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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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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자, ‘범죄자’로 몰리다

퇴사하거나 징계받거나 괴롭힘당하거나…

출산·육아 관련 휴가·휴직자들이 당한 갑질
등록 2018-02-28 23:43 수정 2020-05-03 04:28
2015년 12월10일 청와대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12월10일 청와대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배 속 아기의 발차기가 제법이다. 신기하고 흐뭇하다. 임신 8개월, 꽃피는 봄이 오면 아기는 세상에 나온다. 엄마는 오래도록 기다렸던 아이를 품에 안을 것이다. 두려우면서도 설렌다. 엄마가 되기까지 긴 터널을 지났다. 두 달 남은 시간, 엄마는 요가를 하며 아기 맞을 준비를 한다.

‘산부인과 진료 내역’ 요구한 회사화

그의 일터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16년 2월 아이를 가졌는데 유산 징후가 있었다. 병원에서 2주 진단서를 떼 회사에 냈다. 그런데 회사는 일이 많다며 병가를 일주일만 허용했다. 임신 8주, 그녀는 아이를 잃었다. 고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뼈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보호대를 차지 않으면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두 달 병가를 썼지만 차도가 없었다. 2016년 5월 산후풍에 따른 질병휴직을 신청했다.

1년 뒤 그는 난임휴가를 냈다. 직장일도 잘하고 싶었지만, 아이를 꼭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험관 시술 여섯 번 만에 기적처럼 아이가 생겼다. 습관성 유산이 우려되는 고위험 산모. 그는 매일 주사를 맞으며 안정했다. 병원과 한의원을 번갈아 다녔다.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조마조마하던 13주가 지나고, 유산의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와 남편은 뛸 듯이 기뻤다.

2017년 10월 그는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아 회사에 제출하면서 복직원을 냈다. 하지만 두려웠다. 임신 4개월, 건강이 좋지 않아 하루 외출을 하면 2~3일은 꼼짝도 못하고 누워 지내야만 했다. 병원에서도 안정가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쓸 수 있는 건 산전후휴가뿐. 공무원은 임신 중에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데, 공공기관은 불가능했다.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는 일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 중요했다. 일단 산전후휴가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만삭에 복직을 해야 한다. 안전하게 아이를 낳으려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 그는 공무원시험 공부를 병행했다.

그런데 공단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가 거짓으로 병가를 내고, 난임병원도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공단은 난임치료를 입증할 수 있는 요양급여내역서와 최초임신확인서를 요구했다. 황당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더니 산부인과나 정신과 치료 내역은 지극히 민감한 사항으로 본인 말고는 열람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민감 정보를 회사가 들여다보겠다는 거였다. 그를 의심한 공단은 끈질기게 진료내역서를 요구했다. 12월 초 그는 노동조합을 통해 진료내역서와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공단은 휴가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사직서 수리를 거부하고 징계를 통보했다. 부당하게 사용한 휴직급여 전액을 환수하겠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공단은 ‘근무기강 확립’을 한다며 육아휴직자와 질병휴직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다. 건강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민감 정보로 수집과 제공에 별도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공단은 막무가내였다.

지난해 여름, 임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산율이 1.03%로 역대 최저를 기록할 것이라며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몇 년이 지나면 회복할 길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고용과 주거 안정, 성평등 등 근본적인 구조 개혁으로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귀에서 빙빙 돌았다.

애국자 대우를 바란 게 아니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지길 기대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공단은 그의 노동력만 필요했을 뿐, 사회적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모성에는 관심 없었다. 국가는 출산을 장려하는데, 공단은 엄마를 범죄자 취급했다. 그는 ‘직장갑질119’를 찾았고,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다행히 사직서가 수리되고 징계가 철회됐지만, 그는 아직까지 공단 책임자의 진정 어린 사과를 듣지 못했다.

기혼여성 20%는 ‘경단녀’

그래도 공공기관은 양반이었다. 한 인터넷 회사에 다니는 그는 아이를 갖기 전까지 불만이 별로 없었다. 경영진도 합리적이었고, 선후배 관계도 괜찮았다. 그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난 게 좋았다. 임신과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회사는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쓰지 못하게 했다. 만 8살(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 양육을 위해 1년 이내에서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남녀고용평등법은 무용지물이었다. 동료들은 육아휴직 3개월 뒤 복직하거나, 약간의 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 조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직책과 임금을 비슷하게 주면서 평가에서 최하점을 줘 무능한 직원을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무언의 압력은 육중한 쇳덩이처럼 아이의 엄마를 짓이겼고, “불리한 처우를 하면 징역 5년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법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부모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5개월 아이, 기댈 곳 없는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회사를 떠났다. 슈퍼우먼이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잘나가는’ 여자 선배들도 출산 앞에서 무릎 꿇는 광경을 목격한 후배들은 독신이나 ‘무자식 상팔자’를 선택했다.

2017년 상반기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4∼54살 기혼여성 905만3천 명 중 결혼, 임신·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단녀는 181만2천 명으로 20%였다. 2010~2015년에 결혼한 여성들 중 아예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비율이 8.2%로 역대 최고였다.

피임은 잘하고 있지?

“저는 이제 아이를 새벽부터 맡기고 1시간 반 거리를 운전해서 추위에 떨며 일하고, 창고에서 혼자 점심을 먹다가 팀장의 폭언을 들어야 합니다.”

“육아휴직 끝나고 복귀하자마자 팀장이 아이가 아파도 원하는 날에 휴가를 줄 수 없다면서 회사를 다닐 건지, 퇴사를 하든지 결정하라고 합니다.”

“육아휴직 쓰고 복직했는데 수간호사가 수술실로 받지 않겠다고 해서 일반 병동으로 발령 냈습니다. 너 한번 당해보라는 거죠. 후배는 그만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회사 선배가 이러더군요.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봐. 네가 온 지 3년도 안 돼서 육아휴직을 가면 엄청나게 손해잖아? 제가 화제를 돌리려고 하자 제 어깨에 손을 얹으며 ‘피임은 잘하고 있지?’ 하고 씨익 웃는데, 저는 정말 성추행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직장갑질119에 쏟아진 하소연들이다.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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