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폐허의 전쟁터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가슴에는 치명상을 입고, 온몸을 압도하는 통증에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만히 다가온 손길이 차갑게 식어가는 얼굴을 만져줍니다. 깊이 팬 상처를 매만진 다음 온몸의 피와 땀을 닦아주며 속삭입니다. 이제 일어나보라고. 통증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일어설 수 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랍니다. 눈을 뜨고 자신을 일으켜준 이를 보았을 때 또 한번 놀랍니다. 그는 생후 4개월의 작은 아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엄마 잃은 아기였습니다.”
10여 년 전 다엘을 입양할 무렵 써뒀던 메모 내용이다. 갑작스레 위중한 병으로 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마음속 통증 가운데 아주 잠깐씩 숨통이 트였던 건 입양을 생각할 때였다. 그러나 당장 내가 살겠다고 입양을 한다면,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채 붕대로 감아놓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지나야 치유가 될까? 입양해도 괜찮은 시기는 언제인가?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입양기관의 수녀님이 해준 얘기가 있었다. 자녀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원인을 모른 채 죽는 일이 거듭된 부부가 있었다. 그렇게 세 아이의 죽음을 겪고 유전적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된 뒤, 입양으로 새 생명을 품게 되었다고 했다. 먼저 간 아이를 애도하는 시간이 분명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서류상 문제로 다엘의 입양이 한참 지연될 때 수녀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입양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 유무와 상관없이, 입양을 앞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이 주는 울림이 클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한 생명이 오는 길은 인간의 좁은 시야를 넘어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슬로건을 늘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입양, 우주가 낳고 지구가 키우는 일.’
얼마 전 어느 젊은 부부를 만났다.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입양을 고민한다기에 먼저 사별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이후 우연하게도 자녀 사별 뒤 입양을 준비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거듭 전해들었다. 국가적 재난 사고의 유족으로서 입양을 생각하고 모임에 연락했다가 갑자기 소식을 끊은 경우도 있었다. 복잡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사별한 자녀의 대체로서 이기적 마음으로 입양을 원하는 게 아닌지, 그분은 스스로에게 혹독한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문 속에 이미 자신만의 답이 들어 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이들을 위해 소박한 모임을 준비하려 한다. ‘그림책 읽기로 사랑하는 이를 애도하기’(약칭 ‘그사이,애’). 언어를 넘어서 마음을 울려주는 따뜻한 매개체를 통해 슬퍼하는 이들과 만나고 싶다. 그건 오래전 내 딸에게 한 약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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