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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혜택 있어도 못 누린다

제1213호 표지이야기 ‘난임이 찍은 낙인’ 보도 그 이후…

난임 여성들에게 듣는 정책의 한계점
등록 2018-06-07 03:00 수정 2020-05-03 04:28
제1213호 표지이야기 ‘난임이 찍은 낙인’이 나간 뒤 독자들의 여러 반응이 있었다. “사회적 난임을 만드는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힌 한국 사회의 민낯을 봤다” “난임 정책이 저출산 극복을 위해 여성을 인구 재생산이라는 ‘기능재’로만 인식해서 접근하고 있지 않는지를 살펴봤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에 보내줬다. 난임 여성들은 “난임 시술을 받고 있는데 기사를 보고 공감이 갔다” “정부 난임 정책에 대한 후속 기사를 부탁한다” “첫째 아이만큼은 경제적 걱정 없이 낳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는 부탁과 바람의 말을 적어 보냈다. 그들은 난임 정책의 한계점도 이야기했다. 난임 여성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제1213호 ‘난임이 찍은 낙인’ 표지이야기의 기사들.

제1213호 ‘난임이 찍은 낙인’ 표지이야기의 기사들.

“정부는 단순히 7회(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 건강보험 혜택을 부여했다고 끝인가요. 건강보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점점 복지 사각지대로 몰리는 난임 부부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세요.”

배아 유전학적 검사 등 비급여

5월29일 경기도 수원에서 기자에게 장문의 전자우편을 보낸 이명희(37·가명)씨를 만났다. 32살에 결혼한 그는 3년째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다. 자신과 남편 둘 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2년 전에는 직장을 그만뒀다. 도저히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인공수정 3차, 신선배아 2차, 동결배아 3차까지 했다. 지난해 연말정산 때 한 해 시술비만 모아보니 1천만원 가까이 됐다. 그래도 “남편과 나 닮은 아이 한 명 갖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2017년 10월부터 난임 부부의 시술비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보험 적용 시술 횟수는 체외수정 7회(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 인공수정 3회다. 시술별 본인 부담은 체외수정은 △신선배아(일반수정) 49만원(수가 162만원) △신선배아(미세조작) 57만원(191만원) △동별배아 23만원(77만원) △인공수정 8만원(27만원) 등이다. 진찰료, 검사료, 마취료, 약제비 등 건강보험이 별도로 적용되는 것을 제외한 금액이다. 남은 배아를 냉동보관하거나 반복 유산이나 착상 실패 환자에게 적용하는 보조제 등 일부 환자에게만 선택적으로 사용되는 약제는 전액 본인 부담이다. 태아나 배아의 유전학적 검사도 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 적용 연령은 부인 연령 기준 만 44살 이하다.

“신선배아-동결배아 교차 지원을”
“건보 적용 후 비급여 부분이 늘어 시술 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호소하는 난임 여성이 보낸 병원 영수증과 시험관 시술을 위해 필요한 과배란 주사기.

“건보 적용 후 비급여 부분이 늘어 시술 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호소하는 난임 여성이 보낸 병원 영수증과 시험관 시술을 위해 필요한 과배란 주사기.

이런 정부의 난임 정책을 난임 부부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이씨는 “문재인 케어가 실행되면서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 적용이 됐다. 그래서 남들은 돈 걱정 없이 시술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 총 체외수정 7회를 건강보험 적용해준다. 하지만 이걸 다 못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신선배아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결배아만 가능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신선배아와 동결배아 교차 지원이 안 된다. 결국 한쪽 시술밖에 못하는 사람은 다른 쪽 혜택을 못 받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난임 여성들이 주로 하는 것이 인공수정이다. 인공수정마저 어려우면 체외수정을 시도한다. 정자와 난자를 동시에 추출해 수정시켜(배아) 바로 자궁에 이식하는 ‘신선배아 이식’을 한다. 이에 실패했을 때 냉동보관한 배아를 추가 이식하는 ‘동결배아 이식’을 한다. 이때 난소과자극증후군으로 채취 뒤 해당 주기에 이식이 어렵거나 자궁내막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신선배아 이식을 하지 못한다. 이 경우 배아를 동결한 뒤 동결배아 이식을 해야 한다.

김민정(36·가명)씨 역시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신선배아-동결배아 교차 지원”이다. “신선배아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어 동결배아 이식만 가능하다. 신선배아를 하고 싶어도 내 몸 상태가 이런데 어떻게 하는가. 결국 신선배아 4회는 그림의 떡이다. 내게 필요한 건 신선배아 4회를 동결배아 4회로 바꿔 지원받는 거다.”

이씨는 시술 차수 차감 기준 문제도 지적한다. 지난 4월 김씨는 동결배아를 이식하려고 병원에 갔다. 이식 준비를 다 마쳤는데 갑자기 이식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결배아를 해동하는 과정에서 실패했다는 거다. 5% 정도가 실패한다는데 내가 그 경우였다. 이식조차 못했는데 동결배아 지원 차수까지 차감됐다. 그날 병원에서 펑펑 울면서 나왔다. 우리에게 지원 차수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데….”

체외수정 시술 차감을 할 때 이식 여부가 기준이 아니다. 동결배아 해동을 하고 신선배아를 위해 난자 채취를 하는 것만으로도 보험 혜택 차수가 줄어든다. 난자 채취의 경우 공난포(난자는 생성되지만 채취를 못하는 것)만 차감이 안 된다. 김씨도 “두 달 전에 복수가 차고 호르몬 수치가 안 좋아서 신선배아 이식을 못했다. 이식과 상관없이 난자를 채취해 신선배아 보험 혜택 1회가 차감됐다. 임신 시도조차 못했는데 허무하게 지원 차수를 잃었다”고 말했다.

체외수정 최고액 65만원

난임 시도 횟수가 10회(인공수정 3회·체외수정 7회)를 넘으면 보험 적용이 안 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4월 발표한 3762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조사한 ‘2018년 병원별 비급여 진료비용’을 보면 난임 시술 가운데 회당 일반 체외수정 최저액은 10만원, 최고액은 64만9천원으로 6.5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인공수정의 최저액과 최고액은 각각 10만원, 52만3천원으로 5배 차이를 보였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연령 제한과 차수 제한은 임신 성공 가능성에 따라 설정한 것”이라며 “시술 차수를 더 늘리는 것은 난자 채취와 잦은 시술로 인해 여성 건강의 유해성 문제 등이 있어 신중히 접근할 문제”라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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