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역사를 이룬다. 텔레비전은 역사의 지층을 곧잘 생략하고 현재의 단면만 조명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돼 살아온 소수자들은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지난 9월5일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은 재일조선인 우토로 마을 사람들의 애잔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었다. 수십 년의 힘겨운 싸움 끝에 강제퇴거 위기를 극복하고 반듯한 아파트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들. 한편으로 정든 마을 건물을 떠나보내는 애잔함과 쓸쓸함.
지난 8월23~24일 하하와 유재석이 경상도·전라도 음식을 싸들고 찾아가 강제퇴거 싸움을 마친 할아버지·할머니를 위로했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용비행장을 짓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들이 살던 함바집이 우토로 마을의 기원이다. 해방 뒤 우토로 마을의 땅 주인은 군수기업인 닛산차체에서 여러 번 바뀌었고 서일본식산이 부동산 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주민들은 강제퇴거 위기에 몰렸다. 2010년 한-일 시민사회 모금액으로 설립된 ‘우토로 민간기금재단’과 이듬해 한국 정부 지원금을 관리하는 ‘우토로 재단법인’이 우토로 땅을 구입했다. 두 재단이 소유한 땅은 전체 우토로 땅의 3분의 1이다. 강제퇴거 위기는 사라졌고 9월 안에 우토로 주민들이 들어가 살 공영주택 설립 공사가 시작된다. 1944년 마을에 들어온 1세대 강경남 할머니를 비롯한 재일조선인들을 보면서 유재석과 하하는 물론 텔레비전 앞에 앉은 국민들이 눈물을 훔쳤다.
인터뷰하다가 “날 좀 보소” 하던 할머니10년 전인 2005년 5월, 취재진은 우토로에 서 있었다. 에 나온 아흔한 살 강경남 할머니는 그때에도 민요가락을 곧잘 흥얼거리는 꼬부랑 할머니였다. 밥을 먹다가도 인터뷰를 하다가도 할머니는 갑자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하고 노래를 불렀다. 비가 오면 넘치는 하수도, 천장이 내려앉은 함바집, 방문자를 맞는 마을 앞 입간판도 10년 전과 똑같았다.
“우토로를 없애는 건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없애는 것이다.”
“우토로를 없애는 건 일본의 양심을 없애는 것이다.”
“우토로를 없애는 건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없는 것이다.”
풍경의 시간이 멈춘 사이 노인들은 세상을 떴다. 2005년 취재 당시 마을 인구 200여 명 가운데 40명이 일제시대 우토로에 들어온 1세대 노인들이었다. 지금은 강경남 할머니 등 2명만 남았다.
취재 직후 은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땅 소유주인 이노우에 마사미를 처음으로 인터뷰했고, 그는 5억5천만엔(당시 약 55억원)에 우토로 땅을 사라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상상하지 않았던, ‘옆구리를 찌르는’ 제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강제징용의 역사적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사라니?
그러나 역발상을 해봤다. 그까이 거 사면 어때? 따져보면 한국 정부도 1965년 한-일 협정 때 강제징용된 재일조선인의 권리 구제를 소홀히 한 역사적 책임을 비켜갈 수 없었다. 이렇게 등이 제안한 모금 캠페인은 선풍을 일으켰다. 젊은 활동가들이 모인 시민단체 ‘지구촌동포연대’(KIN)는 2005년 초 우토로국제대책회의의 사무국을 맡아 주도했다.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 대표는 지난 9월8일 “당시 모금 캠페인이 우토로 문제의 해결을 푸는 열쇠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우토로 문제가 공론화되고 해결되는 데는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 맨 처음 우토로를 알린 건 1989년부터 활동한 일본 시민단체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과 1991년 우토로 문제를 주거권 차별 차원에서 접근해 기사를 쓴 의 기자들이었다. 한국의 시민단체는 2005년 2월 지구촌동포연대가 현지 조사를 벌이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5년 6월 시작된 ‘우토로 살리기’ 모금 캠페인은 예상외의 호응을 불렀다. 한 주부는 남편 몰래 500만원을 쾌척했다. 남편에게 들킬까봐 익명으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경기도 성남 돌마고 3학년10반 학생들은 지각생에게 1천원씩 벌금을 걷었다. 78번의 지각으로 7만8천원을 모았다. 당시 인터넷 쇼핑 시장에 진출한 지마켓은 결제창에 우토로 기부 코너를 만들었다. 박원순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영화배우 김혜수·안성기 등 ‘우토로 희망대표 33인’이 모금 참여를 권유하는 릴레이 파도타기를 시작했다.
그해 8월에는 1천만원의 성금이 들어왔다. 익명을 요청한 성금의 주인공은 10년 뒤 의 멤버로 우토로를 방문한 유재석씨였다. 당시 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유재석씨는 고사했다. 지난 9월9일 다시 한번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소속사 관계자를 통해 “많은 분들이 기부를 하셨고, 제 기부가 특별히 큰 도움을 준 건 아니었을 것”이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유재석의 1천만원이 채워져 그해 8월5일 현재 모금액은 1억4838만3657원까지 치솟고 있었다(그는 지난 8월 방송차 우토로에 방문했을 때도 50만엔을 조용히 내놓고 갔다).
결국 문재인 비서실장의 확답청와대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월급 한 달치를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의식한 외교안보 라인에서 반대했다. 대통령의 모금 참여는 좌절됐지만, 이런 청와대의 뜻은 우토로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던 외교통상부를 바꾸기 시작했다.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그해 10월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답변에서 “일차적으로 재외동포재단 기금을 통해 지원하고,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경우 예비비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직원들은 그해 말 월급에서 갹출해 120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우토로 운동은 2007년 고비를 맞았다. 외교통상부가 그해 5월 우토로 주민회에게 전화를 걸어 “토지 매입에 정부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며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우토로 주민들은 놀랐다. 주변에서는 노무현 정부 말기가 되자, 외교통상부가 원래 입장으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9월9일 배덕호 대표가 말했다.
“그 뒤 주민회가 방문해 국회에 꽃다발을 전달하며 나섰고 사회의 어른들이 움직여줬어요. 우토로긴급연석회의 형태로 박연철 변호사, 함세웅 신부, 수경 스님 등이 거의 매주 조찬모임을 하면서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인터넷 블로거들이 열심히 활동했고요. 결국 청와대 문재인 비서실장을 만나서 확답을 받아냈지요.”
한-일 시민사회 모금액 1억3천만엔으로 2010년 우토로 땅 2750.52㎡(약 833평)를 샀고, 이듬해에는 정부 지원금 1억7천만엔으로 3808.4㎡(약 1154평)를 추가 매입했다. 땅 매입이 완료되면서 우토로 살리기 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린다. 이듬해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해산한다. 우토로 주민회는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일본의 소수자 ‘조선인’으로서 투쟁그러나 여기까지는 막판의 등장인물들이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싸운 우토로에 사는 ‘재일조선인’들과 옆에서 묵묵히 함께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다. 운동의 중심에는 우토로 주민회가 있었다. 우토로 민족학교 폐쇄, 토지 및 거주권 문제,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 미비 등과 관련해 해방 직후부터 주민들은 일본 정부와 투쟁을 벌여왔다. 은 우토로 주민들을 ‘한국인’이라고 지칭했지만, 그것은 한국인으로서 싸움은 아니었다. 1948년 남한 정부 수립 뒤 생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우토로 주민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건너왔다. 해방이 되고 돌아가지 못했다. 1947년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외국인등록령’이 선포된다. 일본 국적이 박탈되고 하루아침에 외국인이 돼버린 재일조선인들은 자신의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적었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창건되지 않은 때였다. 이듬해 한반도는 분단됐다. 한-일 수교가 이뤄지면서 어떤 이들은 한국 국적을 택했다. 일본 국적을 택하고 귀화한 이도 있었다. 반면 조선적을 지금까지 고수하는 이도 있다. 북한의 국민으로 생각하는 사람, 분단 조국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려는 사람이 혼재돼 있다.
이를테면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일본어를 쓴다. 국적은 한국적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문화적으로 ‘일본인’이지만, 소수자 ‘조선인’으로서의 삶도 겪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을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라고 하면서 이렇게 일갈한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말을 민족의 총칭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는 호칭은 국민적 귀속을 나타내는 한정적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서경식, )
우토로 주민들의 투쟁은 일제시대 이후 일본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간 ‘조선인’으로서의 투쟁이었지, 남한의 근대공화국을 동경하는 ‘한국인’으로서의 투쟁은 아니었다. 우토로 주민들을 줄곧 옆에서 지킨 단체는 총련이었다. 2002년 총련이 주도해 고령자 복지시설인 ‘에루화’를 지었다. 미나미야마시로 동포생활센터도 우토로의 일상사를 챙겨왔다.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이 벌어지기 전 이미 총련은 100만엔의 지원금을 전달했고 그 뒤 1500만엔을 추가 지원했다. 2013년 우토로에 물난리가 났을 때 총련은 국적에 상관없이 위문금을 전달했다. 우리는 한국인을 강조하려 하지만, 우토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적보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삶의 정체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총련이 조용히 우토로를 지켜온 점이 이해가 된다. 재일동포 사회의 한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의 혐한 정서와 남한의 종북 논란이 있지 않습니까? 우토로 문제에 총련이 나오면 오히려 절호의 시빗거리를 줄 수 있으니까요. 우토로 주민들도 그런 점을 이해하고 있고요.”
역사기념관 건립 자금은 빠듯한데우토로 주민들은 한국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들을 국민국가에 포섭하거나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불편해한다. 게다가 이런 시선은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조선인들에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사이토 마사키는 지난해 8월 열린 지구촌동포연대 포럼에서 “(일부 한국 대중매체 프로그램에서) 피해자성이 강조되면서 일본 사회에서 생활하는 소수자의 미묘한 현장에서의 문제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그것은 재일한국인을 위해 일본의 세금을 쓰지 말라며 우토로 주변에서 혐오발언을 하며 어슬렁거리는 우익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우토로 마을에는 60가구 200여 명이 산다. 재일조선인 사회의 최근 추세에 따라 한국적·일본적으로 바꾼 사람이 늘었다. 현재 조선적과 일본적이 각각 10여 가구, 나머지는 한국적이다.
9월 안에 우토로 마을의 철거가 시작된다. 두 재단이 매입한 땅에 우지시가 공영주택을 짓는다. 불량주택 개선사업의 일환인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우토로 마을에서 재일조선인을 지원하는 동포생활지원센터의 김수환 대표는 지난 9월9일 전화 통화에서 “한 동을 먼저 짓고 나중에 한 동을 짓는다. 9월 건설장비 진입을 위한 도로 확장공사에 들어가 5년 안에 완료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자신이 들어갈 공영주택의 공사가 이뤄지는 동안 주민들은 임시 거주지로 이주한다.
우토로의 옛 건물이 헐리면 기억의 장소도 사라진다. 이를 위해 우토로 주민회와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모금 초기부터 ‘우토로 역사기념관’ 건립을 사업계획에 포함시켰다. 이를 위해 2012년 민간모금 잔여분 2천만엔이 우토로에 전달됐다. 소박한 단층 건물은 지을 수 있지만, 내장 공사를 하고 전시 자료를 채워넣기에는 빠듯한 액수다. 우토로 주민회는 ‘마치즈쿠리 사업’에 역사기념관 건립을 포함시켜달라고 우지시에 요청했다. 배덕호 대표는 “일본 정부 예산을 받으면 온전한 내용을 넣기 힘들 테고, 일본 정부 또한 혐한 정서 때문에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일조선인과 관련한 역사관은 도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건물에 있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유일하다.
남종영 토요판 기자 fand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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