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죽음교육 강연회에서 한 꼭지를 맡아 강의했다. 중·고등 대안학교에서 한 수업 내용을 되살려 청소년 죽음교육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였다. 강의가 끝난 뒤엔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림책을 활용한 죽음교육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내 마음속에도 작은 불씨가 살아났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웰다잉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재직했던 고등학교의 옛 동료 한 분이 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웰다잉 수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죽음은 생명과 뗄 수 없는 주제임에도 지금껏 공교육 현장에서 죽음을 말하는 건 일종의 금기였다. 제대로 웰다잉 강의가 가능할지 몰라서 적극적인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강연회를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절실한 삶의 이야기는 죽음교육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역설을 다시 새겼다.
대안학교에서 했던 수업 기록을 찾아보니 학생들이 써낸 글쓰기 과제가 꽤 있었다. 웰다잉 수업에 대해 학생들이 쓴 평가서 중 한 학생의 글이 눈에 띄었다. “웰다잉 수업을 통해 죽음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 좋은 영화를 많이 봤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대목을 읽으며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수업 중 아이들이 비통한 심정을 토로한 적도 많았다. 웰다잉 수업을 시작한 바로 그해, 연달아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세월호 사고를 비롯해, 학생과 교사가 학교 외부 활동 중 터미널 화재로 크게 다쳤다. 그해 가을에는 평소 몸이 약했던 한 학생이 세상을 떠났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학생들은 죽음에 대해 많은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한편으론 반세기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죽음 관련 영화에 아이들이 깊이 공감했다. 그중 하나가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살다)다. 30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며 기계처럼 살아온 초로의 주인공이 시한부 암 진단을 받는다. 절망에 빠져 방황하던 그는 어느 카페에서 중대한 결심을 한다. 남은 시간, 진정 의미 있는 일에 투신하겠다는 것. 그가 카페 계단을 내려올 때, 2층 발코니에서 케이크를 들고 생일파티를 시작한 여학생들이 아래층 학생을 향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은 마치 죽음을 향한 계단을 내려가는 주인공에게 생명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처럼 절묘하게 연출됐다. 다시 태어난 그의 삶에 헌화하는 감독의 메시지와, 삶과 죽음이 혼재된 장면이 주는 감동은 생생했다. 이런 감동을 다시 학생들과 나눌 수 있을까?
다엘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부쩍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죽음을 다룬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었는데 한번은 다엘이 놀러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놀고 올 동안 죽지 말고 있어!” 아이 마음에 철학의 씨앗이 심어지는 건 죽음을 성찰하기 시작할 때일 것이다. 웰다잉 수업을 제안했던 선생님께 말하고 싶다. “학교에 저를 불러주세요. 학생들 마음에 소중한 씨앗을 심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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