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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능력 7살이 원해서 했다?

제1187호 표지이야기 ‘누가 그녀를 악마로 만들었나’ HIV 감염인 여성 재판

알선에 의한 ‘성매매 피해자’ 지위 확보 쉽지 않아 ‘성매매처벌법’ 무죄 입증 어려워
등록 2017-12-15 10:19 수정 2020-05-03 04:28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은 김지영씨 사건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구속돼 재판받고 있는데도 성매매 알선남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살림 제공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은 김지영씨 사건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구속돼 재판받고 있는데도 성매매 알선남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살림 제공

지난 12월6일 오후 3시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304호 법정. 지적장애인이자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인 김지영(26·가명)씨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위반,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기소된 뒤 세 번째 공판이 열렸다. 연녹색 죄수복을 입은 김지영씨가 피고인석에 앉았다.

“지금 정태욱(가명)은 기소 여부가 어떤 상태입니까?” 판사가 검사에게 물었다.

정태욱은 김지영씨의 남자친구이자 김지영씨가 온라인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정태욱은 지금 조사 중입니다. 성매수남 3명이 추가로 확인이 돼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검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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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씨 사건’의 현주소

이 짤막한 대화는 ‘김지영씨 사건’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적장애인인 김지영씨는 HIV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고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하고, 바이러스 전파·매개(할 위험이 있다는)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고 있다. 반면 김지영씨를 성매매에 나서게 한 알선남은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조차 되지 않고 여전히 ‘조사 중’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뒤 두 달 넘게 ‘성매수자’를 찾고 있고, 결국 3명의 성매수남을 더 찾았다.

부산 남부경찰서 수사과장은 이에 대해 “수사기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후천성면역결핍증이 추가로 확산된 것은 아닌지, 위험한 질병의 감염 확산 규모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수사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김지영씨는 체포 뒤 조사 중이던 10월17일, 경찰관과 병원에 가서 HIV 수치를 추적해 안정적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 감염력은 매우 낮다. 그런데도 경찰은 ‘위험한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김지영씨 재판의 쟁점은 무엇일까. 변론을 맡은 변현숙 변호사는 김지영씨가 ‘성매매 피해자’로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임을 주장하고 있다. “김지영씨는 지적 능력이 7살 정도로 본인의 주거·생활을 의지하고 정서적으로도 의존하는 남성들의 압박으로 성매매를 하게 됐고, 남자친구가 다른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된 한 달 동안은 전혀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알선에 의한 성매매임을 입증한다.”

성매매처벌법상 성매매 피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매매 피해자’ 지위를 얻긴 쉽지 않다. 법률이 정하는 성매매 피해자는 △위계, 위력 등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 △업무관계· 고용관계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보호 또는 감독하는 사람에 의하여 마약·향정신성의약품 또는 대마에 중독되어 성매매를 한 사람 △청소년,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사람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대한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유인된 사람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사람이다. 보통 재판에서 인정되는 성매매 피해자는 감금 상태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거나, 억지로 약물을 먹고 약에 취해 한 경우에 국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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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 70 이하의 지적장애인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대한 장애가 있는 자’의 항목에 들어 있지만, 이 경우에는 ‘알선·유인’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지적장애인이 성매매 피해자로 인정돼 처벌을 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지적장애 3급 등 경도의 지적장애 여성의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판사나 수사기관이 ‘자신의 의지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하기 쉽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지영씨는 2009년 온라인 조건만남을 통한 성매매가 적발돼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수사기관은 이 ‘전력’ 때문에 김씨가 ‘알선에 의한 성매매 피해자’일 가능성을 전혀 열어두지 않은 채 수사했다.

‘알선과 유인’이 재판 판가름

이에 따라 향후 재판은 ‘알선과 유인’을 다투는 과정이 될 예정이다. 실제로 11월28일 열린 2차 공판에서 판사는 “공모하여 성매매를 한 것인지, 유인·강요된 것인지 판단이 잘 안 선다”며 알선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친구 정태욱씨와 동거인 황명진(가명)씨를 증인으로 신청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판사가 김지영씨에게 ‘성매매에 나서게 된 경위’를 물었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진짜 처음에는 할 생각도 할 마음도 없었어요. 그런데 명진(동거인 남성)이가 계속 저만 보면 돈 이야기 꺼내고 생활비 이야기 꺼내고 ‘그냥 성매매해서라도 네가 생활비를 보태라’ 그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매매를 안 하면 제 아픈 것을 소문내고 다닐까봐 무서웠습니다.” 판사가 “아픈 것을 소문낸다는 것이 무슨 말이지요?”라고 묻자 김씨는 “에이즈 이야기를 소문내고 다닐까봐 무서웠습니다.”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집에 간다고 이야기했는데 자꾸 의심하고 (중략) 내가 나간다고 하면 ○○에게 부탁해서 ‘못 나가게 막아라’ 그런 식으로 자꾸 부탁해서 나갈 수가 없었어요. 내가 그 집을 나가면 청소도 빨래도 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계속 부르는 것 같은데 못 나가게 막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김씨의 이런 대답만을 근거로 알선·유인이 인정될 수 있을까.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성매매하라’고 말한다고 실제 성매매를 하고, ‘감시하라’는 말에 집에 가지 않고 그 집에 계속 머무르는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변호사는 김지영씨의 정신 상태 감정을 적극 요청했다. 변현숙 변호사는 “지적장애인으로서 성장 과정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에게 ‘친밀한 관계’는 어떤 의미인지, 이전의 성매매 경험이나 성폭력 경험이 그녀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근거 자료로서 정신 상태 감정이 꼭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불필요한 절차’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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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프레임 ‘원해서 했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지적장애 성매매 여성, 혹은 성폭력 피해 여성도 ‘내가 원해서 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들을 상담해보면, 실제 원한 게 아니라 사회적 고립 때문에 굉장히 작은 친밀한 관계에 의존하게 되고, 자신이 이용당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 ‘원해서 한다’는 것이 가해자에게 학습된 언어일 수도 있다. 성매매 여성이 성매매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법의 판단이 너무나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부산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수사 과정에서 김지영씨가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고, 기관 내 ‘장애인학대사례판정위원회’에서 해당 사안을 심의한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예정이다.

부산=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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