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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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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처럼 극진한 밥처럼 예술적인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살림과 치유의 예술가 이효재
일상의 길에 어여쁜 꽃을 심고 싸리비질을 하는 그녀
등록 2014-04-04 00:33 수정 2020-05-02 19:27
살림예술가 이효재. 사진 정용일 기자

살림예술가 이효재. 사진 정용일 기자

자신의 인터뷰를 읽은 노동자 건강권 운동가 공유정옥은 자기가 ‘처음 가는 길’도 아닌데 앞서 길을 내준 분들이 보면 헛헛할까봐 염려가 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지금 ‘좋은 길’에 서 있는 게 맞다고 답했다. 꼭 처음 가는 길이 아니어도, 늦어도 빨라도 상관없는 길들이 있다. 그래서 더 소중한 길들. 날마다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도 그런 길들 중 하나다.

살림예술가 이효재는 그런 일상의 길에 어여쁜 꽃을 심고 싸리비질을 하는 사람이다. 이효재를 수식하는 말들은 대략 세 가지다. 한복 디자이너, 보자기 아티스트,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내공이나 성취가 만만치 않다. 대물림하며 30년 넘게 이어져온 이효재의 한복 디자인은 간결한 아름다움과 독특한 실용성으로 이름 높다. 그가 창안한 보자기 아트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외국에서 전용기를 보내 배움을 청할 정도다. 자연주의가 근간이 된 그만의 정갈한 밥상과 생활 속 인테리어는 대중적인 선호도와 활용도가 으뜸이다. 그 영역에서는 ‘효재처럼’이란 단어가 이미 강력한 브랜드다. 그런 이미지들은 그가 쓴 책들과 지나칠 정도의 언론 노출에 의해 형성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효재는 아티스트라기보다 유명인이나 예능인처럼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보다 저평가되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게 왜 중요한가.

이효재가 하는 일에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치유적 요소가 한껏 담겨 있다. 거기에 그만의 독특한 예술성이 접목되어 예술적이고 일상적인 치유의 한 영역이 오솔길처럼 생겨났다. 그것은 박물관 액자에 걸려 있는 고전 명화나 패션쇼 무대에 등장하는 의상 같은 예술성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정갈하고 극진한 밥상을 대접받았을 때 탄성처럼 내뱉게 되는 ‘예술이네!’에 가깝다. 영화 에 나오는 대사 ‘살아 있네’와 비슷한 예술성이다. 그런 점에서 일상성을 기반으로 자연주의를 접목한 이효재의 예술성은 치유가 중요한 화두가 된 이 시대에 의미가 깊다.

탄성처럼 ‘예술이네!’

치유의 핵심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일상성의 복원이다. 예기치 않은 일로 일상성이 파괴되거나 흐트러지면 누구도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 외형적인 성취나 취미생활에 몰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내 몸의 결에 맞는 의식주를 확보하고 소소한 일상의 관계들을 회복해야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듯 편안해진다.

조물주는 생물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수록 흔하게 만들고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것들은 드물게 만들었다고 했다. 흔한 것이 가장 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기가 가장 귀하고 흙과 물이 그다음이며 희소성의 으뜸이랄 수 있는 다이아몬드 같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의 일상도 그와 비슷하다. 흔하고 반복적이어서 귀하다. 그런 일상성을 복원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예술가가 이효재다. 그는 자신이 하는 창작의 기본을 ‘간결하면서 극진하게 그러면서 아름답게’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내 나름으로 정의하자면 이효재는 ‘자연주의 살림예술가’ 혹은 ‘치유예술가’다. 그런 관점에서 묻고 들었다.

- 하시는 일도 많고 호칭도 다양하더군요.

= 직업은 대물려서 하는 한복집인데요, 저는 일상이 대중에게 노출돼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거예요. 50이 넘어가고부터 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쉼없이 움직이기는 해요

- 일하는 자아 말고 다른 건 없어 보일 만큼 그렇더군요.

= 네. 저 혼자 다짐이지만 눈뜨고 자기 전까지 노동자로 살겠다고 신과 약속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적이 없어요. 저는 나와의 대화를 노동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노동이 곧 수행 활동입니다. 어제도 택시 기다리는 동안 큰 고무장갑을 끼고 마당에서 가지치기했어요. 화장실 청소를 직원들 시키지 않고 제가 하는데 차 한 잔 들고 가서 해요. 근데 더러운 느낌이 안 들어요.

-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으세요.

= 마당에서 풀 뽑거나 그러면서 혼자 노동할 때, 나를 들여다볼 때가 제일 좋은데 일은 요리든 한복이든 어떤 것이든 다 좋아요. 제 장점 중 하나가 지금 내가 하는 역할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최선인 동시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눈떠서 잠자기 전까지 내가 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 쏟아요.

-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선생님이 쇠고기 팟국을 끓이는 걸 봤는데 요리 과정 중에 칼을 전혀 안 쓰더군요. 인상이 깊었습니다.

= 요리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절제와 불편함이 제 삶의 기준이에요. 서울에 살면서도 가장 시골스럽게 살아야겠다는 규칙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슈퍼가 없고 제가 운전을 못해서 외출하기 불편해도 공기 좋은 곳에 살아야겠다 그런 거죠. 그러면 또 그에 필요한 현장감이 생기거든요.

- TV, 신문, 라디오, 잡지, 인터넷 등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요.

= 네. 저는 세상에 궁금한 거 하나도 없어요. 남 얘기에도 관심 없고요. 그래서 나한테 세상은 항상 조용해요. 너무 좋아요. 저는 일단 우리 집 앞에 오는 사람들, 내 집에 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는지 아닌지 그걸 기준으로 매일 나를 돌아봅니다. 내겐 그게 세상이에요. 저는 평생 안부 전화란 걸 안 해요. 함께 있을 때 내 기분에만 치중해놓고 나서 ‘아까 미안해.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어’ 그러면 그것처럼 후회되는 게 없는 거예요. 당시에 충실해서 차 한잔 따뜻하게 먹여서 보내고 안부 전화 안 하는 삶이 내가 바라는 거예요. 세상일은 특별히 궁금해하지 않아도 필요한 건 파동처럼 다 알게 되더라고요. 아주아주 옛날에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서태지, 서태지’ 그래요. 저는 서태지가 후편인가보다 그러면서 나중에 책방에 사러 가야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 이름이래요. 그다음엔 사람들이 ‘욘사마, 욘사마’ 하도 그래서 안 궁금해해도 어느 날 욘사마가 뭔지 알게 됐어요. 이미 그때도 외국에서 오는 분들이 우리 집에 와서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가고 그랬는데 욘사마 얼굴도 본 적 없지만 30년 동안 모아온 자투리 천을 가지고 욘사마 블라우스를 만들어서 그걸로 3시간짜리 한국 관련 강의를 하고 그랬어요.

마지막 손님인 것처럼

나는 그에게 ‘지금 대통령이 누군지는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는 세상 소식과 담을 쌓고 사는 듯했다. 매스컴을 통해 누구보다 유명해진 이가 매스컴을 그렇게 멀리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지만 심정적으로는 나도 그의 편에 가까웠다. 그래도 조금 도발적으로 물었다. 전두환이란 나쁜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이가 대통령일 때 이효재라는 이름을 자기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할 수 있다. 전두환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일에 동원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는 자기가 여인들의 규방 일을 통해 알려진 사람이라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잠깐 생각하더니 ‘그러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바꾸면 되죠. 그러면 쉬워요’라고 결론 내리듯 말했다. 이효재가 가진 예술의 힘은 현실 세계의 잣대론 한계일 수도 있는, 그런 사람 중심의 관점에서 비롯한다. 실제로 이효재 예술세계의 알파와 오메가는 사람과 자연이다. 사람에 대한 그의 극진함은 자연과 닮아 있다. 자연스럽고 아름답되 지극히 실용적이다. 허례허식이 없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세 번쯤 일행들과 그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매번 동행한 사람이 달랐는데 그때마다 우리 일행은 10대 청소년까지도 그가 내온 음식과 차와 유쾌한 접대에 이구동성으로 ‘예술이야!’라고 경탄했다. 이효재는 세상에 더없는 국빈이라도 맞은 것처럼, 마지막 손님인 것처럼 우리 일행에게 집중했고 배려했다.

- 함께 왔던 이들은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회상할 때마다 행복해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 극진할 수 있나요. 우리 일행뿐 아니라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람이 숱하더군요.

저는 외려 그때 보여주신 반응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제게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내는 밥상은 1식 3찬이 기본입니다. 저는 밥의 맨맛을 좋아하는데 그것 때문에 모든 반찬이 맛있게 느껴진다고 생각할 정돕니다. 그래서 밥을 뜰 때도 선비가 보면 ‘어, 이건 댓잎이네’, 무사가 보면 ‘어, 이건 검이네’ 그렇게 보이도록 공을 들여요. 김치 담는 각도도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지 이리저리 따져보고요. 그런데 그때 그 밥상을 받고 어떤 분이 ‘와우, 밥이 예술이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제 마음을 안 거죠. 그걸로 됐죠.

“속바지가 예뻐야 해요”
살림예술가 이효재.  사진 정용일 기자

살림예술가 이효재. 사진 정용일 기자

그는 인터뷰 중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산만하게 계속 전화를 받았다. 외국에서 온 건데 시차 때문에 지금 받아줘야 한다, 지금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인데 내가 받지 않으면 피한다고 생각할 거다 등등 이유도 많았지만 공통점은 사람에 대한 걱정과 배려였다. 그 전화들 때문에 배려받지 못한 인터뷰가 조금 불편했지만 그가 그러는 것처럼 나는 기꺼이 참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선생님의 창작물들은 거품 없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쁜 게 중요하다고 자주 말씀하시던데 예쁜 게 뭔가요.

= 이런 게 예쁘다 이런 것보다 안 예쁘다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참을 수 없고 괴로워요. 그래서 예쁘게 해야 돼요. 내 눈엔 흠이 많이 보이는데 저는 그런 흠집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꾸지 않고 흠집을 가려서 그대로를 사용하면 더 아름답거든요. 친환경적이기도 하고요.

- 차범근씨는 어릴 때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자전거를 보자마자 그냥 탔다고 하더군요. 본능적인 거죠. 선생님의 미적 감각도 그런 종류인 모양입니다.

= 본능적이긴 한 거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엄마가 5천원 주고 시장 가서 장 봐오라고 하면 반찬은 2천원어치만 사고 나머지 3천원은 내가 꾸미고 싶은 것들을 사는 거예요. 그것 땜에 매번 혼났지만 계속 그랬어요. 언젠가 강남에 놀러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며 친구가 큰 사이즈의 사진을 보내왔어요. 보고 충격 먹었잖아요. 사람들 머리 위로 간판이 보이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저는 배경이 안 예뻐서 참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뒷배경을 가위로 이렇게 다 오렸어요.

- 굉장히 불편한 잠자리를 고수하는 것도 그런 것과 관련 있는 건가요.

= 저는 이런 방석 넓이보다 작은 이불에서 자요. 시체처럼요. 하도 좁게 자니까 돌아 누우면 등이 들려서 깨요. 편하고 퍼지는 걸 싫어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저는 죽을 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서 잠을 자다가 깔끔하게 죽고 싶어요. 그러려고 매일 훈련을 하는 거죠.

- 죽을 때 디자인적으로 후져서 예쁘게 보이지 않을까봐 그러시는 거네요.

= 네. 내가 영혼이 돼서 죽은 모습을 내려다볼 때 반듯하면 좋겠어요. 염하는 사람들이 와서도 ‘아이고, 이 할망구 잘 살았나봐. 이렇게 정갈하게 돌아가셨네’ 그렇게요. 그러니 옷 같은 건 더 말할 필요가 없죠. 한복은 어떤 경우든 예뻐야 해요. 제 옷의 특징은요, 자빠져서 치마가 바람결에 펄럭일 때 속바지가 예뻐요. 자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속바지가 예쁜지를 끝없이 생각했거든요.

“멀리 보면 타잔처럼 사는 것”

어떤 지인은 그런 그를 보고 병이라고 안쓰러워했다지만 나는 그게 그의 치열한 예술성처럼 느껴졌다. 그런 본능적 예술성이 사람에게 향할 때 누군가의 일상은 조금 더 윤택해지고 아름다워진다. 그것이 바로 예술적 치유일 것이다.

- 막연히 배려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런 예술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감동하는 거군요.

= 언젠가 일본 여인 200명이 며칠 새 갑자기 들이닥쳐서 집 안에 먹을 게 다 떨어졌어요. 마지막에 50명이 왔는데 집에 라면 5개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라면 5개에 미역을 넣고 끓여서 그걸로 50명이 나눠 먹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여인들이 모두 감동했어요. 한 분은 몇 년 뒤 암에 걸려 임종을 앞뒀는데 마지막 순간에 미역라면을 얘기하셔서 제가 일본에 간 적도 있어요.

- 선생님은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창작물에서도 그렇고 시적인 감수성이 많이 느껴집니다.

= 시 읽는 걸 좋아합니다. 냉장고 문에 인터폰 옆에 콘센트 옆에도 붙여놓고 틈나는 대로 소리 내서 읽어요. 직접 쓰기도 하고요. 앞으로 제 꿈이 있다면 말을 줄이고 시 같은 삶을 사는 거예요. 요즘은 외래어를 전혀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훈련을 하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 멀리 보면 산속에 들어가서 타잔처럼 사는 것이고, 지금 당장 숙제는 강화도에 전등각이란 옛 여관을 복원해서 만들고 있는 전통문화 체험관 겸 호텔 작업이에요. 제가 위탁받아서 하는 일인데 5월에 개관해요. 개관 전에 제일 첫 손님으로 다문화 가정 주부 70명을 초대할 거예요. 몇 년 전부터 제가 친정엄마 노릇을 하면서 함께 김치도 담그고 그러는 사람들이에요. 그날 오면 한국에 와줘서 고맙다, 시집와줘서 고맙다, 한 상 잘 차려서 엄마랑 아이랑 맛나게 먹이고 전등사가 가진 역사성이나 단군신화도 들려주려고요. 온 산이 핑크로 물드는, 1년 중에 강화도가 가장 아름다운 때예요. 그때 시간 되면 꼭 오세요.

무장해제 당한 아름다움

말하는 그이가 아름다워서 가만히 바라봤다.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다. 아름다움이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는 그의 말이 새삼 실감났다. 그가 말한 아름다움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추측했다.

“연분홍빛 연산홍이/ 얌전히 고개를 들어 오가는 이들을 반깁니다/ 자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까요?/ 모를 것 같아 조용히 다가가/ 눈빛으로 마음으로 속삭였습니다/ 너 참 아름답구나” -김미애

우리의 일상이 그런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을 때 사람은 누구나 치유적 존재가 된다. 이효재도 그리고 우리도.

이명수 심리기획자,녹취 강선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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