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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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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살려야 한다

투기 대상 된 비트코인 규제 강화로 블록체인 기술마저 위축될라
등록 2018-02-08 01:47 수정 2020-05-03 04:28
5600억원 규모의 해킹이 발생한 일본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체크’ 관계자들이 1월26일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5600억원 규모의 해킹이 발생한 일본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체크’ 관계자들이 1월26일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근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다소 수그러든 듯하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 방침에 이어 5600억원 규모의 일본 거래소 ‘코인체크’ 해킹 사건까지 겹치며 식은 불씨에 찬물까지 끼얹은 모양새다. 미국에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6억달러(약 6400억원) 정도의 투자자 돈을 끌어모은 어라이즈뱅크(AriseBank)를 암호화폐 사기 혐의로 폐쇄하고, 페이스북이 사이트 내 암호화폐 광고를 전면 금지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급랭 분위기에서 암호화폐가 지닌 가능성마저 함께 얼어붙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암호화폐를 논할 때는 투기 대상이 된 비트코인과 이를 가능케 한 기술인 블록체인(Block Chain)을 구분해야 한다. 컨설팅회사 플렉스(Flex)의 재닌 사전트 대표는 미국 경제매체 인터넷판 인터뷰에서 “나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구분해서 본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란 블록체인을 화폐에 적용한 하나의 사례”라고 했다. 블록체인이란 범용 기술이 있고, 가상화폐는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한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짧게 ‘공개분산원장’으로 정의되곤 한다. 기술적 얘기는 생략하고 특징을 단순화해 설명하면, 블록체인은 특정 기록을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분산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잠시 한발 떨어져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상식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가상화폐는 디지털 속 존재고, 디지털은 파일을 삭제하거나 복사하듯이 얼마든 조작할 수 있는데 대체 뭘 믿고 실제 돈까지 들여 게임머니 같은 것을 살까. 블록체인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누가 얼마를 가졌고 누구와 거래했는지 참여자 모두의 컴퓨터에 남아, 즉 서로 신뢰할 수 있기에, 비트코인은 게임머니와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적용할 범위는 화폐에 그치지 않는다. 네덜란드 회사 리걸싱스(LegalThings)는 1월 초 애플리케이션 ‘리걸플링’(LegalFling)을 출시했다. 이 앱의 용도는 남녀가 성관계를 하기로 합의했을 때 그 내용을 블록체인에 기록해주는 것이다. 리걸싱스는 이 앱을 “섹스에 대한 명시적 동의를 증명하는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앱”으로 홍보한다. 누가 언제 관계를 맺기로 합의했고, 비디오 촬영이나 콘돔 착용 여부는 어떻게 되는지까지 기록에 포함할 수 있다. 내밀한 관계를 분산원장에 기록한다는 것이 망측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성폭력에 뒤따르는 고통스러운 진실 공방을 막으려 모든 성관계는 명시적 동의를 미리 받아야 한다는 법안까지 제안된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이 앱이 인기를 끌 수도 있다.

하나의 자극적인 예이지만, 이런 식으로 분산해서 신뢰를 보증하는 방식의 기술은 사회구조를 대거 바꿀 수 있다. 국가·은행·학교·기업 등 중앙조직에 신뢰를 보증해달라고 확인하는 절차 없이 개인이 서로 믿을 수 있으면 중앙조직을 중심으로 짜인 지금의 사회구조는 재편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를 보필하는 기기인 스마트폰, 자동차, 텔레비전, 냉장고 등이 해킹에서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 삶에 큰 편의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미래의 가능성이 비트코인 규제로 제한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오성 미래팀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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