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이제 사회적 잉여들의 몫이 되어가는 듯하다. 극소수 베스트셀러 문인들을 제외하고 절대다수의 문인이 글을 써 기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제는 정상이 됐다. 문학 자체의 내적 빈곤화와 ‘문학 같은 것’의 사회적 소구가 점점 희박해져온 외적 상황이 상승적으로 결합한 결과겠지만 그것이 한 사회의 품위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여성 문인에게 가해진 ‘갑질’ 낙인</font></font>이런 빈곤의 평등 시대에 남녀가 따로 없겠지만 그래도 남성 문인들은 본업에 충실하기 힘들지언정 팔 걷고 나서면 여러 인맥·지연·학연 등을 통해 한 가족을 먹여살릴 방편을 찾기란 그럭저럭 가능해 보인다. 여성 문인들은 좀 다르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없는 비혼 여성 문인들의 삶은 본업을 지속하건 작파하건 한계생활을 면치 못한다.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 그것도 문필업을 병행할 정도로 여유로운 일자리는 지극히 희소하다. 간혹 그런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동일 노동에서 남녀 임금 격차를 비롯한 성차별적 고용 환경은 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홀몸의 싱글이라면 어떻게든 근근이 한 몸 처신은 하겠지만, 아이(들)나 부양가족이 딸린 싱글맘이라면 삶의 팍팍함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SNS 친구들 중 그런 여성 문인은 한둘이 아니다. 가혹한 삶의 조건에서 한때 한국문학의 빛나는 가능성이었던 그들의 문학적 재능은 시나브로 시들어간다.
이 상황을 잘 반영하는 상징적 해프닝이 있었다. 1990년대 큰 화제를 일으킨 베스트셀러 시집을 냈던 한 여성 시인이 SNS에서 한 호텔에 호텔을 홍보해주는 대가로 1년간 객실 하나를 제공해달라고 했다. 그것이 한 신문 기사로 보도돼 적잖은 논란이 됐다.
유명 문인이 호텔을 상대로 방을 내놓으라 요구했으니 ‘갑질’ 아니냐는, 나로서는 이해 못할 반응을 비롯해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런 반응이 나온 데는 그 시인에 대한 얼마간의 부정적 평판과, 또 상당한 정도의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문필을 업으로 하는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의 사회적 위상을 평가절하하는 경향도 상당히 작용한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 해프닝 아닌 해프닝의 본질은 한 여성 시인의 ‘주제넘은 갑질’에 있는 게 아니라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이 처한 열악한 삶의 질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 생각의 근저에는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지닌 나라의 구성원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재능과 실력에 걸맞은 기여를 하고 그것에서 삶의 만족을 느끼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1 대 99라 해도 좋을 심각한 불평등 사회인 한국에서 이 전제는 사회적 부의 획기적 재분배를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 생각을 갖고 이의 실현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못 가진 자들의 경쟁</font></font>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극소수의 ‘다 가진 자들’에게 정당한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며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실천 대신, ‘못 가진 자들’끼리 빈곤의 민주화에 더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하여 일부 고소득 노동자들,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을 누리는 공무원, 심지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해마다 집을 비워달라는 요구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된 주거 환경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한 여성 문인의 갈망이 ‘갑질’로 표상되는 세상은 정상적 세상이라 할 수 없다. 서로의 삶을 수렁으로 끌어내려서 좋은 사회는 올 수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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