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엘과 함께 국회의 입양법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 입양가정에서 일어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입양특례법 전체를 개정하자는 토론의 자리였다. 아동학대 사건이 입양가정에서 일어나면 모든 입양부모는 죄인이 되곤 한다. 입양 절차가 더 엄격해야 학대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을 거듭 듣기 때문이다.
입양법을 전면 개정해 절차를 더욱 까다롭게 하면 아동학대를 피할 수 있을까? 현행법상 입양 절차는 결코 허술하지 않다. 수많은 서류와 면접, 가정조사가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신청자가 입양을 포기한다. 그럼에도 입양가정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기다렸다는 듯 ‘입양을 활성화하지 말고 절차를 더 엄격히 하라’는 보도가 이어진다. 아동학대는 가족 형태와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며 오히려 친부모에 의한 학대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묻힌다. 입양가정의 아동학대를 특별하게 다루는 건 정당한 일일까?
아동학대라는 주제를 탁월하게 다뤄 저자가 대통령의 편지까지 받았던 책 을 읽으며 나는 이 현상의 원인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아동학대의 원인은 가족 형태가 아님에도 이를 부각한다면, 특정 형태의 가정에 대한 편견이 커질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의붓어머니의 학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재혼가정 차별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는 친권의 과도한 행사와 체벌을 당연시하는 사회 인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합리적 논조는 입양 주제에 이르면서 달라진다. 그야말로 ‘후진’ 입양제도 탓에 입양된 일부 아이들이 사지에 몰렸고 입양가족은 사회가 만들어준 ‘대안’가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혈연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에 매몰되는 자기모순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이 입양가족을 외형적으로는 정상가족이라 하지만 혈연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비정상가족으로 바라본다. 나는 뛰어난 책의 저자가 왜 입양에는 유독 모순된 견해를 가졌는지 알고 싶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입양가족과 진지한 대화를 하자고 요청한다.
저자는 ‘입양은 전문적 도움이 필요한 전 생애의 과정’이라는 말을 인용해 입양가정을 평생 관리가 필요한 특수가정이라 보았다. 나는 타인이 규정하는 전문적 도움이 아니라 내가 원할 때 스스로 선택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진정 입양가정의 아동학대 문제에 현미경을 대고 싶다면 덜컥 법 개정부터 들고나오지 말아야 한다. 섬세한 인프라 마련과 사회 인식의 지난한 개선 과정이 먼저다. 지금 필요한 건 선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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