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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섬

등록 2018-06-26 16:53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모든 시작은 길목에 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제주 사람들이 곧잘 하는 말. “올레를 잘 찾아야 한다.” 길목을 잘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생존을 위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난민’이다.

1%의 섬이다. 하나 정치의 계절이면 뉴스 복판에서 주목받는 섬. 세계자연유산의 섬, 평화의 섬, 국제자유도시 제주. 섬의 얼굴은 여럿이다. 그 옛날, 간혹 망망대해에서 길 잃은 이방인들이 섬으로 표류해오던 섬이기도 했다. 난민처럼.

난민 같은 처지였던 제주

그런 섬이었다. 작가 현기영은 ‘바람 타는 섬’이라고 했다. 해방공간의 한때, 집도 절도 없이 산으로 바다 밖 일본으로 쫓기고 쫓기는 4·3의 시대를 살아야 할 때는 난민 같은 처지였다던, 그런 섬이기도 했다. 그렇게 섬의 역사로 들어서면 슬픈 초상들이 보인다. 해서 한 역사학자는 제주를 근현대사의 축약, 한반도의 축소판이라 했다. 그래서일까. 깊은 내상의 그림자들이 저녁 바다 위를 흐르는 붉은 노을처럼 떠다닌다.

가끔 우리는 자신에게만은 직접 마주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미디어를 통해 보는 ‘난민’의 모습이 그랬다. 한데, 어느 순간, 현실이 됐다. 제주섬도 당혹했다. 내전이 벌어진 모국에서 징집을 피해 온 젊은이 등 500명 넘는 예멘 사람들이 이 제주섬에 상륙했다. 그들도 낯설고 우리도 낯설다. 저 머나먼 낯선 나라 먼 전쟁이라 여겼던 것이 가까이 왔으니. 한눈에 소통하는 세상. 무비자로 30일간을 살 수 있다는 제주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인권국가 한국. 살기 위해 그들이 찾아낸 희망이었다. 한데, 언어도 불통. 절심함과 두려움의 눈빛으로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는 중이다. 산을 넘었다 해도 또 산이다. 일단 제주도는 어업 관련 취업 등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한시적 처방을 내놓았다. 올해 난민을 신청한 예멘인만 549명.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난민 수용 문제를 놓고 찬성이냐 반대냐 제주 밖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격하게 나온다. 여론조사까지 벌인다. 뜨거운 파란의 길에 국민 의식까지 시험대에 오르는 형국이다. 국제사회까지 지켜본다. 이젠 정부도 근본적 처방을 내놓아야 할 때가 왔다. 선례가 될 일이기에.

생각해본다. 사실, 그동안 세계의 문제이기도 한 이 문제는 우리 안에 이미 들어온 과제가 아니었을까. 관심 밖의 일로, 애써 멀리하려 한 저변도 있지 않았을까. 당장 눈앞에 반짝이는 것에만 눈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순간순간 세계의 움직임을 보는 시대. 세계는 움직인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탓은 아닐까.

프랑스에서 오랜 생활을 해온 지인이 그런다. “세계는 하나예요. 프랑스도 난민을 계속 받아왔어요. 지금 반대하는 이유가 자신들도 먹고살기 힘든데 하는 측면에서지요.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좀더 나아간다면 숨겨진 여성문제도 계속 가지고 가야 하고, 남북문제도 다 같이 갖고 가야 하는 얘기처럼 피할 수 없는 문제지요.”

제주가 못 가본 길, 난민

‘난민’. 정말 쉽지 않은 답. 난민의 섬으로 시선이 쏠린 제주도. 일단 제주가 지닌 근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물론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그동안 현실적으로 대하지 못했던 우리 안의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이제부터라도 깊은 성찰을 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시사한다. 가령 앞으로 난민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물음도 놓여 있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 그곳은 가봐야 안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향해 가는 한반도 평화의 길 찾기 노정처럼. 제주도의 길은 지금 미지다. 오랜 폭풍우의 섬, 제주는 그렇게 바다 위에 떠 있다. 그리고 이제 난민의 파도처럼 한바탕 파고를 넘어야 할 태세다.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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