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엘과 한때를 보내는 필자. 정은주
다엘이 자신을 낳아준 분에 대해 말할 때 보이는 감정은 조금씩 변해왔다. 어린 시절엔 잠자리에 누워 궁금증을 이야기하며 나중에 함께 찾아보자는 약속을 하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자신을 키우지 않고 ‘포기’한 것에 분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사춘기 초입에 접어든 지금은 센 척하는 태도까지 더해져 이렇게 말한다. “난 관심 없어. 낳고 나서 떠났으니까 나랑 관련 없는 사람이야. 혹시 연락 오면 스팸 신고하고 수신 거절할 거야.”
다엘의 태도에 대해 입양 상담가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입양아 내면의 깊은 슬픔을 은폐하려는 방어심리이며, 추정컨대 억압적인 가정 분위기로 인해 아동이 입양모에게 충성을 나타내려고 감정을 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상이 어렵지 않은 것은 나도 상담실 문턱이 닳도록 다녀봤고 입양 관련 책을 숱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입양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은 북유럽 해외 입양인들을 만난 뒤 서구의 입양 담론을 편향적으로 전파해왔다. 이들의 현실 인식이 구름 위를 걷듯 허공에 있다보니 한국의 독특한 입양 문화와 구체적 상황은 관심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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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입양계의 바이블, 라는 책을 펼쳤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저자인 낸시 베리어는 임상 카운슬러로서 생후 3일 된 큰딸을 입양했고 둘째 딸은 자신이 낳았다. 그는 입양 자녀와 낳은 자녀에게 똑같이 사랑을 주었지만, 큰딸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고통스러워했고, 사랑을 주고받는 건 위험한 일이라 보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베리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양은 절대 회복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생모에게서 분리된 본질적 고통을 인정하고 이를 특수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 베리어의 일관된 주장이다. 지금껏 학계에서 혈연의 근원적 유대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헤쳐왔음에도, 이 책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일반화의 오류를 서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다엘에게 낳아준 분을 상상해서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더니 민망한 결과물이 나왔다. 웃음을 머금은 표정의 ‘똥’을 그려놓은 것이다. 이를 본 지인은 기겁했지만 나는 동화 을 떠올렸다. 아이들에게 똥은 친근하고 일상적이면서 무겁지 않은 대상이다. 나는 다엘이 입양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분노를 넘어 자신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다. 낸시 베리어의 다음과 같은 말이 허구임을 안다면 말이다. ‘생애 초기, 생모로부터 분리 또는 거부된 경험을 한 아이는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갖는다’는 말.
누구에게나 상실은 피할 수 없는 경험이다. 낙태를 염두에 두었던 이가 낳은 아기,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던 신생아, 일찍 부모가 사망한 아이, 방임과 학대를 겪은 아이 등 어떤 경우라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는 없다. 과거에 머무르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건 자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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