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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배신

친구 정보까지 마구잡이로 넘겨 트럼프 선거 운동에 활용…

‘도난 민주주의’ 불러
등록 2018-04-03 16:51 수정 2020-05-03 04:28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REUTERS 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REUTERS 연합뉴스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 연속으로 얻어터지고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즈음해 가짜뉴스 범람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러시아가 미국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페이스북 광고를 이용했고, 이를 알고도 놔두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로 발전했다. 페이스북 책임론에 한때 ‘미친 소리’라고 호기롭게 받아쳤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데이터 유출 사건의 의회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이번에 불거진, 문제의 유출 데이터는 주로 미국인의 개인정보다. 하지만 사안을 살펴보면 우리도 참조할 부분이 많다. 페이스북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는 소셜네트워크일 뿐 아니라, 인터넷 관련 일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일어나니까 말이다.

우선 바로잡을 점은, 이번 사건은 엄밀히 말해 ‘유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유출은 누군가가 합법적인 데이터베이스에 침입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빼내가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문제의 개인정보는 해킹으로 빼낸 정보가 아니다. 201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알렉산드르 코간 박사가 사용자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으로 확보한 데이터다. 방식은 이랬다. 종종 스마트폰에 새 앱을 깔 때 별도의 로그인 정보를 만들 필요 없이 기존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하겠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예’라고 답하고 편하게 로그인하는 순간, 해당 앱은 페이스북에서 당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건네받는다. 문제의 개인정보는 이런 식으로 얻은 것이다.

코간 박사가 동의를 얻은 대상자는 27만 명이었다. 당시 페이스북은 해당 인물의 친구 데이터까지 전부 건넸다. 덕분에 27만 명의 친구 5천만 명의 정보가 전부 코간 박사에게 갔다. 연구 목적으로 합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코간 박사는 이후 정치 마케팅 분석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에 이를 돈을 받고 팔았다. 그리고 2016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선거캠프는 이 회사를 고용해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유권자를 겨냥해 정교한 인터넷 동영상 광고를 만들었다.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페이스북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서비스의 이용자이자 시민인 우리에게 전해준다.

첫째, 디지털 데이터가 어떻게 쓰일지 정말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쉽게 인터넷 서비스 약관에 동의하지만, 어느 정도의 데이터가 누구에게 넘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페이스북의 진짜 책임은 친구 정보까지 포함해 민감한 정보를 마구잡이로 넘기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받는 사람에게는 페이스북의 매력을 한껏 알게 해주는 서비스였겠지만, 이용자 처지에서 이는 ‘배신’에 가까웠다. 페이스북은 다른 문제로 이 사실이 알려져 이 서비스를 폐쇄했지만, 이미 알 수 없는 양의 정보가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이런 위험이 있다고 개인이 서비스에 가입할 때마다 약관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매우 비경제적인 일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우리는 법을 만든다.

둘째, 정보의 힘이 정말 강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승부를 가르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새어나간 정보로 선거 결과가 결정되는 ‘도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다. 개인정보나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시스템은 설계할 때부터 미리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권오성 미래팀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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