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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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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복지의 첫 경험

9개월간 청년배당 받은 성남시 청년 498명 설문조사

“모든 국민이 기본소득 받았으면” “내가 세금 더 낼 생각도 있어”
등록 2016-09-28 19:47 수정 2020-05-03 04:28
경기도 성남시는 올해부터 만 24살 청년을 대상으로 1인당 연간 100만원(우선 지급액은 연간 50만원)어치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청년배당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해 10월 청년배당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는 올해부터 만 24살 청년을 대상으로 1인당 연간 100만원(우선 지급액은 연간 50만원)어치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청년배당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해 10월 청년배당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라고 할 만한 첫 경험.”

경기도 성남시민인 양석진(25)씨에게 ‘청년배당을 받아서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의료보험 빼고는 국가한테서 뭘 받아본 적이 없다. 그냥 각자도생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년배당으로 보편복지라는 걸 처음 경험해봤다. 나한테는 그게 중요했다.” 양씨는 올해 청년배당으로 지역상품권(성남사랑상품권) 총 37만5천원어치를 받았다.

각자도생 안 해도 괜찮아

성남시는 올 1월부터 성남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 상당의 청년배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적극적인 기본소득 지지자다. 청년배당은 만 24살 청년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본소득 모델이다. 이재명 시장은 “대한민국에 기본소득 논쟁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판단해서 청년배당을 실시했다”고 말한다(제1128호 이재명 시장 인터뷰 “자본주의 보완하려면 기본소득 정책으로” 참조).

올해 청년배당 금액은 보건복지부의 반대로 인해 내년 교부금이 깎일 상황이라, 애초 계획의 절반인 연간 50만원만 우선 지급되고 있다. 만 24살 청년 한 사람당 월 4만1600원꼴로 지원받는 셈이다. 올해 만 24살이 되는 청년배당 지급 대상자는 1만1천여 명이다.

성남시에서 지난 9개월간 청년배당을 직접 경험한 청년들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청년배당 대상자 498명을 설문조사한 보고서를 통해, 청년배당과 기본소득에 대한 성남시 청년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봤다.

설문조사는 지난 7월 말 성남시 주민센터 15곳에서 청년배당을 받고 나온 청년들을 만나 22개 문항을 직접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청년들 대부분은 양석진씨와 마찬가지로 명쾌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거칠게 답한 내용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지원받아본 적 없다, 청년배당이 실질적 도움이 됐다, 이런 지원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나아가 기본소득에도 공감한다, 만약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낼 용의도 있다….’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양석진씨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생활비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절반, 부모님께 받는 용돈으로 절반을 충당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60만~70만원이면 한 달 생활하기에 충분했는데, 얼마 전 독립한 뒤로는 주거비·식비·교통비 부담이 늘어나 생활비가 월 150만원 훌쩍 넘게 든다. 청년배당으로 받은 지역상품권은 주로 옷을 사는 데 썼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95.3%는 “청년배당이 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매우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자는 40.3%,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자는 55%였다. 응답자의 42.3%는 학생이었고, 40.8%는 소득이 없는 상태라고 답했다. 다만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년 가운데 91.9%가 “부모님 등 가족과 함께 거주한다”고 답한 것에 비춰볼 때, 응답자들은 서울 등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이 느끼는 주거비 압박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으로 보인다.

커피·술값으로 거의 안 써

주거비 압박이 덜하다고 해서 생활비 압박이 없진 않다. ‘성남사랑상품권을 어디에 사용했냐’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 응답자의 39.4%는 마트나 가게에서, 22.4%는 재래시장에서 사용했다고 답했다. 카페는 2.1%, 주점은 0.9%에 그쳤다. 학원을 이용한 응답자는 1명도 없었다. 성남시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현금 대신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청년배당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은 교통비, 통신비, 어학·자격증 등 학원 교육비 등의 순서로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확대되길 바랐다. 양석진씨도 “책을 사고 싶었는데 동네 서점에는 필요한 책이 많지 않아 옷을 샀다”고 말했다.

만 24살 청년만 특정해서 돈을 지급하는 것에 불만은 없을까? ‘만일 당신이 청년배당 대상 연령을 지나서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청년배당 정책이 유지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94.2%가 “그렇다”고 답했다. 부정적 대답은 5.4%에 그쳤다. 양석진씨와 마찬가지로 응답자의 76.3%가 “이전에 성남시나 정부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취업성공패키지,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등을 경험했다고 답한 청년은 23.3%뿐이었다.

보편적 복지의 첫 경험은 그렇게 성남시 청년들에게 강렬하게 남았다. 성남시는 장기적으로 만 19~24살 청년으로 청년배당 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양석진씨는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한다. “못해도 월 100만원씩은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재원을 생각하면 월 30만~50만원 선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양씨와 달리, 청년배당을 받은 당사자들 가운데 ‘기본소득 정책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61.2%가 “모른다”고 답했다. “알고 있다”는 답변은 38.2%였다. 아직까지 기본소득은 낯선 개념이다.

하지만 정책 ‘용어’만 모르고 있을 뿐이지,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는 높았다. 기본소득을 객관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준 뒤 ‘기본소득 정책을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에 공감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 설명 내용은 이렇다.

‘기본소득은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매월 생활을 보장하거나 보조하기 위한 현금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빈곤과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책이라는 등의 이유로 찬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재원 마련의 불투명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념은 낯설지만 다 함께 누렸으면

이런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81.7% 나왔다.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16.1%,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는 1.4%에 그쳤다. 청년배당을 받은 ‘경험’이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과 공감도 등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더니, “재원 마련”(34.5%)과 “국회 합의”(34.5%)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국민 설득”(25.1%)을 꼽은 이도 적지 않았다.

눈여겨볼 대목은 기본소득 정책에 공감을 표한 응답자 407명 가운데 60.7%인 247명이 “기본소득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첫 번째 걸림돌로 ‘증세’를 꼽는 상황에서, 미래 시대를 책임질 청년층이 증세 필요성에 선뜻 공감하고 나선 것이다. 그만큼 청년층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 닥쳐올 위기감과 절박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년으로서 생활하기에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적어달라고 했더니, 2016년 한국 사회를 사는 청년들의 고달픈 심정이 절절하게 드러났다.

“기성세대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두렵다. 예를 들어 젊을 때는 고생해야 한다, 우리 때는 전쟁 등으로 고생했는데 배불리 자란 아이들이 배부른 소리를 한다 등등.”

“취업난. 취직해도 과중한 업무, 과다한 노동시간, 그에 비해 너무 적은 월급. 높은 주거비와 물가로 인한 생활고. 먹고살기 너무 힘들고, 독립을 꿈꾸기도 어렵고.”

“열정페이를 받으며 청춘을 힘겹게 보낸다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경제적 어려움. 아르바이트로 버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공부를 위해서 필요한 서적, 교통비, 그 외 여가활동 비용은 생각할 수도 없음.”

불안에서 싹트는 기본소득 공감

김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에 응답자의 81.7%나 공감했는데, 청년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미래에 대한 불안이 기본소득 공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9월28일 중구 을지로1가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청년들, 청년배당에 답하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연다. 청년배당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청년들이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성남시 청년들이 생각하는 청년배당과 기본소득1. 청년배당이 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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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일 당신이 청년배당 대상연령(만 24살)을 지나서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청년배당 정책이 유지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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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부의 다른 지원 혜택을 받은 경험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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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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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본소득* 정책을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에 공감하나?(*표 내용을 보여준 뒤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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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이 참고로 기본소득을 설명: 기본소득은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매월 생활을 보장하거나 보조하기 위해 조건 없이 현금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빈곤과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책 등의 이유로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재원 마련의 불투명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6. 5의 질문에 ‘매우’ 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답한 경우,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배당하기 위해 당신은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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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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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만약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찬반을 떠나서 매월 어느 정도의 금액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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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녹색전환연구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조사대상: 경기도 성남시 청년배당 대상자 498명(만 24살)
조사방식: 2016년 7월 일대일 대면 설문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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