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겨울올림픽 응원차 미국에서 온 국외 입양인 20여 명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함께한 자리는 오붓하고 따뜻했다. 원탁을 가운데 두고 국내외 입양가족이 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맞은쪽 한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그의 이름은 데릭 파커,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소아마비를 앓던 아기로 입양기관 문 앞에 유기된 뒤 미국으로 입양됐다. 국내에서 남자·장애·유기 아동, 이 세 조건을 갖춘 아이는 입양되기 어렵다.
백인 동네에서 휠체어 장애인으로 살아온 파커는 모든 면에서 남과 달랐으나 부모님은 항상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대했다. 파커가 말했다. “나의 출생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내가 알 수 없는 혈연이 어딘가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웃으며 덧붙였다. “이 중에도 내가 모르는 나의 친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의식적으로 휠체어에 눈길을 두지 않음으로써 배려하려 했다. 그러나 파커의 태도는 나의 얕은 배려가 의미 없을 만큼 여유 있고 당당했다. 유인물에 적힌 프로필을 살펴봤다. “자라면서 혈연과 입양가족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며 내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늘 똑같은 사랑을 주었다.” 이어서 다음 대목에 눈길이 갔다. “우리 가족 모두 놀이, 휴가, 그리고 일상생활을 좀더 느린 이동 스타일에 차례로 맞춰나갔다.” 이런 환경에서 파커가 장애인이라는 것, 인종이 다른 입양인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성공한 사업가로서 아내,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국외 입양은 사라져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이날 만난 입양인들은 국외든 국내든 영구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며 입양이 준 기회를 자신들의 삶으로 증언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공무원이 말한 ‘국외 입양인의 90%는 불행하다’는 견해를 전해듣고 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90%를 뒤집어 생각해야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입양법 개정 움직임의 바탕에 ‘국외 입양은 강제 이주에 따른 아동학대’라는 주장이 있다는 사실에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국외 입양인 중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기에 한국 사회는 우리의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매체를 통해 발언할 수 있기 바랍니다.” 아동복지 전문가인 수전 콕스의 말이다. 그는 미국의 국회와 백악관에서 아동복지, 입양과 관련해 여러 차례 발언한 입양인이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콕스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다엘이 내 어깨에 기대고 있던 순간을 담은 사진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앞으로 가정 아닌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가 한 명도 남지 않는 날까지, 국내외 입양가족은 연대해 편견과 싸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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