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가대표팀이 7월15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프랑스의 러시아월드컵 우승은 세계 모든 이주민의 승리다.”
미국 뉴스채널 《CNN》은 7월15일(현지시각) 프랑스가 크로아티아를 4-2로 꺾고 2018 러시아월드컵 우승컵을 차지하자 프랑스팀 우승의 영광을 전세계에 있는 이주민에게 돌렸다. 프랑스 국가대표팀 선수 23명 중 21명이 이민 가정 출신임에 주목한 것이다.
이민자 2세 그리에즈만과 음바페공격형 미드필더로 월드컵 기간 내내 경기를 조율하고 7경기에서 4골 2도움으로 팀의 우승을 이끈 앙투안 그리에즈만은 독일계인 아버지와 포르투갈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다. 그는 결승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프랑스 우승의 원동력이 됐고, 러시아월드컵 브론즈볼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만 19살로 7경기를 뛰어 4골을 터뜨리고 ‘제2의 펠레’로 등극한 킬리안 음바페는 카메룬 출신의 축구 코치였던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핸드볼 선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바페는 파리 북쪽 봉디 출신인데 이곳은 대도시 외곽 빈민가인 ‘방리유’ 중 하나다. 방리유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은 같은 지역 출신의 축구 선수들을 동경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다. 1958년 만 18살로 월드컵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한 브라질의 펠레 이후 60년 만에 ‘십 대’ 월드컵 골잡이가 된 음바페는 월드컵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골(4골)을 기록한 십 대 선수가 됐다.
음바페는 월드컵 우승 보너스 전액을 어린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등 통 큰 선행으로 주목받았다. 프랑스 언론 보도를 보면 음바페는 장애 아동과 투병 중인 어린이를 돕는 ‘프르미에 데 코르데’ 재단에 30만유로(약 4억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음바페는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기 전 프랑스축구협회(FFF)가 경기마다 지급하는 수당을 모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자신의 고향인 봉디 청소년 25명을 러시아월드컵에 초청해 프랑스 대표팀의 경기를 볼 수 있게 했다.
미드필더 폴 포그바는 기니에서 프랑스 파리 외곽 도시로 온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는 말리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아들이다. 수비수 사뮈엘 움티티는 카메룬에서 태어나 2살 때 프랑스로 건너왔다. 이들을 포함해 프랑스 국가대표팀 21명 중 17명이 아프리카와 중동 출신의 이민자였다.
역사상 두 번째로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처음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국가대표팀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우승 멤버 22명 중 12명이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다.
지네딘 지단은 1953년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이민 온 알제리 이민 가정 출신이고,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종과 출신국의 다양성이 주목받았던 1998년 프랑스 대표팀은 프랑스의 삼색기인 ‘블뢰, 블랑, 루즈’(파란색, 흰색, 붉은색)를 패러디한 ‘블랙, 블랑, 뵈르’(흑인, 백인, 아랍계)라는 별명을 얻었다.
프랑스 사회에서 커지는 이민자와의 갈등다국적 축구팀의 월드컵 우승은 프랑스의 이민자와 갈등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2005년 봉디를 포함한 방리유에서 흑인과 아랍계 청소년을 주축으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죄 없는 십 대 소년 3명이 경찰을 피해 도망치다 변전소로 잘못 들어가 2명이 감전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프랑스 전역의 이민자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실업 등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 2개월의 소요 사태로 건물 300채와 차량 1만 대가 불탔고, 3천 명이 체포됐다. 1998년 월드컵 우승 이후 다양한 인종의 조화에 열광했던 프랑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이유다.
2015년에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만평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파리의 시사풍자지 편집국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 편집장 등 12명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이슬람국가(IS)의 총격 테러로 시민 9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6월에도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20대 흑인 청년이 검문을 받다가 경찰 총에 맞아 숨진 뒤 대규모 폭력시위가 일어났다.
전세계 언론들은 악화를 거듭한 프랑스의 반이슬람·반난민·반이주민 정서가 축구대표팀의 러시아월드컵 우승을 계기로 바뀔 수 있을지 주목한다. 프랑스 진보 성향 일간지 은 “거리로 몰려나온 수백만의 축구팬들이 선수들의 출신을 개의치 않고 삼색기를 흔들며 국가 를 불렀다. 출신지가 어디든 모두 나라를 하나로 통합한 영웅들”이라고 표현했다. 《CNN》은 “지구상 어떤 나라든 이민자가 비이민자와 같은, 세계 공동체의 시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이민이 우리 모두를 위한 더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미래를 향한 키를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찬사를 쏟아냈다. 순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터키 출신인 독일의 공격수 메수트 외질, 가나계인 독일의 수비수 제롬 보아텡 등도 이민자 출신 선수들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여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골든볼 모드리치는 난민 출신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패했지만 크로아티아의 준우승을 이끌고 월드컵 최고 선수상인 골든볼을 받은 루카 모드리치는 전쟁 난민 출신이다. 1991년 일어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때 할아버지가 세르비아 민병대에 목숨을 잃었고, 집이 불탔다. 모드리치는 이때부터 7년 동안 난민 생활을 했다. 인구가 420만 명에 불과한 크로아티아의 월드컵팀을 준우승에 올려놓은 1등 공신 모드리치는 조국에서 ‘왕’이 아니라 ‘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미국 경제지 은 평가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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