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지난해 7월17일 제헌절에 맞춰 발간된 제1170호 ‘헌법은 나의 것’을 통해 1987년 개정 이후 서른 살이 된 헌법이 갖춰야 할 새로운 꼴을 그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고, 주요 대선 후보들 역시 개헌 취지에 공감했다. 은 문 대통령 당선 이후 개헌 불씨를 살리기 위해 국가가 아니라 시민이 고민한 개헌안을 사회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은 이를 위해 한 달 동안 헌법과 동갑인 9명의 ‘87둥이’들과 함께 새 헌법에 담겨야 할 내용을 고민했다. 의 취지에 공감해 모인 87둥이들은 취업준비생, 성소수자 활동가, 변호사, 비정규직 노동자, 작가, 국회의원 비서관, 정당인, 대학원생, 방송사 직원 등 다양한 직업군을 망라했다. 당시 이 만든 개헌안(이하 21개헌안)의 기본 정신은 1987년 헌법이 태어날 때 생략된 권리를 이제 시민들의 힘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본권 수 늘리고 구체화 공통점이후 8개월이 흘렀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대로 오는 6·13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위한 개헌안(이하 대통령개헌안)을 내놓았다. 3월20~22일 세 차례 걸쳐 내놓은 대통령개헌안은 21개헌안과 여러모로 닮았다. 기본권을 중심으로 21개헌안과 대통령개헌안을 비교해봤다.
두 개헌안의 가장 큰 공통점은, ‘국민’이 아닌 ‘사람’을 강조한 것이다. 두 개헌안 모두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꿨다. 21개헌안이 △일할 권리 △사회보장권 등 사회권적 성격이 강한 권리의 주체까지 사람으로 바꾼 데 비해, 대통령개헌안은 이 부분에선 주체를 국민으로 유지했다. 대통령개헌안은 국민경제와 국가안보와 관련된 권리에도 국민이란 표현을 그대로 뒀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의 수를 늘리고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이 개헌안을 내놓을 때 세운 큰 원칙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최대한 자세하고 명확하게 규정하자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21개헌안은 생명권, 환경권, 평화권, 문화권, 여가와 휴식 향유권 등 기존 헌법에서 명문화되지 않은 기본권을 망라했다. 헌법 전문가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21개헌안을 검토한 뒤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기본권 규정은 구체화할수록 국민에게 유리하고 (명문화되면) 더 강조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개헌안에도 기존 헌법엔 없던 생명권, 안전권 등 새로운 기본권 조항이 포함됐다. 세월호 참사, 서울 강남역 사건 등 각종 사고와 위험에 대한 공감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새로운 유형의 인권침해를 막는 장치로 정보기본권을 신설했다.
21개헌안의 ‘성별 정체성’은 제외세 번째 공통점은, 평등권의 차별금지 사유를 확장한 것이다. 대통령개헌안은 현행 헌법의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의 3가지 차별금지 사유에 장애·연령·인종·지역 4가지를 추가했다. 이에 비해 21개헌안은 평등권의 차별금지 사유를 인종, 언어, 출신 지역, 나이, 장애,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직업, 고용 형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사상, 정치적 의견 등 무려 15가지나 추가했다. 특히 21개헌안은 차별금지 사유 가운데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분명히 언급했지만, 대통령개헌안은 동성애 등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을 우려한 탓인지 관련 내용을 제외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네 번째 공통점은, 노동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먼저, 21개헌안과 대통령개헌안 모두 현행 헌법의 ‘근로’란 용어를 ‘노동’으로 대체했다.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인 ‘근로’는 사람이 일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대상화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용어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사용자 관점에서 만든 것이기도 하다. 두 개헌안 모두 ‘동일가치 동일임금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고, “노동조건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노동조건의 노사 대등 결정 원칙을 명시했다. 그 밖에 대통령개헌안에는 21개헌안에 없는 고용안정이나 일과 생활의 균형에 관한 국가의 정책 시행 의무를 신설한 점이 눈에 띈다.
노동계의 해묵은 현안인 공무원의 노동3권과 관련해 근본적인 변화가 시도된 것도 두 개헌안의 공통점이다. 현행 헌법은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해 공무원의 노동3권을 사실상 법률로 제약하고 있다. 대통령개헌안은 공무원의 노동3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현행 조항을 ‘원칙적 인정’으로 바꾸고 현역군인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하게 했다. 21개헌안도 “경찰공무원과 현역군인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국민소환제의 경우 대통령개헌안은 국회의원, 21개헌안은 대통령을 소환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소환제는 선거로 뽑은 대표자를 심판하려면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야 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는 제도다. 대통령개헌안은 나아가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까지 규정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에 60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지만 입법 발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헌정사에서는 1954년 헌법에 헌법 국민발안제가 규정된 바 있다”고 밝혔다.
둘 다 ‘검사 영장청구권’ 헌법 삭제두 개헌안의 마지막 공통점은, 현행 헌법 제12조 3항에 규정된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영장 청구 주체를 헌법이 아닌 법률에서 정하면 된다는 뜻일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개헌안대로 개헌이 이뤄진다 해도 현행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인정된다. 영장청구권은 지금까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논의 자체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여겨졌다. 청와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그리스와 멕시코를 제외하고 헌법에 영장청구 주체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대통령개헌안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당장 자유한국당과 민주평화당은 3월22일 대통령개헌안을 들고 국회를 찾은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면담을 거부했다. 개헌을 위해선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 전체의 공감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야당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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