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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올해의 다짐

등록 2014-01-17 14:5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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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새해에 무엇무엇을 해야지, 이것저것을 고쳐야지 하는 다짐들을 한다. 그중엔 금연도 있을 테고 절주도 있을 것이며 내 집 장만이라든가 결혼 같은 큰 결심을 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전에 다짐한 것이 있다. 일단 금연은 2013년에 시도해봤으나 일주일도 못 넘겼기 때문에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절주는 타종 행사가 지나서도 사진관에 홀로 남아 술병을 깨끗하게 비우고 있었으니 당연히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들보다 편하게 보낸 2013년

올해 다짐은 큰 것은 아니고 매번 도와주는 분들, 좋은 인연들에게 인사를 잘하자라는 것이다. 2013년엔 입이 다물어지지도 않을 만큼 몰염치한 일들이 이 아름다운 자유대한에서 많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데, 2014년이라고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어 대신 인사를 더 많이 하기로 했다.

실은 나의 2013년은 적어도 주위 친구들보다 편했다. 좋은 일이 많았고 법정에서 억울함도 조금이나마 덜었으며,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발전은 아니더라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다. 그러니까 짝퉁 공안 사범 신세로 법원 드나들 일이 이젠 없어졌으니 원래 모습의 날건달 사진쟁이 자영업자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는 말인데, 보통 이런 노력엔 어떤 조건이 반드시 따른다. 그건 바로 남의 일은 남의 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 조건을 선택했고 덕분에 품행은 전과 같이 가벼워졌으며,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 감퇴됐다고 동네방네 소리 질렀던 성욕도 조금은 돌아온 듯하다. 난 이런 선택이 옳았다고, 실은 몇 주 전까진 정말 옳았다고 생각했다.

2011년의 일이었다. 12월1일 국가보안법 제정일이었고, 내 사건을 계속 지켜보던 친구들은 ‘뉴타운 간첩파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행사를 서울 정동 대한문에서 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국가의 미감에 벗어나는 영상과 음악들을 틀거나 연주했으며, 국가의 미감에 벗어나서 설렁탕을 코로 드시고 성욕까지 감퇴된 저 운도 지지리 없는 친구에게 진지한 위로보단 쓴웃음을 줬고, 시종일관 진지해야 인민들을 구제할 수 있는 자유대한에도 즐거운 웃음을 주려는 의도의 행사였다. 물론 ‘간첩파티’라는 이름 덕분에 국가정보원에 민원이 얼마나 들어왔을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지 못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왜 하필 그분에게 체포영장이

최근에 알게 된 일이다. 이 2011년 12월1일에 대한문에서 나를 만난 노동자가 한 명 있었다. 이름도 최근에야 기억이 났다. 그는 본인이 몸담고 있는 노동조합 기관지에 대부분 꺼리는 사안이었던 내 사건 이야기가 실리도록 힘썼고, 심지어 내가 구치소에서 나랏돈을 낭비할 무렵 세금 축내지 말고 빨리 나오라고 후원까지 해준 사람이었다고, 아는 친구가 말해줬다.

그리고 이젠 그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뒤늦게 들었다. 엥, 갑자기 무슨 체포영장인가, 이쯤 되면 눈치채겠지만 그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남자는 철도노동자다. 깜짝 놀란 나는 그동안 방치했던 정신머리를 급하게 정리하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지면에 안 쓸 수가 없었다. 갉아먹힐 게 따로 있지, 이런 일을 말하지 못할 정도로 내 존엄까진 아니더라도 염치가 갉아먹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여기에 이렇게 쓴다고 내가 덜 건달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1월11일은 내가 구속영장을 받은 지 2년이 되는 날이라 지난해부터 기념일이랍시고 술 먹고 놀았는데 올해는 인간적으로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철도 파업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사람은 35명이고 구속된 사람은 2명이라고 한다. 와, 뭐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지? 당연히 이런 넋두리를 새해 인사라고 하기도 죄스럽다. 나는 올해 다짐을 제대로 지킬 수나 있을까?

박정근 사진관 사장 겸 국가보안법 피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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