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재벌들의 대를 이은 충성에 감복!

전경련
등록 2016-04-26 15:26 수정 2020-05-03 04:28

상상하던 일이 현실이 된 걸까? 보수단체들이 민감한 현안이 있는 현장마다 찾아와 ‘맞불 집회’를 벌이는 풍경을 보며 상상만 했던 일이 하나씩 진실로 드러나는 광경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보수언론이 ‘전문시위꾼’을 언급하며 마녀사냥에 몰두할 때, 그들의 악선동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전문시위꾼이라는 존재를 보수언론이 그저 지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 드러났다. 다만 그들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인 게 아니라 오히려 애국자라는 건 한 번 더 놀랄 일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는데, 보수세력은 꼭 자기가 하는 만큼의 눈높이로 남을 평가한 모양이다. 한 참가자가 “우린 2만원이지만 진보는 5만원씩 주면서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고 항변한 것은 여기서 작동하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보여준다. 이 냉소적 질서 안에서 ‘정치’란 어떤 가치들의 생산적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효율적으로 자금과 사람을 동원하느냐의 제로섬게임이다.

만일 누군가 고상한 소리를 한다면, 그건 반드시 위선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속으론 속물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진보라는 작자들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이건 보수주의자들이 동성애에 대한 공포를 반드시 특정한 성적 행위에 대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냉소주의자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정치적 주장을 그 존재 자체로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이면에 있을 만한 ‘사적 쾌락 추구’의 맥락을 반드시 상정한다. 사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도 보수세력을 규정하는 방식도 이런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일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것은 하필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들에게 금전을 지원한 걸로 보인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이른바 ‘재계’로 불리는 재벌 회장님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체이지 보수세력의 애국적 행위를 뒷받침하는 곳이 아니다. 이윤에 밝은 이 자들이 도대체 왜 이런 ‘뻘짓’에 가담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당시 세월호 참사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다며 어서 모든 것을 끝내자는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자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우린 ‘참 별소릴 다 한다’고 생각했으나, 어떻게 보면 이게 전경련이 상황에 개입할 어떤 명분이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경련이 정권을 보위할 순 없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할 수는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정황마저 그저 표면적인 것에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안다. 사실 전경련은 날 때부터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박정희 ‘장군’께서 혁명을 하실 적에 ‘부정축재자’를 일소하려다 경제 재건을 위해 이들을 복권해준 게 시초다. 풀려난 부정축재자들은 ‘경제인’으로 변신해 정권에 협력을 맹세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경제재건촉진회’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몇 번 명칭을 바꾼 끝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되었다. 대를 이은 충성에 감복할 일일까?그것보다는 이 정권의 물적 토대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올바를 것이다.

전문시위꾼들은 이렇게 의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의 진실을 폭로한 셈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