 공휴일 휴무를 연차휴가 사용으로 대신하게 한다. 1년에 연차를 단 한 개도 쓸 수 없고,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원장이 휴가를 베푼다. ⑤휴게시간. 근로기준법 8시간 근무시 1시간 무급 휴게시간을 이용한다. 돌봄 노동의 특성상 휴게시간 사용이 불가능한데 휴게시간을 10분씩 6회로 나눠 사용하라고 한다. 실제 9시간 노동하고 8시간 임금만 받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조는 갑질 막는 강력한 무기</font></font>어린이집 갑질 바이러스를 퍼지게 한 건 정부의 직무유기다.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는 손 놓고 있다. 직장갑질119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갑질 제보가 많은 도시의 국공립어린이집 전체 교사에게 설문조사를 하자고 했지만,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가가 직접 어린이집 교사를 고용하는 사회서비스원 설립이 논의되지만 보육교사를 제외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갑질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다. ○○시 어린이집도 교사들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하느님 위의 원장님’도 교사들이 뭉치면 움찔한다. 권남표 노무사는 “노조는 갑질을 막는 강력한 무기”라며 “노조가 두렵다면 온라인모임에 가입해 갑질을 제보하고 정보를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원장 시중들고, 잡무에 시달리고, 감시당하고 스트레스 받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돌보기 어렵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도 ‘어린이집 원장 갑질’은 사라져야 한다. 부모들이 할 일도 있지 않을까?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후원계좌 010-119-119-1199 농협)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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