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혼모 단체 ‘인트리’에서 개최한 좌담회에 참석했다. 미혼부모 연구를 진행하는 일본 도요대 교수와 우리나라 미혼모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미혼모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미혼모는 아이의 생부가 양육비 지급은 않고 면접교섭권을 수시로 행사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빼앗듯이 아이를 데려가서 키즈카페 같은 곳에 방치하곤 한다는 것이다. 의무는 묵살하고 권리만 챙기는 남자에게 한국의 법은 한없이 관대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국가의 복지 혜택을 알아보기 위해 수없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스스로 발로 뛰었던 경험을 얘기했다. 그러나 정작 공공기관에 발을 디디면 담당자들의 무례한 태도에 거듭 상처받아야 했다. 사생활을 함부로 파헤치기 전에 미혼모의 개인 상황에 맞는 정서적 지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이날 만난 미혼모들은 낙태 등 성적 자기결정권,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당당히 주장했다. 앞으로 학교 성교육에서 미혼모 이슈를 다뤄 자신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현실적 대처법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들의 합리적인 주장은 국가의 탁상행정이 보이는 무능을 넘어 복지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이와 대척점에 서는 부조리한 주장을 떠올려본다. 학생에게 미혼모 교육을 하면 미혼모 발생을 조장한다거나, 입양 활성화를 강조하면 원가정 해체를 불러온다는 말 등이다. 심지어 한 매체의 기자는 미혼모를 인터뷰하면서 ‘미혼모를 줄일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는 대신, 당사자의 정체성을 정면 부인하는 질문을 한 것이다.
5월11일은 정부가 지정한 ‘입양의 날’이다. 몇 년 전부터 이날을 ‘싱글맘의 날’로 기념하는 단체들이 등장했다. 미혼모에게 양육 기회를 주지 않는 현실을 고발하며 ‘입양의 날’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사회보장이 잘된 선진국에선 미혼모가 자기 아이를 입양 보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좋은 지적이다. 두 가지 상황을 먼저 고려한다면 말이다. 시설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 수에 비해 예비 입양부모 수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 여성에게 피임이나 낙태, 입양 또는 양육에 대한 실질적 선택권이 있는 선진국의 현실이 그것이다.
같은 날을 기념일로 삼은 것은 역설적으로 미혼모와 입양가족이 한 배를 탔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무의미한 대립 구도를 만드는 대신 미혼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일에 매진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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