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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터넷을 설치하는 유령

⑥ 인터넷 기사의 랜툴: 기업의 지시 받으며 일하지만 전봇대 끝에서도 ‘진짜 사장’ 만날 수 없는 SK브로드밴드 기사 이영한씨
등록 2015-11-05 19:03 수정 2020-05-03 07:17

“안녕하세요? 고객님 SK 인터넷입니다. 208-2번지 2층으로 방문드려도 될까요?”

빨강·주황·회색이 어우러진 잠바, 잘 다려 ‘각’ 잡힌 바지를 입은 SK브로드밴드 이영한(41) 기사가 공구 가방을 어깨에 걸친다. 오른손에 동축케이블, 왼손에 랜선을 들고 계단을 오른다. 방 두 개짜리 작은 빌라다. 창문 밖으로 동축케이블을 던진다. 뛰어내려가 동그랗게 만 케이블을 어깨에 걸고 6m 통신주(통신선을 연결하기 위해 KT가 설치한 작은 전신주)에 오른다. 케이블을 연결하고 표지를 붙인다. 통신주에서 나온 50여 개의 선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다.

순식간에 7m 전봇대에 올랐다

모뎀, 셋톱박스, 와이파이(WiFi) 공유기를 꺼낸다. 인터넷 텔레비전과 전화,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한 3종 세트다. 피복 탈피기로 동축케이블을 열 바퀴 돌린다. 검은 피복을 벗겨내고 케이블을 모뎀에 연결한다. 왼손에 랜선, 오른손에 태커(대형 스테이플러)를 든다. 탈칵, 탈칵, 탈칵…. 컴퓨터와 전화기가 놓인 작은방에서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까지 랜선을 두르고, 태커를 박는다. 니퍼(전선이나 철사를 절단하는 공구)로 랜선 끝부분 피복을 벗긴다. 주황·파랑·초록 등 두 가닥씩 꼬여 있는 8개의 선을 하나씩 돌려서 푼다. ‘랜툴(인터넷선 연결 공구)’을 쥔다. 우둘투둘한 8개의 선을 깔끔하게 자른다. ‘RJ-45’라고 부르는 캡에 8개의 선을 꽂고 랜툴로 집어준 뒤 모뎀에 연결한다. 모뎀 불이 세 개만 들어온다. 낭패다. 바닥을 돌며 케이블선을 살핀다. 동축에 살짝 박힌 스테이플러를 발견해 제거했다. 모뎀에 8개의 불이 켜졌다. 텔레비전을 켠다. 머리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는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고맙다.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컴퓨터와 모니터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전원도 꽂혀 있지 않다. 팩스선까지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벨크로 케이블타이(접착테이프)를 꺼낸다. ‘고객만족도 3년 연속 1위’라고 적혀 있다. 전선을 가지런히 정리해 책상 뒤편으로 넘긴다. 설치가 끝났다. SK브로드밴드에 접속해 작업 결과를 전송한다. 40분이면 끝날 작업이 컴퓨터와 팩스 때문에 1시간20분 걸렸지만, 만족해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난한 동네일수록 영한씨의 노동이 길어지고, 못 배운 사람일수록 일손이 바빠지지만, 그는 기꺼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기사’가 된다. 해방촌 달동네를 나선다.

이번엔 빵집. 상가 건물은 가정집보다 힘들다. 전봇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안전모·안전화를 착용하고, ‘도지나’(고공 작업용 안전띠)를 몸에 두른다. 순식간에 7m 전봇대에 올라 동축케이블을 연결하고 내려온다. 이번엔 상가 건물 난간에 오른다. ‘스파이더맨’이다. 그의 손을 거쳐 건물 뒤편 고공 담장을 따라 환풍기로 들어온 케이블이 부엌 천장을 타고 빵집 매장으로 나온다. 영한씨가 랜선을 꽂고 랜툴로 집는다. 8개의 선 중에서 1, 2, 3, 6번이 들어가야 인터넷이 연결된다. 기가 인터넷은 8가닥을 모두 꽂아야 한다.

1994년 한국통신(현 KT)이 처음 시작한 인터넷 서비스는 전화 회선을 이용했다. 1998년 두루넷이 케이블 텔레비전 망을 이용해 처음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됐다. 2~3분 만에 2기가바이트(GB) 영화 한 편을 내려받을 수 있는 광랜(100Mbps)을 거쳐 16초 만에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 기가 인터넷(1Gbps) 시대다.

아파트와 고급 빌라는 벽면에 케이블이 내장되어 있다. ‘댁내 광케이블’(FTTH-Fiber to the home)이라고 부른다. 케이블TV 방송국에서 가정까지 광섬유 케이블로 연결돼 기존 ADSL에 비해 100배 이상 빠르고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일반 주택이나 상가는 광케이블과 동축케이블을 혼합해 연결하는 HFC(Hybrid Fiber Coax) 방식이다. 기가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통신사마다 ‘댁내 광케이블’로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산재 처리도 되지 않는 허울 좋은 ‘사장님’

고객이 영한씨에게 인터넷 속도를 묻는다. 동축케이블로 광랜이 가능한지 확인한다. 와이파이 안테나가 두 개밖에 잡히지 않는다고 따진다. 속도가 빠른 제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 “저희는 광랜이 동축케이블을 통해 들어옵니다. 상품 교체는 인터넷 기사가 임의로 할 수 없고, 고객님이 고객센터로 전화를 주셔야 가능합니다.” 영한씨가 고개를 숙인 채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굳어진 표정을 고객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12시40분. 빵집을 나온다. 물 한 잔 건네지 않는, 피곤한 고객을 상대하고 난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기가 인터넷을 신청한 고객이 인터넷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고 심하게 항의를 해서 컴퓨터를 봤더니 100Mbps 랜카드를 쓰고 있더라고요. 컴퓨터도 오래됐고.” KTX 열차에 무궁화호 바퀴가 달린 꼴이다. 통신업체 간 속도 경쟁, 할인 경쟁이 심화되면서 광고에 현혹돼 필요하지도 않은 기가 인터넷을 설치하고, 인터넷 기사에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다.

어떤 고객은 인터넷 기사에게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떼를 쓰고 본사에 전화한다. 재벌 통신사들은 ‘해피콜’로 기사를 조종한다. 전봇대에 오르고, 케이블을 연결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실력은 좋은데, 고객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기술은 좀체 늘지 않는다.

영한씨가 인터넷 기사가 된 지 꼭 10년이다. 2005년 파워콤(현 LG유플러스)을 시작으로 씨앤앰을 거쳐 2008년 SK브로드밴드 기사가 됐다. ‘2015년 초고속 인터넷 및 IPTV 고객만족도 5관왕 달성’. SK브로드밴드 홈페이지 첫 화면이다. 그의 잠바에 회사 상표와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지만, 그는 SK브로드밴드 직원이 아니다. SK브로드밴드 ‘마포Home고객센터’를 하청받아 운영하는 업체 SNK정보통신 소속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산행복센터’ 소속이었는데 마포와 통합됐다.

기본급 140만원, 식대 10만원, 주유비 30만원, 통신비 5만원. 전봇대에 오르는 생활 10년, 그의 월급명세서다. 휴일에 나와 일하면 7만원을 준다. 어린이집을 하는 아내가 없었다면 두 딸아이 유치원비를 대기도 힘든 월급이다.

SK브로드밴드는 정부의 고용형태 공시에 정규직 1576명, 기간제 31명, 간접고용(소속 외 근로) 101명을 신고했다. 정규직 비율이 92%가 넘는다. 85개 고객센터에서 설치와 수리를 담당하는 SK 인터넷 기사와 센터 직원 4천 명은 ‘소속 외 근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SK 옷을 입고, SK 인터넷을 설치하는 영한씨는 유령이다. 4천 명을 간접고용에 포함시키면, SK브로드밴드의 비정규직 비율은 73%에 이른다.

노동조합(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그는 ‘사장’이었다. SK브로드밴드는 하청업체를 통해 인터넷 설치기사를 ‘건당 수수료’를 받는 ‘소사장’으로 계약해 일을 시켰다. 영한씨는 저녁도, 휴일도 없이 미친 듯이 일했고 매달 300만원 남짓 받았다. 하지만 그 돈으로 기름값과 통신비, 자재비를 대야 했다. 인터넷 기사의 핵심 장비인 랜툴, 니퍼, 안전띠, 드릴도 지급하지 않았다. 퇴직금도 없고, 전봇대에서 떨어져도 산업재해 처리를 받을 수 없었다. 씨앤앰, 티브로드, LG유플러스 인터넷 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SK브로드밴드 용산센터 소속 기사가 모두 모였지만, 노조에 대한 반감이 컸던 영한씨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얘기라도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노조 설명회를 갔는데, 우리가 뭉치면 뭔가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지만, 노조에 가입한 걸 정말 만족합니다.” 그는 노조의 마포용산지회장이다.

‘초고속 무선 컨베이어벨트’에 서서

용산구 남영동의 한 식당, 오전 일과를 마친 영한씨가 점심을 주문한다. 그와 동료들이 모이는 ‘베이스캠프’이자 ‘함바집’이다.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울린다. 새로운 작업을 알린다. 오후 1시 예약이 취소되고, 3시와 5시 작업이 추가됐다. 2시부터는 1시간 간격으로 달려야 한다.

컨베이어벨트. 대형 철판이 들어와 차체, 프레스, 도장, 조립 공정을 거쳐 완성된 자동차가 탄생된다. 현대자동차의 계획과 지시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진다. 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은 독자성을 가진 ‘합법 도급’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현대차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의 진짜 사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영한씨의 진짜 사장은 누구일까? SK브로드밴드 텔레비전 광고를 보던 이태원에 사는 한 청년이 106번으로 전화를 건다. 타 통신사에서 SK로 갈아타기로 하고, 텔레비전과 전화, 인터넷 결합 상품을 신청한다. SK브로드밴드가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을 통해 영한씨 휴대폰으로 설치 지시가 뜬다. 영한씨가 용산동 4층 빌라로 향한다. 통신주에 오르고, 동축케이블을 연결하고,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설치한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결과를 보고한다. 영한씨를 비롯한 SK 인터넷 기사들은 ‘초고속 무선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일한다.

용산구청 뒤편 새로 문을 여는 커피전문점에 인터넷을 설치한 영한씨가 마지막 작업을 하러 간다. 작은 빌라 5층집, 설치 기사들이 총출동하는 이삿날이다. 두 명의 기사가 정수기를 설치하고 있다. 도시가스 기사도 다녀간다. 웅진코웨이, 서울도시가스 설치기사도 모두 비정규직이다. 지금도 비정규직이 넘쳐나는데, 박근혜 정부는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바꿔 비정규직을 더 늘리겠단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영한씨가 남영동 ‘함바집’으로 향한다. 일을 마친 기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SK브로드밴드지부 김재완 사무국장이 찾아왔다. 지난 3년, 씨앤앰을 시작으로 인터넷 기사들의 노조 결성이 ‘초고속’으로 이루어졌다. 케이블을 묶던 손으로 머리띠를 묶었고, 전봇대 대신 광고탑에 올랐다. 모 통신사의 기가 인터넷 광고처럼, 기사들의 ‘기가 팍팍’ 올랐다. 파업과 고공농성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 반격이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 1월6일 SK 본사를 방문해 해결을 촉구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222명에게 4억5천만원의 벌금을 구형했다. LG유플러스에선 극심한 탄압이 벌어졌다. 견디지 못한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가 잇따랐다.

“LG가 무너지면 SK도 무너질 수 있어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탄압하는데 LG가 버텨주면, SK가 탄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죠. 우리가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완 사무국장의 얘기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은 초고속, 삶은 제자리

영한씨의 인터넷 기사 10년, 인터넷 속도는 초고속에서 광랜으로, 기가 인터넷으로 빨라졌는데, 인터넷 기사들의 삶은 제자리다. 고객들의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초고속으로 높아졌는데, 서비스 노동에 대한 배려는 그대로다.

영한씨가 집으로 향한다. 내일도 그는 전봇대에 오른다. 인터넷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세상과 ‘접속’한다. 그런데 영한씨는 언제쯤 ‘진짜 사장’과 접속할 수 있을까? 가난한 노동자들의 ‘기가 팍팍’ 오르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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