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동네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목 좋은 곳에 ‘4차 산업혁명 관련’ 코너가 ‘베스트셀러’나 ‘경영·개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련된 모습을 봤다. 4차 산업혁명의 진앙으로 꼽히는 세계경제포럼(WEF)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을 비롯해 족히 스무 권은 돼 보이는 관련 도서가 1평가량의 매대를 빼곡히 메웠다. 산업계·정부·미디어 등에서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분 지 1년은 넘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해 보인다. 이 열풍 속에 한때 ‘창조경제’ 주홍글씨가 박혀 해체가 점쳐진 미래창조과학부가 “제4차 산업혁명의 주무 부처”(국정기획자문위원회)로 낙점됐다.
한국 사회의 대중 담론에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의 격렬한 인기에 비해 해외에선 관련 담론이 조용한 것을 보면 때로 의아스럽다. 해외 동향을 읽으려 늘 살펴보는 외신 과학·기술 기사에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한 것을 본 적은 지금까지 없다.
실제 해외에선 4차 산업혁명이 별로 논의되지 않는 것일까. 이 명제가 사실인지는 검색량 비교 서비스 ‘구글 트렌드’(trends.google.com)를 이용하면 얼추 확인할 수 있다. 구글 트렌드에서 한글 ‘4차 산업혁명’과 영어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을 함께 넣고 지난 5년 동안 검색량 추이를 비교해봤다. 두 수치를 비교한 그래프를 보면, 전자가 후자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압도하고 있다. 슈밥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직후인 2016년 1월17~23일에는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의 상대적 검색량이 76으로, 5에 불과한 ‘4차 산업혁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영어 사용 인구가 한글 인구에 비해 훨씬 많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검색량은 꾸준히 늘어 지난 2월에는 영어 검색량을 추월했고, 최근(6월11~17일)에는 100 대 21로 영문 검색량을 현격한 차이로 앞질렀다. 이상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 논의가 활발히 일어난다는 것 자체는 문제라 할 수 없다. 한국이 그만큼 다른 나라보다 미래 대비에 관심 많고 앞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 주목하는 것이 미래 대비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가 반드시 ‘4차 산업혁명’이 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미지수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교수는 지난해 언론 기고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주장은 불발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저서 등으로 알려졌다. 리프킨 교수는 글에서 슈밥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물리, 디지털, 생물학적 세계의 융합”이야말로 “정확히 디지털 혁명, 즉 3차 산업혁명의 특성”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의 모습으로 각 산업 분야에서 일어나는 파괴적 혁신은 3차 혁명의 전개에 불과한데, 슈밥 회장은 이를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이다.
사실 ‘3차’냐 ‘4차’냐는 이름 붙이기에 불과한 문제일 수 있다. 훗날 4차 산업혁명이 ‘소란’에 불과하다고 판명 난들, 일단 미래 대비의 채찍질로 쓰였다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걱정되는 부분은 바로 ‘채찍질’이다. 누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대량생산 시대(1·2차 산업혁명) 같은 상명하달식 계획경제와 선동이 먹히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창의적 인재’를 길러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창의와 선도자는 소란이나 채찍질과 어울리지 않는다.
권오성 미래팀 기자 sage5th@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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