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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울림 ‘아맙’처럼

등록 2018-01-23 17:15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어찌하면 아주 적은 양식으로 아주 적은 희망으로/ 그리고 아주 많은 약속으로 살 수 있을까? ...우리 둘은 서로의 숨을 가두고,/ 서로의 꿈을 숨기고,/ 마지막 한 알의 감자를 나누고,/ 마지막 대롱주를 나누고,/ 잎새 위에 마지막 달빛 한 움큼을 모으네... 과거를 향해 가파르게 불고 미래를 향해 매끄럽게 부네”

(베트남 시인 탄타오 ‘아맙나팔을 부는 두 여자’ 중, 구수정 번역)

맺힌 가슴 풀어내는 소리

풀피리처럼 가녀린 그 악기가 내던 떨림을 기억한다. 그건 깊은 순수의 소리였다. 베트남의 산간마을 꼬레족 두 여인. 잘라낸 한줄기 대롱의 끝과 끝을 물었다. 30cm 정도의 아맙 대롱 줄기를. 두 여인은 들숨과 날숨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 맺힌 가슴과 가슴을 풀어내는 소리였다. 숨과 숨이 만나 하나로 흐르고 있었다. 한 호흡도 놓쳐선 나올 수 없는 처음 경험하는 음악이었다.

2008년 4·3 60주년을 기해 베트남 꽝응아이성에서 열린 제주 민예총과의 첫 교류에서였다. 소수민족의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지 그 나라 관료들도 뜨겁게 환호작약 박수를 보냈던 것을 기억한다. 베트남에 죄스러움을 표한 우리는 그들과 얽혔던 아픈 역사의 현장을 둘러봤고, 예술로 교감을 나눴다. 그들을 다음해 제주로 초청했다. 첫 바깥 무대였다. 물론 객석은 그 악기에 순식간에 매료되고 말았다. 소녀들이 밭에 나가 일할 때가 되면 어머니가 이 소리를 가르쳤다 했다. 가슴속 서리서리 맺힌 것들을 풀어내라고. 아맙을 불면 그 순간 슬픔도 사라지고 고단함도 잊게 된다고.

이제, 곧 전세계가 평창에 들어올려질 한반도기에 눈이 쏠릴 것이다. 말도 많았으나 그 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펄럭일 것이다. 아마도 쪼개진 나라 남북을 보던 사람들은 한반도가 어떤 모양인지를 알게 될 것이고, 통일 지도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보게 될 것이다. 평창에선 얼음 위 스포츠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쇳덩이처럼 언 가슴을 예술로 녹여내는 소리도 들리게 될 것이다. 평창 한켠에서는 문학, 음악예술이 만난다.

가장 신뢰하고 믿음이 가는 것은 눈에 확 드러나지 않는다. 영혼의 밥은 당장 눈에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나 그것들은 어느 순간 나타난다. 하나씩 씨앗처럼 작동해 위대한 희망을 틔워준다. 그토록 투쟁하며 이뤄온 민주화, 그렇게 찾는 절실한 평화는 이렇게 내가 먼저 팔 벌린 사랑을 끊임없이 실천하는 데 있었음을 우리는 알았다.

얼어붙은 의식을 녹이는 것은 안 보이는 감성이다. 그것들의 힘은 눈치채지 못하게 온다. 언 수도꼭지를 한꺼번에 너무 뜨거운 물로 녹이려 들다간 끝내 파열되고 만다. 그러니 서서히, 질기게 하라는 신호다. 중요한 건 작은 소리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역사가 큰 목소리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요즘 영화 을 통해 충분히 느끼지 않았던가. 그때 그 시절 내 마음이 그 보통의 사람들 마음과 같았다고 서로 투영해보면서 울컥거림을 참았다는 이들을 본다. 그러므로 미리 두려워하거나 속단할 필요는 없는 일. 그 모든 역사 변혁의 시도는 우연히 자신의 감수성에 들어와 머뭇거리는 것들을 움직이고 정의를 일깨우면서 일어났다.

평화의 실, 평창

이따금 나는 내가 아는 지상에서 가장 작고 따뜻한 악기의 상징인 그 소리, 아맙을 떠올린다. 그리고 믿는다. 우리로 인해 상처받고 오래도록 고통받는, 그러므로 아직도 우리가 녹여줘야 할 그 땅 베트남의 상처도 아맙처럼 우리들의 숨과 숨이 만나 녹여지기를. 모든 전쟁, 모든 갈등, 분단의 아픔도 그렇게 녹아들 수 있기를.

곡절과 곡절 속에 이뤄지는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이 강력한 평화의 실이 될 수 있을지 어떻게 예측하겠는가. 이렇게 작은 감동,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여린 소리들이 얼음을 깨는 바닥이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치유하고, 녹이고 이어줬던 그 따스한 마음의 선율, 베트남의 ‘아맙’처럼.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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