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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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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은 ‘친위 쿠데타’를 알고 있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탄핵 국면 때

서소문 사무실과 청와대 수시로 오가며 계엄 관련 교감한 듯
등록 2018-09-04 12:00 수정 2020-05-03 04:29
국군기무사령부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던 2008년까지, 역대 사령관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이 김재규, 전두환, 노태우 등이다. 소격동 시절은 갔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서소문 분실을 이용하면서 서소문 시대가 왔다는 말이 나왔다. 연합뉴스

국군기무사령부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던 2008년까지, 역대 사령관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이 김재규, 전두환, 노태우 등이다. 소격동 시절은 갔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서소문 분실을 이용하면서 서소문 시대가 왔다는 말이 나왔다. 연합뉴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주소지는 원래 청와대 옆 서울 종로구 소격동이었다. 청와대까지 걸어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2008년 경기도 과천의 현 위치로 옮기기 전까지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가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보다 청와대와 더 가까이 있었다. 그 자리에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섰다.

기무사가 주둔지를 과천으로 옮기기 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무사령관과 독대를 거절했다. 최고 권력과 멀어지면서 기무사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는 기무사가 방첩 등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됐다는 말과 다름없다.

서소문 보안분실은 대통령 독대용?

이명박 정부에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대통령 독대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국정원, 검찰, 경찰, 군 등 다양한 정보 라인 중 군의 보고를 가장 신뢰했다고 한다. 기무사의 보고는 다른 기관과 달리 해석이나 과장 없이 팩트(또는 팩트를 가장한 자료)가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때 사정을 잘 아는 군 고위 관계자가 에 한 말이다.

최고 권력자가 다시 기무사를 찾기 시작하면서 기무사는 날개를 달았다. 소격동 사령부가 사라진 대신 서울 중구 서소문에 있던 기무사의 보안분실을 사령관이 대통령 독대를 준비하기 위한 사무실로 이용했다. 소격동 시절보다 더한 ‘서소문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돌았다.

기무사 불법 계엄의 문건 작성과 실행 준비를 책임졌다는 혐의를 받는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도 재임 때 대통령을 독대하기 전 서소문 사무실을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 때와 달라진 점은 정기 독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필요할 때 수시로 불렀다. 오히려 더 가까워진 셈이다. 사령관이 비선 실세와 관련 있다는 말도 공공연했다.

2016년 10월 이후 이른바 ‘탄핵 국면’에서 사령관의 행적은 이전과 또 다른 점이 발견됐다. 독대 전 참모들과 자료 준비를 위해 서소문 사무실을 이용한 이전과 달리, 청와대 방문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행적이 감지됐다. 그때 사정을 잘 아는 군 고위 관계자는 “이전 사령관들은 대통령 독대 뒤 주로 경복궁 근처 공관이나 과천 사령부 쪽으로 퇴근했다”며 “하지만 탄핵 국면에서 조 사령관은 서소문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보고 뒤 곧바로 (참모들과) 논의해야 할 (청와대의) 긴급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 방문 못지않게 서소문 사무실의 행적이 중요한 이유다. 서소문 사무실 관련 조사도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군 쪽에서는 서소문 사무실에 상설 인력이 자리를 잡고 계엄과 관련해 청와대와 교감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드나든 기록도 추가로 확인됐다. 이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날인 2016년 12월9일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을 처음 보도한 이후 드러난 사실들이다. 그날을 전후한 11월15일, 12월5일, 이듬해 2017년 2월10일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한국방송(KBS)이 8월29일 조 전 사령관의 관용차량 운행 기록에 근거해 밝힌 내용이다. 방문한 날짜를 당시 상황과 견줘보면 기무사와 청와대의 교감이 애초 예상보다 더 끈끈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현실 가능성 높아진 ‘친위 쿠데타’

첫 방문인 11월15일은 국회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 2선 후퇴’에서 ‘퇴진’으로 당론의 수위를 높인 날이다. 촛불집회 인원이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선 지 사흘 뒤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 내에서 병력 투입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11월10일 구홍모 수방사령관(현 육군참모 차장)은 ‘소요 사태 발생시 무력 진압’을 국군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군 위수령 선포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11월13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한 15일은 정권 내 위기감이 본격적으로 고조되기 시작한 시기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촛불집회 규모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커진 것이 결정적 이유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던 2016년 12월9일 청와대 방문과 함께 12월5일도 방문한 기록이 확인됐다. 12월5일은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12월2일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겠다고 당론을 모았다가 재차 12월9일로 일정을 미룬 날이다. 12월3일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 232만 명의 사상 최대 촛불집회가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이 집회 뒤 여당인 새누리당의 비박계가 국회 탄핵 표결에 참여할 뜻을 밝히면서 탄핵소추안 의결은 현실화됐다. 청와대에 결정적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3차 방문일인 12월9일은 알려진 대로 탄핵 날이다.

방문 목적은 4차 방문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듬해인 2017년 2월10일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100일을 지난 날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탄핵을 요구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갈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국자유총연맹 등이 속한 애국단체총협의회는 3월1일 맞불 집회를 예고했다. 이희범 애국단체총협의회 사무총장은 그해 2월9일 와 한 통화에서 “그동안 지켜보다가 ‘너무하지 않느냐’는 애국 시민과 상식 있는 시민들이 일어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3월1일 100만 명이 나올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런 혼란 속에 조 전 사령관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라 직무정지를 당한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면 그것만으로도 문제다. 친위 쿠데타는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 될 가능성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촛불집회 직전으로 당겨진 ‘계엄 시간표’

서소문 사무실 운영, 청와대 네 차례 방문 등 조 전 사령관의 행적이 드러나는 와중에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계엄 시간표’도 지금까지 추정해오던 11월에서 촛불집회 직전인 10월로 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 의혹을 수사 중인 민군 합동수사단(합수단)이 촛불집회 직전 청와대 내부에서 ‘희망계획’이라는 계엄 문건을 작성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합수단은 현재 ‘희망계획’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는지 청와대, 기무사, 국방부, 합참 등 당시 계엄에 관여했던 부처를 중심으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먼저 합수단은 ‘희망계획’이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돼 현재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이라는 증언을 확보하고,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내용을 열람한 뒤 이 문건이 기무사가 2016년 11월 초 작성한 ‘현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사항’이나 2017년 3월3일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원제목 ‘현 시국관련 대비계획’) 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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