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인권선언’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 ‘416 인권선언’은 세월호 국민대책회의가 발의한 것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대의를 표방하고 있다. 오는 6월20일에는 전국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선언의 원칙과 내용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인권선언은 과거의 비참과 단절하고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을 담아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봉건적 권력에서 해방된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원리로서 모든 이에게 천부적으로 귀속된 평등과 자유의 권리를 선포했다. 1948년 ‘세계 인권선언’은 전쟁과 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으로 “인종·성별·언어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이 없는 인권과 자유의 존중, 그리고 이를 위한 국제협력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반성과 참사 이후의 인권과 안전사회를 구상하는 ‘416 인권선언’은 어떤 점에서 특이점이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질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단원고등학교의 교실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단원고 교실을 방문했을 때, 나는 학생 250명, 교사 11명이라는 희생자 수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이고도 선명한 실체와 맞닥뜨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라진 사람들’ 하나하나의 모습이었다. 책상 하나, 교탁 하나마다 다른 종류의 기억, 이야기, 대화, 사진, 취향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마치 261개의 칼처럼 사라진 사람들의 개별성이 나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왔다.
나는 생각했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사라졌구나. 너무나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구나.’ 동행했던 희곡작가가 내게 말했다. “보통의 교실에선 빈자리가 학교를 떠난 아이의 자리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빈자리가 살아남은 아이의 자리네요. 꽃과 과자와 편지가 가득한 저 자리들이 오히려 사라진 아이들의 자리네요. 그렇다면 이곳은 교실이 아니라 묘지가 아닌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곳은 교실도 아니지만 묘지라고 부를 수도 없다. 살아남은 이들이 사라진 이들의 죽음을 온전한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유가족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 유학 갔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죽을 수 있어요.” 사라진 아이들의 책상과 선생님들의 교탁에는 “돌아오라” “기다리고 있다”라는 메모가 가득했다.
그러므로 ‘416 인권선언’은 일반적인 인권선언, 산 사람과 밝은 미래를 위한 선언과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416 인권선언’은 국가폭력과 사회적 재난의 희생자들을 위한 권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사라진 이들이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인 불의의 희생자였음을, 국가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죄씻김을 통해서만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가 가능함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과거 인권선언을 다시 쓰는 작업역사적으로 인권선언은 확장을 통해 재선언되었다. ‘국제인권선언’은 국적을 가진 시민들에게만 적용돼오던 ‘프랑스 인권선언’을 전세계의 소수자들로 확장한 것이었다. ‘416 인권선언’은 이제 산 자의 인권을 죽은 자의 인권으로 확장하려 한다. 이미 일어난 참사의 진실 규명을 미래의 인간존엄과 안전사회를 위한 토대로 다지려 한다.
그러므로 ‘416 인권선언’은 국가폭력과 사회적 재난이라는 ‘특수한’ 사안과 관련한 인권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인권선언의 보편성을 계승하며 다시 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감히 말하건대 ‘416 인권선언’ 제정은 역사적인 사건이 되어야 한다. ‘416 인권선언’의 원칙과 내용을 마련하는 데 많은 시민들의 대화와 참여가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심보선 시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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