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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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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 ‘지인지살’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에게 바른 육아의 길을 묻다
“항상 부모에게 하는 말은 ‘지 인생 지가 사는 것’”
등록 2013-12-05 15:00 수정 2020-05-03 04:27
탁기형

탁기형

자신의 인터뷰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며 김선우 시인이 황홀하게 긴 소감을 보내주었다. ‘나 장하구나. 내 마음 잘 보호하고 좋은 방향으로 잘 변화시켜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칭찬해줬어요.’ 자기 보호도 실력이라는 평소의 내 지론에 비추어본다면 김선우 시인은 삶에서도 최고 실력자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 인터뷰의 제목을 ‘김선우의 힘’이라고 정한 편집자는 눈 밝은 사람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서천석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육아 멘토링</font></font>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인터뷰 제목으론 무엇이 어울릴까 잠시 생각했다. 시인과 또래인 이 소아정신과 의사가 글을 통해 펼쳐내는 콘텐츠의 힘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육아와 관련된 조언의 영역에선 ‘서천석 이전과 이후’로 나눠도 될 만큼 그의 콘텐츠는 독창적인 동시에 알맹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그가 쏟아낸 다양한 콘텐츠가 조금의 과장도 없이 거기에 부합한다. 서천석의 콘텐츠를 처음 접한 이들은 짤막하게 쓰인 그의 글 백 몇 개를 한자리에 앉아 꼼짝없이 읽어야 했다는 경험담을 털어놓곤 한다.

재미있는 건 그것이 아직 미혼이거나 육아에서 완전히 해방된 연령대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의 콘텐츠가 육아에만 국한되지 않고 범용성이 있다는 증거다. 어떤 경우든 사람을 바탕으로 하는 콘텐츠라서 그렇다.

서천석의 육아 관련 조언은 부모를,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기능적 역할로서가 아니라 부모도 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명제를 이론적으로만 주창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태도를 견지한다. 당연히 아이에 대해서도 그렇다. 아이는 부모가 돌봐야 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부모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자식 간의 문제도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얘기로 귀결된다. 그러니 육아와 관련 없는 이들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한 정신과 의사는 성악가의 악기가 자신의 몸이듯 정신과 의사는 자기의 품성이 치료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서천석이라는 소아정신과 의사가 펼쳐내는 독창적이고 범용성 있는 콘텐츠의 근간은 서천석 그 자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font color="#C21A1A">-생산해내는 콘텐츠 양이 굉장해요.</font>

글쎄요. 굉장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요. (웃음) 한 달에 원고지 100매 정도 써요. 기자들은 한 달에 200에서 400매 쓴다는데 그에 비하면 적은 양이죠.

<font color="#C21A1A">-강의, 진료, 트위터, 칼럼, 방송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뭔가요.</font>

노는 게 제일 재미있죠. (웃음) 제일 보람 있는 건 무엇보다 진료고요.

<font color="#C21A1A">-진료는 안 지치세요.</font>

진료가 보람 있는 만큼 힘은 들어요. 그 순간엔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이 사람에게 변화를 일으켜야 되니까요. 도와달라고 온 거고 어찌됐든 제가 변화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제일 부담스럽고 힘도 들어요. 하지만 진료하고 나서 부모들과 아이들이 달라졌을 때 큰 행복감을 느끼죠.

<font color="#C21A1A">-자기 말이나 글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수용되고 영향력을 미치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font>

없어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어요”</font></font>

너무 짧고 단호한 대답이라 순간 당황했다. 그걸 바탕으로 연결 질문하려던 계획도 다 틀어졌다. 변형해서 한 번 더 물었다.

<font color="#C21A1A">-트위터 팔로어도 적지 않고 책도 ‘올해의 책’ 투표 대상이 될 만큼 독자가 많아요. 하루에 하나씩 라디오 칼럼을 할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남겼고요. 왜 그랬다고 생각하세요.</font>

글쎄요.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어요.

<font color="#C21A1A">-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니겠어요.</font>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남의 반응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에 내가 바꿀 수도 없고 그 사람의 생각이나 바람에 내가 맞춰서 살 것도 아니니까요. 굳이 생각해보자면 사회 전체에 대한 불안이 높아져서 그런 거 같아요.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고 있다’ ‘인간의 대우를 해달라’ 그런 요구가 높아진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얘기에는 가장 어린 아이에게도, 힘든 사람에게도 인간에게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호응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font color="#C21A1A">-남의 시선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어요. 하지만 트위터 팔로어가 10만 가까이 되거나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가 수만 명이 되면 본의 아니게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들이 있지 않나요. 내 취향과는 별개로 내 말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font>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팔로어가 많고 독자가 많다고 해서 내가 한 행동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까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의 콘텐츠에서 초지일관하게 느껴지는 자기중심성 혹은 독립성의 한 맥(脈)을 다시 확인하는 느낌.

<font color="#C21A1A">-이 시대 대표적인 육아 멘토라고 불리더군요.</font>

확실한 과장이죠. 멘토라는 말도 썩 좋아하지 않고요.

<font color="#C21A1A">-저도 멘토라는 말에 확실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육아 멘토’라는 영역에선 ‘서천석 이전과 이후’라는 분기점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계몽질하고 훈계질하는 멘토들과는 완전히 다르단 말이죠. 지극히 실용적인 팁을 주면서도 엄마들을 격려하고 위로한다는 느낌이거든요.</font>

이런 차이는 있어요. ‘기술적으로 아이를 어떻게 다룰 수 있다’는 게 기존 콘텐츠의 흐름이었다면 저는 기술과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생활 속 전체적인 모습과 관련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죠. 세부적인 것보다는 인간 전체가 어떤 생태계 속에서 살고 있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바뀌어야 그 사람이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바뀌죠. 육아 상담을 할 때 기술적인 팁만 주는 건 아이들을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술을 줘서 한쪽으로 이끄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 대접하는 게 중요하죠. 사실 이게 정신과라는 학문에서 본질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죠. 대단히 특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font color="#C21A1A">-하지만 그런 공부를 했다고 해서, 안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잖아요.</font>

제가 모범생 스타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웃음) 배우면 배운 대로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이를 망치는 건 부모의 불안감”</font></font>

품성이 콘텐츠의 질을 그런 식으로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겠구나.

<font color="#C21A1A">-부모의 ‘불안’이 육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걸 끊임없이 강조하시더군요.</font>

불안이 너무 높아요. 그래서 애들도 잡는 거거든요. 불안이 시대의 일반적 키워드이기도 한데, 육아에서는 더 극단적이에요. 공부시키고, 압박하고, ‘너 이러지 않으면 잘못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잘될 거라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아요.

<font color="#C21A1A">-그래서 부모들에게 위로·격려·지지를 많이 하시는 건가요.</font>

그렇죠. 어떻게든 부모의 불안을 완화시켜야 아이에게도 불안을 덜 주거든요. 예를 들어 지진이 나면 사람이 죽잖아요. 그런데 땅이 갈라져서 거기에 빠져 죽는 사람은 없어요. 집이 무너져서 죽거든요. 세상이 지금 위험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갈 수는 있지만 그걸로 인해 아이들이 당장 상처받지는 않아요. 하지만 부모는 말하자면 건물이에요. 부모가 흔들려서 결국 애가 상처를 입는 거죠. 물론 건물이 흔들리는 건 지진 때문이듯 부모가 흔들리는 것도 사회의 어떤 분위기나 시스템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부모가 덜 흔들리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덜 주는 거죠. 부모가 덜 흔들리게 하는 게 제 역할인 거죠. 흔들리는 집에다 지지대를 세워주는 거죠.

<font color="#C21A1A">-어떤 종류의 지지대를 제일 많이 쓰세요.</font>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게 쓰죠. 위로가 필요할 땐 위로를 하고 깨달음을 중시하는 사람에겐 인식의 변화를 주고요. 어떤 분들은 감정적인 위안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또 어떤 분들은 한두 가지라도 현실적인 해결책에 위로를 받기도 하죠. 현실적 성공 경험을 해야 지지가 되는 사람도 있고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방법을 쓰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지받기 쉬운 것을 찾아내는 게 중요해요.

<font color="#C21A1A">-지나칠 정도로 문제 해결을 중시하시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얘기겠군요. 부모들이 서천석이란 전문가를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겠고요.</font>

제 특성이기도 할 텐데요. 저는 일단 나에게 온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까를 부모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생각합니다. 현실 상황을 인정하고 한 발자국 더 나갈 수 있는 게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나 막연한 이야기는 별로 안 좋아해요.

<font color="#C21A1A">-솔루션이 중요하다는 거죠.</font>

무척 중요하죠. 돈값을 해야 하니까요. 내 개똥철학을 설파하고 돈을 받을 수는 없잖아요. 가끔 제가 ‘자뻑’에 들어가서 구체적인 걸 안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날은 후회가 돼요.

<font color="#C21A1A">-자뻑이라고 하면 뭘 얘기하는 거죠.</font>

내 철학을 전달하는 데 급급한 거요. 내 철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은 방향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죠. 이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줬는가, 안 줬는가.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철학이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도움이 안 되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다른 걸 줘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자뻑에 빠져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도움이 안 되는 거죠.

<font size="4"><font color="#008ABD">“화내는 원인은 부모 안에 있다”</font></font><font color="#C21A1A">-그런 게 본인의 스타일이기도 하세요.</font>

저는 균형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스타일이에요. 균형 잡힌 상황에서 현실적 해결책을 찾고 또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 거에 대해서 경계를 많이 하도록 성장해온 것 같아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중용’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던 장면이 지금도 생각나요. ‘중용’이라는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나이인데도 그때 그 말을 듣고 저게 정말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그 선생님이 잘 가르쳤다기보다는 그게 중요하다고 이미 생각을 해왔는데 선생님이 그걸 정리해서 알려주신 거겠죠.

<font color="#C21A1A">-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군가요.</font>

없는데. (웃음)

<font color="#C21A1A">-영향을 잘 안 받으시나봐요.</font>

네. 다른 사람의 영향을 잘 받지 않아요. 누군가도 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햐, 저 사람 멋있다’ 하면서 누구를 따라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직업적 특성으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존재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남다른 느낌. 대장장이 집에 쓸 만한 식칼 없다는 속담과 맞물릴 만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font color="#C21A1A">-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font>

좋죠.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웃음) 우리 애들은 너무 착해요. 행복한 경우죠.

<font color="#C21A1A">-잘 키워서 그런 건가요.</font>

아니요. 타고나기를 그런 애들인 거죠.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의 약점을 긴 시간을 통해 조금 완화시키는 정도예요. ‘세상은 살아볼 만할 것 같아’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야’ ‘사람들은 날 좋아해. 나도 사람들을 좋게 생각해야지’ 이런 마음을 만들어주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그런 건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font color="#C21A1A">-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그런 적은 없나요.</font>

아이에게 화가 난 적은 없어요. 그냥 한계가 있는 거지, 그게 화가 날 일은 아닌 거죠. 제가 진료실에서도 부모님들과 그거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요. ‘이게 정말 화가 날 일인가?’ 그걸 끝까지 길게 이야기하는 거죠. 아이는 원래 부족하고 모자라고 못하는 건데, 그게 왜 부모가 화가 날 일인지. 어떤 지점 때문에 화가 나느냐고 물으면 그때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내가 힘드니까 화가 난다. 내 뜻대로 안 풀리니까 화가 난다. 내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것. 내가 책임져야 될까봐 불안한 것. 아이가 잘됐으면 하는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이 무너지는 것. 결국은 나와 관련된 이슈가 다 나와요. 그러면 이제 그것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아봐야죠. 결국 화가 나는 이유는 내 내부에 있다는 거예요. 내 행동은 소재고, 그걸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부모 내면에 있기 때문에 그걸 찾아야죠.

<font color="#C21A1A">-부모와 아이는 그냥 각각이다 그런 얘기인 거죠.</font>

네. 제가 부모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지인지살’이라고 ‘지 인생 지가 사는 거다’ 그런 뜻이에요. (웃음)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아가는 거지 그걸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요. 지금 내 존재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인간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게 유리해요. 중요하지도 않고요.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게 숙명이고 그걸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내가 결정하는 거죠. 지금 삶의 모습에 만족을 느끼면 행복이 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행복이 미래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림책·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font></font><font color="#C21A1A">-그래도 미래 계획이 있긴 하겠죠.</font>

그럼요.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돈도 버니까 지금 직업에 만족하는데 50살이 지나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죠. 창조적인 일을 더 많이 할 생각이에요. 그림책작가나 드라마작가는 제가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면의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일을 하고 싶거든요.

들으며 그에게 딱 맞는 직업이겠다 싶었다. 이렇게 균형 잡힌 전문지식과 합리성을 가진 정신과 의사가 그림책작가나 드라마작가가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까 상상하니 그가 쉰이 되는 시기를 하루빨리 앞당기고 싶은 설렘까지 생기는 느낌. 오버일까. 편집자가 ‘지인지살’이란 말이 들어간 문장을 인터뷰 제목으로 달 가능성도 있겠구나 예상하다가 어쩌면 그게 서천석이란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다. 오래전 한 정신과 의사가 시 같은 기도문 한 편을 남겼다.

“내 일은 내가 하고, 당신 일은 당신이 하는 것/ 내가 당신의 기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당신 또한 나의 기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 당신은 당신, 나는 나/ 우연히 서로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 그렇지 못할 땐 어쩔 수 없는 일”

<font color="#C21A1A">-프리츠 펄스 ‘게슈탈트 기도문’</font>

다시 그 기도문을 읽는데 제목이 ‘지인지살’인 줄 알았다. 서천석도 우리도, 원래 모든 인간은 지인지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심리기획자 이명수, 녹취 강선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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