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손으로 간신히 마이크를 쥔 채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온몸을 쥐어짜야 하는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차별이고 뭐고, 제도고 뭐고, 당장 자기 옆에서 유창한 언어를 술술 구사하는 당신이야말로 위협적이지 않겠습니까.” 몇 해 전 장애학을 공부하는 자리에서 강사가 던진 한마디가 심장에 꽂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장애인 차별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고, 장애인을 동등하게 대한다고 믿었으며, 이 거대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 맞선 그/녀들의 싸움에 연대할 줄도 아는 감수성 높은 존재라고 은근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게 착각이고 자만이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자만을 일깨운 노들장애인야학 이야기</font></font>
이 기울어진 사회에서 내가 동등하게 대한다고 해서 나와 그이들 사이에 놓인 기울기가 곧장 평형이 될 수는 없지. 장애인 차별에 대해 문제라고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그이들이 차별받아온 역사를, 그래서 움츠려 있거나 투박하거나 뒤틀린 삶을 제대로 보듬어본 적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내 삶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잠시 곁을 내주는 걸 연대라고 포장하고 있었구나. 분명 감지하고 있었으되 인정하기 싫었던 깨달음이 몰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이후 나는 장애인 차별을 말할 때 좀더 겸손해졌으며, 그이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기울기와 거리를 외면하지 않은 채 그이들의 세계가 더욱 많이 궁금해졌다.
지금 내 앞에는, 나와는 달리 차별의 역사를 품은 그/녀들의 존재를, 통증이 체화된 삶들이 보내온 간절한 타전을 보듬으며 20년을 달려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놓여 있다. 어릴 적 숙제하기 싫어서 도망 다니던 동생마저 부러웠던 사람, 스물 또는 서른을 훌쩍 넘겨서야 생애 첫 외출에 나선 사람, 자기를 때린 식구들이 무심히 밥을 먹는 옆에서 얼굴을 돌려 울음을 삼킬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한 사람, 언제 시설로 보내질지, 언제 저들의 호의가 철회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사람, 시멘트 길 위를 밤새 네발로 기어 시설을 도망쳐나온 사람들이 배움을 찾아 모인 그곳, 노들장애인야학의 이야기다. 야학교사 홍은전이 아흔아홉 권의 소식지와 수천 장의 회의록, 20년간의 일지를 바탕으로 노들야학을 일궈온 사람들의 인터뷰까지 얹어 라는 책을 펴냈다. 울컥 눈물을 쏟았다가 까르르 웃었다가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가 오랫동안 멈춰 생각에 잠기느라 다 읽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나는 홍은전이 노들야학 20년의 역사를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는 인디언의 기우제를 닮았다고 자부하면서도, 상찬에 치우치기보다 치열했던 분열의 역사로 기록해줘 감사했다. 어느 날의 학생일지에 남겨진 기록처럼, 웃긴 웃었는데 무슨 일로 웃었는지 모르겠는 일상과 배움을 열기 위해 온몸을 펼쳐 이 사회에 충격을 가해야 했던 투쟁의 역사는 고단해 보였다. 그렇게 얻어낸 제도의 결실조차 언제나 허기지지 않았던가. 한글을 깨치는 데만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 더해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까지 보듬겠다는 수업의 역사는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존재의 우주를 껴안는 수업이라니, 대체 답이 있기라도 한 걸까. 느린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밥 먹고 놀기 위해 비장애인은 더 빨라지고 고단해져야 했던 역사는 위태로워 보였다. 비장애인에게 너무 가혹한 조건이 아닌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멈추지 않는 인디언들처럼, 그럼에도 노들야학은 그 고단하고 비효율적인 일을 멈추지 않았고, 키워낸 근력만큼 낯선 존재의 등장을 고맙게 여길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사회가 던져준 조건 위에서는 분열할 수밖에 없는 간극조차 ‘추억’으로 만들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분열이 추억이 되기까지</font></font>책을 덮으며 나는 노들야학이 지난 20년간 울고 웃으며 흘린 눈물이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분열이 추억이 되기까지 온 존재를 끌어안는 만남의 공간은 도처에 간절하지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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