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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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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저

등록 2015-04-25 16:08 수정 2020-05-03 04:28

영어를 어렵게 배울 때, 10대들은 흔히 “우리말이 국제어였으면 좋겠다”고 푸념한다. 그들은 한국어 구사 능력이 세계적으로 큰 이득이 없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생활’의 풍경을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한국에서라도 한국어를 잘하는 게 이득일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교육열 높은 한국인이 강조하지 않는다면

책 읽지 않는 한국인들을 질타하는 논의는 많다. 공교육이 독서능력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질타하는 논의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들은 공교육에서 그걸 강조하지 않더라도 독서를 중시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결국 공교육 과정도 엄청난 압력을 통해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실은 이 사회에서도 한국어를 잘하는 게 이득이 없는 게 아닐까?

이렇게 물을 때, 많은 이들은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해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말 잘한다’는 표현은 주로 사람을 웃기거나 그의 주의집중을 흩트리는 종류의 화술을 의미한다. ‘가방끈이 길다’라는 말은 그가 학교에서 공부한 시간과 자격증을 지칭한다. 그 외에는 ‘영어를 잘한다’ ‘법을 잘 안다’ ‘코딩을 잘 짠다’ 유의 전문 영역을 익히기 위한 특수언어에 관한 서술밖에 없다. ‘언어능력이 좋다’는 말을 사람에게 칭찬으로 쓰거나, 그게 업무와 관련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어진 상황을 되도록 길지 않은 분량으로 상대방에게 오해가 없도록 서술하고, 상대방의 진술에서 그가 전하는 상황을 정확하게 유추하는 능력이 현대사회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론 민주주의 체제를 형성했고 경제적으론 선진 공업국에 진입했음에도 이 능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구조화된 것으로 보인다. ‘언어능력이 좋다’는 말을 대체하는 이 사회의 단어들에서 보이는 건 종적으로는 학력을 차별의 근거로 삼는 계층사회이며 횡적으로는 전문가들의 언어를 매개할 영역이 없는 파편화된 사회, 사적 영역에서는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재담에 기대어 피로를 풀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조건이 이 나라의 정치·사회·문화적 현상의 상당수를 설명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의사소통 능력을 중시하는 영역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회가 돌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로 공무원 관료 조직이나 대기업의 일부 영역이다. 물론 그 외 많은 영역도 상황과 업종에 따라 언어적 소통을 한다고 믿겠지만 대체로는 업계 전문 용어의 영역이다. 전문용어로는 치열하게 소통하지만 일상적 소통의 질은 빈약하다. 그러니까 “큰 조직에 가야 그나마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다”는 어른들 말씀과 공무원과 대기업에 대한 청년들의 선호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필요한 건 ‘이그저’ 파악 능력

그 외 영역은? 중소기업들은 사장이 황제인 소왕국이며 그들 대부분은 대기업의 협력업체이기에 갑을관계의 먹이사슬망에 있다. 학교든 교회든 기타 여러 영역도 마찬가지. 군대? 군사문화를 탓하기엔 요즘은 차라리 군대가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군대는 장기적으론 저 ‘큰 조직’들을 닮아갈 것이고, 우리 사회의 작은 조직들이 소왕국을 벗어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곳에선 의사소통 능력이 아닌 권력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권력을 가진 이의 심기를 살피는 기능이 요구된다. 본인도 언어능력이 부족해 ‘이그저’를 남발하는 권력자의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요즘은 TV에 자주 나와야 할 대통령도 가끔 나와서 ‘이그저’를 남발한다). ‘큰 조직’이란 정부조직이나 대기업도 업무 효율을 위한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을 챙기는 정도다. 그들도 ‘오너 경영’이나 ‘비자금’을 건드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언어능력이야 아무래도 좋지 않겠는가? 그 능력을 키운 소수가 있다 해도, 그걸 사적 영역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선 질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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