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조작된 뉴스의 위협

가짜뉴스
등록 2017-02-14 15:52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가짜뉴스’는 거짓 정보나 유언비어가 담긴 조작된 뉴스를 말한다. 공신력 있는 언론사가 작성한 기사처럼 포장해 사실인 양 유통되기도 한다. 가짜뉴스가 주목받은 건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 때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불리한 가짜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했다’는 가짜뉴스는 페이스북에서 반응이 96만 건에 이르렀다. ‘클린턴 후보가 테러단체 ISIS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가짜뉴스는 79만 건의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반응 건수는 미국 주요 언론사가 생산한 진짜뉴스에 대한 반응 건수를 능가했다. 조작된 뉴스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 당선에 일조한 것이다.

가짜뉴스가 유통될 수 있는 기반은 뉴스 생산자와 수용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뉴미디어 시대의 특징이다. 뉴스는 더 이상 (기성 언론의) 기자라는 직업군만 만들어내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의 장이 열리면서 매체에 소속된 기자가 아니어도 뉴스를 생산하고, 특정인을 대상으로 유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트위터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 페이스북에 쓰인 짧은 글, 카카오톡으로 전달되는 정보, 블로그에 올라온 심층 분석이 때로는 나 기자가 쓴 기사보다 더 파급력을 얻으며 확산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뉴스 소비가 확장하면서 수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뉴스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소비 편중 현상도 나타난다. 보고 싶지 않은 뉴스는 스크롤을 내리거나 가려버리면 그만이다. 소셜미디어는 수용자 반응을 분석해 수용자가 싫어하는 매체나 성향의 뉴스를 더 이상 전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우리 편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이들에게 전달되는 뉴스는 주변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좀더 ‘끈적한’(sticky) 뉴스다. 이 ‘끈적한’ 뉴스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이들은 자기 편의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더 많이 받기 위해 관심과 주목을 경쟁한다. 이런 기반 위에 확증 편향을 거짓으로 강화하는 가짜뉴스마저 탄생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공론의 장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더 이상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견해를 나누며 접점을 찾아가는 논리와 이성의 세계가 아니다. 재빨리 내 처지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고 특정 대상을 비웃으면서 주변 네트워크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나의 세계는 정치적 지향의 세계가 아니라 관심과 인정의 세계이고, 나의 적들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박멸의 대상이다.

파괴된 공론의 장을 복원해야 할 언론의 역할도 마뜩잖다. 언론은 이미 정파에 매몰돼 있으면서도 여전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스탠스를 취한다고 스스로를 포장한다. 하지만 언론이 독점하던 현장 정보가 속속 외부에 공개되는 시대에 이런 포장은 불신만 조장한다.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이들이 “언론은 그럼 진실을 보도하냐”고 묻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들은 국가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고, 정치인은 눈앞의 자기 생존에만 급급하며, 언론은 진실을 호도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자주 현실로 확인된다.

가짜뉴스는 지향성이 사라진 시대를 상징한다. 정치는 지향하는 바를 잃었다. 보수는 붕괴된 시스템을 복원하려 하지 않고 지지하는 정치인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것이 곧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체제 개혁 방향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인민의 말을 냉소하며 자족적 세계에 갇혀 있거나 정파 이익에만 복무한다. 가짜뉴스는 결국 이런 시대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재훈 기자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