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6월에 벌어지는 고양이의 난이 있다. ‘아깽이 대란’이다. 전국 골목에서 새끼고양이(아기고양이=아깽이)가 동시다발적으로 태어난다. 뒤이어 철없는 젊은이와 가학적 성향의 인간들에게 동물 학대의 표적이 된다. ‘아깽이 대란’이라는 말에는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걱정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생명에 대한 축하가 교차한다.
올해 아깽이 대란은 유난히도 엽기적인 사건들로 포문을 열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된 새끼고양이가 상체가 잘린 채 아파트 뒷산에서 발견되거나, 새끼고양이가 물을 뒤집어쓰고 지퍼백에 갇힌 사건, 또 다른 새끼고양이가 산 채로 쓰레기봉투에 유기된 사건 등이 줄을 이었다. 5월에 보도된 사건만 추려도 이 정도다. 고양이가 그렇게 만만한가?
<font size="4"><font color="#008ABD">현대로 이어진 ‘고양이 대학살’ </font></font>사실 고양이는 오래전부터 만만했다. 중세 시대에는 마녀와 엮여 화형식 제단에 올랐다.
고양이 학대는 개와는 좀 다르다. 개 학대는 개의 공격에 대한 반작용이거나 개고기 생산 유통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 상당수다. 반면 고양이는 그냥 보기 싫어서 학대가 자행된다. 비이성적 혐오의 표현이자, 오락적 수단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문헌이 근대 초기 계급의 형성과 동물의 관계를 일상에서 잡아낸 로버트 단턴의 (1985)이다.
1730년대 프랑스 파리의 인쇄소 주인들은 고양이를 키우는 게 유행이었다. 동시에 골목에는 언제나 길고양이가 범람했다. 인쇄소 견습공들은 주인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밤늦게까지 일하다 차가운 방에서 잠드는 열악한 삶을 견뎌야 했다.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으나, 새벽녘 길고양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기 일쑤였다. 그들은 모의했다. 사장 부인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애완 고양이 ‘그리즈’를 잡아 죽이자! 이들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모창하는 사람에게 밤새 울라고 시켜 고양이 소음을 극대화했다. 잠을 설친 주인 가족도 “이 고양이들 잡아 죽여!”라고 하자, 견습공들은 빗자루를 들고 소란을 피우며 작업에 들어갔다. 소란 통에 그리즈도 사라지고 만다. 사장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사악한 사람들이 주인을 죽일 수 없으니, 내 고양이를 죽였나봐요.”
노동자의 부르주아에 대한 사적 복수를 상징하는 이 사건에는 당시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애완 취미에 대한 조롱과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인간이 고양이보다 못한가!”)이 담겼다. 애완동물이 왕족에서 시민계급으로 확산되면서 동시에 동물학대도 빈발하자, 동물학대를 도덕적으로 계몽하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1835년 영국에서 동물학대법이 통과돼 이런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법적 공인을 받게 된다. 진중권은 “이 법이 겨냥한 것은 바로 도시 노동자 계층이었다. 산업화·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농촌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을 섬세한 도시 생활에 맞게 ‘문명화’시켜야 했고, 그러려면 먼저 동물에 대한 이들의 정서와 행동부터 완화시켜야 했다”(, 천년의상상 펴냄)고 설명한다.
고양이 대학살이 묘사한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학대가 오락적 성격의 ‘사적 처형’이었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증오를 고양이에 투사해 처형한다는 점에서 중세시대의 마녀 화형식과도 닮았다. 지금의 고양이 학대와도 닮지 않았나? 마치 ‘청춘의 루저들’이 극우 사이트 ‘일베’에 몰려 여성과 외국인노동자, 동물을 혐오하는 것처럼.
<font size="4"><font color="#008ABD">고양이는 개와 다르다 </font></font>고양이가 인간의 대지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신석기혁명 즈음이다.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아 생산물을 창고에 쌓아두기 시작했던 시기. 이때 한 야생동물이 찾아와 창고 속 곡식을 축내는 들쥐를 사냥했다. 이 동물은 육식성이라 곡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기에, 인간은 먹이를 주어 일원으로 맞아들였다. 이 동물이 바로 고양이다. 그 뒤 고양이는 집에 소속돼 있으되, 동네와 들판을 드나들며 살았다. 이것이 최근 100년 전까지 이어진 고양이의 역사다.
이런 점에서 고양이는 개와 아주 다르다. 우리는 지금 개에게서 잿빛 늑대의 본성을 찾기 힘들지만, 고양이의 네 발 중 세 발은 여전히 야생의 대지 위에 발 딛고 서 있다. 사냥·경비·애완 등의 목적으로 인간이 개량한 개는 300~400여 품종에 이른다. 반면 고양이는 1만 년이 지났건만 샴고양이 등 몇몇만 애완용으로 개량됐을 뿐 신석기시대 삶의 형식을 고수했다. 고양이는 인간에서 동물, 인간에서 야생으로 통하는 문을 밤마다 여닫고 드나들었다. 시골에서는 고양이와 사람의 관계가 대개 평화로웠으나, 도시에서는 길고양이와 사람이 종종 갈등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독립적이었다. 집고양이조차 그랬다. 어릴 적 단독주택에서 고양이 ‘짬돌이’를 키웠는데, 키운 지 1년 만에 사라졌다. 어린 나는 동네를 찾아헤맸으나, 어른들은 “고양이 나갔네” 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 받아들였다. 고양이는 그런 동물이었다. 밤마다 외출하다 기어코 탕자처럼 나가고 마는.
하지만 미래의 고양이 후손들은 2000년대를 자신의 종 역사에서 매우 특이한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각자 소속(주인집)은 있되 자율적으로 활동했던 고양이가 인간과 그 삶의 방식에 구속되고 만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등장으로 고양이는 밖에 나가지 못하고, 국가에서 ‘유기동물’을 관리하며 소유 개념이 명확해졌다. 이렇게 집고양이와 길고양이는 점차 유리됐다. (‘유기고양이’로 간주되면 동물보호소에 수용돼 주인을 기다리다 안락사 될 테니까, 주인들은 고양이를 집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
점증하는 동물보호 여론은 정부에 길고양이를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하도록 했다. 이른바 TNR(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수술 뒤 재방사하는 관리법)는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길고양이 관리법의 표준이 되었다. ‘캣맘’ ‘캣대디’도 암약한다. 이들은 동네별로 커뮤니티를 이뤄 길고양이게 밥을 주고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학대에서 막아낸다. 아깽이 대란이 시작되면 캣맘들은 더듬이를 세워 골목을 관찰한다. 어미가 놔두고 간 아깽이를 데려다 우유를 먹이고, 고양이 학대자를 감시하고 고발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포악한 고양이만 살아남아 </font></font>존 브래드쇼 같은 인류동물학자는 우려하기도 한다. 만약 TNR가 점점 확대돼, 세계 모든 도시의 길고양이가 중성화된다면? 아마 캣맘과 교감하는 인간 친화적인 고양이의 씨는 마를 것이다(중성화수술을 받았으므로). 이런 고양이는 대체로 온순하다. 반면 (캣맘이든 학대자든) 인간의 지배에 저항하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포악한 고양이의 유전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고양이 세계에서 비둘기파 대신 매파가 득세하고, 인간 대 고양이의 대립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인간의 관용적인 동물 지배가 의도치 않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 아닌가? 고양이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
남종영 편집장 fand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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