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근무 여건과 관련해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딪쳤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20년 나이를 먹은 아름드리나무가 많아 봄이면 목련, 벚꽃 등이 축제처럼 꽃망울을 터뜨리곤 한다. 그러나 올봄은 살풍경한 폐허의 현장으로 변해버렸다. 나무들이 여기저기 하늘을 향한 검은 기둥만 남은 채 무언의 항변을 하는 것이다. 단지 내에서 대대적인 전지 작업이 있었는데 이렇게 벌목 수준으로 다 잘라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팔순의 어머니가 창밖을 내다보며 탄식하셨다. 해마다 봄꽃 피는 걸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데 그걸 빼앗느냐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해보니 가지치기를 자주 하는 것도 비용이 드는 일이라 한번에 대폭 잘랐단다.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어 주민 몇 명이 모여 문제 제기를 하고 생태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나무 형태에 상관없이 가지를 많이 잘라내는 것을 ‘강전정’이라 하는데,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면 수형 회복에 3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봄꽃 나무는 원래 꽃이 진 뒤 전지를 하는 등 고려할 게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어떤 나무는 가지 하나 없는 몽당연필 모습으로 거의 고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근래 들어 지나치게 잦은 수목 소독 주기와 소독 약품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겨 업체에 약품 성분을 물었다. 그때그때 성분이 달라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근 단지의 수목 소독은 연 3~4회라는데 우리 단지는 거의 매달 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내가 사는 도시의 조례에 따르면 수목의 자연적 생장을 중요시해 가로수의 지나친 가지치기를 금지하며,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경우에도 해당 부분만 가지치기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우리 단지 내 수목에도 같은 내용을 적용하는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안건을 내기로 했다. 의견을 공문으로 정리하고 수목 소독 업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서를 관리사무소에 보냈다.
단지 곳곳을 돌며 나무들의 참상을 사진에 담기로 한 날, 마침 광장에서 놀고 온 다엘에게 그곳 나무들은 어떠냐고 물었다. 다엘은 자신이 아는 최대한 나쁜 단어들을 동원해 답했다. “나무를 다 잘라서 아주 흉측하던데? 망측해!”
어린 시절 그토록 큰 세상이던 고향 마을에 어른이 되어 들렀을 때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어른 눈으로 볼 땐 초라하기만 한 풍경이 어린 시절에는 끝없이 펼쳐진 길과 높은 나무들로 가득하지 않았던가. 내 아이의 눈에 지금 마을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삶의 여러 굽이를 넘어온 어머니 눈에는 어떻게 기억될까? 이런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주민 참여로 풀어가는 우리 동네 이웃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을 일 하나하나 세심하게 감시하고 참여해야 함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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