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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나간 우리 마을 사람들, 그 곁에

세월호 유가족들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곁에 서 있겠다는 제종길 안산시장
등록 2014-10-09 14:52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개인 소피아를 넘어 더 큰 우주로 향하도록 제 넘치는 자부심에 손오공의 구름을 주셨다고나 할까요.” 온갖 귀염 작렬의 이모티콘과 함께 조진선 소피아 수녀가 보내온 인터뷰 후기는 그다웠다. 뒤이은 그의 말에 더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체에서 살다보니 성격이 활달하다고 자꾸 앞에 나서게 하는데 원래는 자꾸 숨어들고 싶은 면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인터뷰를 하고 나서 소명이려니 생각하고 싫어도 자꾸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냉큼 받아서 내가 답했다. 잘하셨어요. 수녀님 그 말씀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힘을 얻었게요.

안산시장이면서 세월호 시장

그런 연장선상에서 제종길 경기도 안산시장을 만났다. 세월호와 관련해 행정적으로 안산시 최고의사결정권자인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수천 번의 잠수 경력을 가진 해양학자로, 30여 년을 안산에 거주한 주민으로, 현직 안산시장으로 세월호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그의 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안심하길 바랐다. 그래서 성사된 만남이지만 그의 현실적 위치 때문에 상당 부분이 묵음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터뷰에 응해놓고 자신의 입장이 애매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서 자신의 역할이 제로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와 안산시장으로 자신의 역할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실질적 고민이 축약된 말처럼 느껴졌다.

동의할 수 없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의 속마음은 대체로 내 예상과 비슷했다. 약자나 눈물 흘리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만으로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확언한 학자가 있었다. 동감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피해자를 대하는 특정 공동체의 생각이나 태도는 그런 바로미터의 대표성을 가질 만하다. 안산 시정 전반에 대한 철학이나 태도가 아니라 세월호에 관련된 질문에만 집중한 탓인지 때로 그의 말은 멈칫했고 때론 두루뭉술했으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과감했다. 그는 ‘안산시장과 세월호 시장’ 사이의 어디쯤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안산시장이 곤란하지 않게 내용을 정리해달라고 했다. 제종길이란 사람의 개인적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안산시장 제종길의 역할이 있어서 그렇다는 게 직감적으로 와닿았다. 그러마라고 대답했다. 질문은 직선적으로 했지만 말하는 이처럼 나도 경계선 그 어디쯤에서 들었다.

-전남 진도에 자주 가신다고 들었어요.

=자주는 아니고요, 일주일에 한 번 갑니다. 월요일에 가서 화요일에 오면 이틀을 자리를 비우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오거나 일요일 오후에 갔다가 월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식이죠. 지난주엔 의회 의사 진행도 있고 해서 못 갔어요. 그런데 한 주를 빠지면 거기 계신 분들 입장에선 보름 동안 안 온 게 돼요. 이번주엔 일요일 오후에 갑니다.

-진도에 가면 뭘 하세요.

=특별한 거 없어요. 실종자 가족들 얼굴 보고 하룻밤 자고 옵니다. ‘저 내려가요’ 하면 거기 오래 계신 자원봉사자분이 침구를 제 나이 또래인 실종자 가족 옆에 마련해주세요. 그 옆에서 자요. 그러면 실종자 가족인 사모님이 아침에 양말 하나 챙겨주세요. 정말 감사하죠. 아침 먹고 앉아 있다가 ‘저 갑니다’ 하고 오는 거죠. 보살피기보다 바라다보고 와요. 그렇지만 제가 매주 진도를 가니까 거기 파견된 공직자 수를 줄이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는 측면이 있죠.

사람 중심 안산특별시가 되다

-지난 추석 직후엔 섬을 다녀오셨다고요.

=네. 세월호 학생들을 구조할 때 도와준 동거차도·서거차도 등 4개의 섬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러 3박4일로 다녀왔습니다. 거기 4개 섬에 계신 분들은 구조할 때도 도와주셨지만 지금도 수색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생존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입히고 먹여서 보낸 섬 주민들은 지금도 아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하세요. 올여름엔 수산물 판매도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안 팔렸고 관광객도 안 와서 피해가 막심하죠. 보상이 조금 됐지만 피해 규모에 비하면 어림없어요. 근데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우리야 뭐 1년 못 벌었다고 굶어 죽겠어요. 가서 유가족 잘 위로해주세요.”

섬 주민에게도 감사하고 제 시장에게도 감사해서 밑도 끝도 없이 ‘고맙습니다’ 했다. 비공개를 전제로 안산시장으로서 세월호 문제에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쓰고 있느냐 물었는데 그의 대답을 듣고 깜놀했다. 그 정도로구나.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세월호 문제 말고 나머지 안산 시정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는 압박도 많이 받겠죠.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겠어요.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쉽게 말하면 제가 낮에는 세월호에 전혀 신경 안 쓰는 것처럼 합니다. 세월호 얘기도 일절 안 하고 신경 안 쓰는 것처럼 해요. 그러나 시장의 중심에는 세월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합니다. 지나가면서 하는 것치고는 굉장히 강한 메시지를 던지죠. 세월호 문제는 제가 전면에 안 나서려 합니다. 세월호 지원단, 단원 보건소장 이런 분들이 직분에 따라 상황을 주도하고 시장인 저는 항상 유가족 옆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만 합니다. 본래 제가 선거에 나섰을 때 가장 중요한 슬로건은 ‘서민생활 안정’이었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서 사람 중심 안산특별시가 된 거죠. 세월호 전에 여러 구상이 있었지만 다 사라진 거예요.

-그렇다고 다 손 놓고 계시는 건 아니잖아요.

=처음엔 제가 세월호 국면에서 뭔가 다 해낼 것 같고 해야 할 것 같고 나서서 앞장서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 참사의 거대한 틀 안에서 안산시가 할 수 있는 일,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현재까지의 특별법 상황에서는 안산시장의 역할이 제로예요. 시장이 단식농성을 하든 데모를 하든 여기서 뭘 어쩌든 아무 영향력이 없어요. 유가족들도 저와 대화하려는 시도를 아예 안 해요. 요구가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 시장은 유가족이 어려울 때 도와줄 거다, 이런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마음이 그렇고 사고 이후 시장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노력해왔으니까요.

한밤에라도 달려가는 안산시 공무원들

-여러 사람으로부터 ‘안산시 공무원들이 진심으로 도와준다, 헌신적이다, 제 시장이 고맙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제종길이란 사람의 이력이나 성향을 고려할 때 안산시장으로서 세월호와 관련해 실망스럽다는 말도 적지 않습니다.

=그럴 겁니다. 가족분들이나 시민사회에 계신 분들의 그런 반응도 다 듣고 있습니다. 왜 시장이 나서서 중앙정부와 한판 붙지 않느냐, 같이 단식농성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 질타하는 분들이 있는 거 압니다. 저기 가서 단식농성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시장으로서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갈등이 순간순간 있죠. 그러고 싶죠. 왜 안 하고 싶겠어요. 저는 공조직에서 노조지부장을 한 적도 있고 들이받으면서 사는 경우가 더 많았던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시장이라는 자리에 있지 않다면, 유가족이 없다면, 이것이 민주화 투쟁이고 독립운동 같은 것이라면 시장을 안 하고 싸우면 되죠. 전에 저는 안산시장이 나서면 특별법도 해결되고 해양학자로서 아는 체하며 인터뷰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선자 시절에 그런 마음을 정리했어요. 그때 촛불집회에도 참여하고 매일 분향소에도 갔어요. 안산시장의 역할이 이 국면에 거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를 정리해봤죠. 아, 나는 유가족과 같이 행군하고 투쟁하기보다는 그 옆에 서서 보호하고 지키고 지금 당장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일을 해야겠구나 결론 내렸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지금 진도엔 자원봉사자가 거의 끊긴 상태입니다. 안산시 공무원들은 계속 거기 있어요. 안산시 공무원이 1800명인데 전원이 적어도 4번은 진도를 다녀왔어요. 피해자가 있는 가구마다 통장님과 공무원 1명이 짝을 이뤄 무한 돌보미 역할을 합니다.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하면 그런 것도 봐주고 일상을 보살펴드리는 거죠. 세월호 사고 수습반에 12명이 상근하고 있는데, 담당 공무원이 서울 농성장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어요. 지난번에 청운동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종로구청에 텐트를 쳐달라고 했더니 못한다 해서 우리 시 건설과 직원들이 한밤중에 비닐을 들고 올라가서 비 안 맞도록 천막을 쳐드렸죠. 그렇게 저희가 챙겨야 할 곳이 진도, 서울, 안산에 몇 군데 됩니다. 지금 안산시 공무원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헌신적이에요. 지난번 유민 아빠가 단식할 때 제가 유민 아빠와 청와대까지 같이 걸었어요. 안산의 의사들이 유민 아빠가 생물학적으로 다 죽어간다며 시장은 뭐하고 있느냐 조언하고, 저도 그 말이 맞겠다 싶어 아예 업어서라도 데려오려고 함께 걸으면서 설득한 건데 어떤 신문은 안산시장이 청와대에 가서 농성한다고 썼어요. 어쨌거나 그런 게 지금 안산시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타당성 없는 세월호발 불경기론

-안산에서 세월호 현수막을 잘라낸 사건이 생겨서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 갈등을 조정하면서 시정의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한 현안이겠다 싶어요.

=안산시장이 아니라 세월호 시장이냐고 비난하기도 하고 설득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언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가 주민분들은 제종길이 세월호만 신경 쓴다고 불만이에요. 근데 플래카드가 잘린 걸 일일이 신고하시는 분들은 그걸 안산시가 잘랐을 거라 의심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양쪽에서 의심을 받은 거죠. 다행히 아닌 게 밝혀졌지만요.

-말 나온 김에 묻죠. 세월호 때문에 경기가 안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실제 그런가요.

=(한참 망설인 뒤 내부 보고서 하나를 들어 보이며) 그것과 관련해서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 면밀하게 분석했어요. 나라 경제가 세월호 때문에 안 좋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어요. 안산 지역의 관광, 화훼 등 일부 업종에 한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정도예요. 나라 경제를 좌우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먹고살아야 하니 세월호 얘기를 그만하라고 하는데 거꾸로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면 경기가 좋아지냐고 물으면 대답 못할 거예요. 저희는 조사해놓은 수치가 다 있어요. 안산 지역 일부에서 그런 경기 침체 현상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에요. 상인분들을 위해 시에서 여러 지원책을 펼치는 중입니다.

그런 이들의 사정을 잘 헤아려주는 것도 제 시장이 말한 세월호 유가족을 보호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유가족들의 상태는 피부로 치면 살갗이 벗겨진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살갗이 벗겨지면 조금만 감염돼도 위험하잖아요. 심리적으로 전신 화상을 입어서 살갗이 다 벗겨진 사람들을 피부가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이 놓고 기계적 형평성을 주장하거나 비판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유가족이 술을 마신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제일 술 마시고 싶은 건 그분들일 건데요. 제가 아는 어떤 유가족분도 술을 정말 많이 마셔요.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는 하지만 그 심정을 아니까 보는 저도 괴로워요. 만약 내가 저런 경우를 당했다면 극단적으로 확, 저질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분들이 얼마나 감정을 억제하고 있는지 조금 이해합니다. 단식하지 말고 노숙도 하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말씀을 들으면, 아이에게 죄짓는 거 같아서 하여튼 뭐라도 해야 한다는데… 마음이 아프죠.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뭘 해주고 싶으세요. 시장님이 제일 중점을 두는 것이라고 해도 좋겠고요.

=그분들이 특별법 상황에서 벗어나면 안산으로 오실 거잖아요. 그때부터 저와 관계가 복잡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본격적으로 저희 일이 시작되는 거죠. 단단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세월호 가족들이 그냥 편안하게 안산으로 돌아와서 슬플 때 소주 한잔 하며 위로받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그분들이 사는 마을이 살기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시에서 지원하고 또 그런 일에 시민단체가, 사회복지를 하시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가 생각나 슬퍼하시겠지만, 안산의 이웃들과 다시 함께 살면서 웃기도 하고 시장실을 찾아와 한 번씩 아쉬움도 토로하는, 그냥 그런 일상으로 돌아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그런 일에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요즘 기도 같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는 제 시장의 말이 생각나서 나도 속으로 간절하게 두 손을 모았다.

-‘오래 길게 보자’는 말을 많이 하세요. 17대 국회의원 하실 때 본회의에 100% 출석한 5명 중 한 분이셨다면서요. 세월호와 관련해 시장님에게 안도하는 부분은 끝까지 가겠구나 하는 믿음이 느껴져서입니다. 오래가고 끝까지 견뎌야 하는 싸움인데 안산시 최고책임자인 시장이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안심이 돼요.

=저는 포기는 몰라요, 뭐든지. 포기해본 적 없어요.

따뜻한 무게 담긴 권력

‘포기하지 마세요, 끝까지. 그래야 안산시 전체도 구해질 거예요.’ 기도에 응답하듯 속으로 당부했다.

무슨 말 끝에 제 시장은 ‘지금 우리 마을 사람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나는 느꼈다.

“어린 날 신열에 들떠/ 무서운 곳 헤매다 눈떴을 때/ 작은 이마에 얹혀 있던/ 따뜻한 무게 알고 말고” -반칠환, ‘참새와 홍매’

아아, 그 따뜻한 무게 기억난다. 내가 가진 권력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무게’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명백한 행운이다. 권력이란 그런 때 쓰려고 잡는 것이다. 제 시장도 그런 행운아일 거라고 믿어버렸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 녹취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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