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가장 흔하고 사소한 동물이 비둘기다. 내가 비둘기를 처음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어느 공원에서 다리를 저는 비둘기를 보았을 때다. 그 뒤로 비둘기를 유심히 쳐다봤는데, 열 마리 중 한 마리꼴로 발가락이 잘리거나 뭉개져 있었다. 그 원인에 대해선 과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비둘기나 우리나 모두 복잡한 도시에 산다. 우리가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아파트를 찾아 삶의 처소에 도착하듯, 비둘기도 낮의 일이 끝나면 도시 곳곳에 숨겨진 자기 둥지로 돌아간다. 비둘기는 우리보다 길 찾기 능력이 뛰어나다. 아니, 천부적이다. 바로 그 능력 때문에 비둘기는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영웅 대접을 받았다.
성경 ‘노아의 방주’의 비중 있는 조연
원래 비둘기는 절벽에 살았다. 영어 이름이 ‘바위 비둘기’(Rock Dove)다. 바닷가 절벽에 가보면, 수많은 바닷새가 아파트처럼 둥지를 짓고 산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야생 시절부터 비둘기는 멀리 사냥을 나가서 집을 찾아 돌아오는 데 귀재였다. 사실 많은 새가 그렇긴 하지만.
비둘기의 귀소 본능을 인간이 알게 된 지는 꽤 오래된 듯하다. 성경 ‘노아의 방주’ 사건에서 비중 있는 조연이 비둘기다. 노아는 대홍수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방주에서 비둘기를 날린다. 첫 번째 날린 비둘기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왔고(아직 물이 안 빠졌군!), 두 번째 날린 비둘기는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육지가 좀 드러났겠어!). 세 번째 날린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아(이제 나가도 되겠어!) 세상이 살 만한 곳이 됐음을 알렸다.
비둘기는 어느 곳에 풀어놓든 정확히 제집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비둘기가 돌아와야만 하는 곳에 둥지를 지어주고 다른 곳에 풀어준다면? 역시 돌아왔다. 옛날 사람들은 이 귀소 본능을 이용해 비둘기를 통신에 활용했다. 이를테면 내가 먼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이때 비둘기 몇 마리를 가져가서 하나씩 편지를 묶어 보내면, 비둘기는 출발지로 돌아가 내 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총알을 맞고도 40㎞를 날아서
근대 이전까지 비둘기는 중동에서 주요한 통신 수단이었다. 각 지역에 비둘기 통신소를 세워 이어달리기 경주처럼 비둘기를 활용해 메시지를 멀리 보냈다. 전국에 연결된 봉화처럼, 비둘기 통신 체계는 전국에 네트워크화됐다.
서구 사회도 근대에 이르러 비둘기 통신을 체계화했다. <로이터> 통신을 만든 파울 로이터가 처음 이용한 게 비둘기다. 1860년 45마리 넘는 비둘기가 벨기에 브뤼셀과 독일 아헨을 오가며 뉴스와 주식 시세를 알렸다. 우리나라 우체국의 아이콘도 비둘기 아닌가? 전신, 전화, 인터넷 등 모든 통신의 창조자는 누가 뭐래도 비둘기다.
그러나 전쟁 같은 험악한 시기일수록 동물은 기계로 다뤄진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의 시대, 통신병은 배낭에 비둘기를 달고 다녔다. 20세기 중반까지 각국은 ‘비둘기 부대’를 운영했고, 뛰어난 비둘기들은 통신병과 함께 참전했다.
1918년 10월 프랑스 서부의 아르곤 숲. 제1차 세계대전이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미군 제77보병사단이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찰스 휘틀시 중령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아르곤 숲에 진을 친 독일군을 공격하라. 한 발짝 나아가기 힘든 참호전이었다. 병사들은 참호에 들어가 날아드는 총알과 수류탄을 피하며 ‘진격 앞으로’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장교나 병사나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참호전은 지루하게 전개되는 일이 많았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동안 이어졌다.
그래도 휘틀시 중령의 부대는 한발 한발 전진했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나가버리고 말았다. 휘틀시 중령은 자신의 부대가 독일군 참호선을 넘어 깊숙이 들어온 것을 깨달았다. 병사는 500여 명 남아 있었다. 미군의 실수를 알아차린 독일군은 앞뒤에서 포탄 세례를 퍼부었다. 휘틀시 중령의 부대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중과부적이었다. 구조 요청을 해야 했다. 통신병에게는 비둘기가 8마리 남아 있었다. 비둘기를 케이지(우리)에서 하나씩 꺼내 날렸다. 100년 전에는 비둘기를 정확히 쏘아 떨어뜨릴 줄 아는 게 명사수였다. 독일군에는 명사수가 널려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날리는 비둘기마다 ‘피익’ ‘피익’ 쓰러졌다.
이튿날에는 미군 공군기가 하늘 위로 날았다. 구조하러 왔구나! 그러나 위에서 떨어진 것은 식량도 보급품도 아니었다. 꽝! 폭탄이었다. 어제 날린 비둘기 한 마리도 본부에 돌아가지 못한 게 분명했다. 미군은 여전히 그곳에 독일군이 있는 줄 알고 폭탄을 투하했다. 이제 남은 비둘기는 두 마리였다. 휘틀시 중령은 짧은 편지를 썼다. “우리 포대가 바로 우리에게 포격을 가하고 있다. 제발, 멈춰달라.” 비둘기 한 마리를 케이지에서 꺼냈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는지, 편지를 매달기도 전에 날아가버렸다.
마지막 남은 건 ‘셰르 아미’라는 이름의 비둘기였다. 케이지를 열자 팔랑거리며 나뭇가지에 오르더니 가만히 있었다. 결국 용기를 낸 듯 먼 하늘을 향해 날았다. 독일군은 셰르 아미를 포착하고 총격을 가했다. 총탄 하나가 비둘기의 눈자위를 스쳤다. 셰르 아미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날아올랐다. 다음 총탄은 비둘기의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에는 오른쪽 다리를 스쳤다. 비둘기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 총탄을 뚫고 40㎞를 날아갔다. 20분 뒤, 셰르 아미는 피를 흘리며 (그가 집으로 생각하는) 비둘기 통신 초소에 도착했다. 편지를 읽은 미군은 포격을 중단하고 구조대를 파견했다. 194명이 살아 돌아왔다. 비둘기는 발을 절단했지만, 군은 목발을 달아주었다. 한 달 뒤 세계대전은 끝났다.
2차대전 ‘지아이 조’와 함께 공로 인정받아
2019년 11월,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에서 용감한 동물에게 주는 ‘전쟁과 평화 메달’ 시상식이 열렸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가장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활약한 동물 8마리가 훈장을 받았다. 셰르 아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비둘기 ‘지아이 조’와 함께 통신병으로 공로를 인정받았다.
불과 100년 전까지 가장 중요한 동물이던 비둘기의 몰락은 우리 마음이 얼마나 얄팍한지 보여준다. 우리는 비둘기를 생체 기계로 이용했지,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는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들을 경외심을 갖고 바라봤다. 발을 다친 비둘기가 있으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들의 집이 어디인지 상상한다.
남종영 <한겨레>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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