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터뷰 기사인데 내가 왜 감동하지?’ 그러면서 읽었다고 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 기획자 장영승의 인터뷰 후일담이다. 예슬이와 수많은 예슬이들이 깔깔거리며 잔디밭에서 뛰노는 느낌들이 그의 말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추측했다. 사건이든 상황이든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을 생생하게 실감하면 모든 게 달라진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위층 아이들의 쿵쾅거리는 소리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어떤 학자가 우연히 놀이터에서 위층집 아이를 만나 얘기를 나눈 뒤 마음이 달라졌단다. 소음은 여전했지만 아이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기 전만큼 그 소리가 거슬리진 않더라는 것이다. 아이의 존재를 생생하게 실감해서 그렇다.
은퇴 얼마 남지 않은 공무원의 진솔한 말그렇게… 세월호 사람들을 생생하게 경험한 이를 만났다. 경기도 안산시청 김상일 국장이다. 32년의 공직 생활 중 25년을 안산시청에서 근무한 사람이다. 세월호 사고 직후 전남 진도에 파견돼 50일간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가족, 현장의 자원봉사자 등 여러 사람이 그의 얘기를 전해주었다. 수십 년간 안산에서 근무했고 팽목항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했고 그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 ‘우리 편 같다’고 입을 모으는 공무원. 미담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인터뷰가 될까봐 혼자 도리질을 했다.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우리 부모·형제나 이웃이 아니라 다른 별에서 온 종자처럼 느껴졌다는 시민이 많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무책임, 관행, 의전, 규정 타령을 하는 공무원들을 보며 무릎 꺾인 사람이 한둘 아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오래 알고 지내는 공무원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 퍼붓기도 했다.
그런 마음인데 김상일이란 공무원을 인터뷰해야 한다면 무슨 이유여야 하는 것일까. 인터뷰하기 전 나는 김상일을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또 한 번은 병문안을 겸한 만남이었다. 그는 인터뷰 약속을 잡은 며칠 뒤 갑자기 디스크가 터졌다며 수술을 받았다. 아마도 진도에서의 누적된 과로가 묵은 병을 자극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 듯했다. 별수 없이 그가 입원한 안산의 한 병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공무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고 세월호 국면에서 공무원의 처지를 대변하고 해명하려는 그의 시도에 대해선 가혹했다.
아이들을 언급하던 어떤 대목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비치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공무원이 간장·된장처럼 잘 묵으면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그의 말에 다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공직자 김상일의 말은 대부분 진솔했고 요긴했다.
-진도엔 언제 내려가셨어요.
=사고 다음날 갔다가 4월18일에 짐 싸갖고 저희 팀원들과 같이 내려가서 50일 있었습니다.
-가서 뭘 하신 건가요.
=처음엔 너무 혼란스러워 저희도 경황이 없었어요. 시신이 올라오면 아이들 확인하고, 병원 지정하고, 장례식장 잡고, 가족들 올려 보내주고, 진도에서 생활하는 데 지장 없게 하는 일을 지원했죠. 또 급했던 건 정부와 대화가 너무 안 되니까 안산시에서 내려간 제가 가족과 정부 사이의 통로 역할을 했어요.
불신 걷어내고 건네받은 따뜻한 위로들-당시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은 무간지옥이고 통곡의 바다였다 들었습니다.
=말로 다 못해요. 저는 주로 가족들과 있다가 아이들이 물에서 올라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찾으러 같이 뛰어다니고 그랬어요. 첫날은 혼란스러웠더라도 가족들 생각에 일주일이면 아이들을 다 건져올릴 줄 알았어요. 당시 대기소에 있는 가족들은 두 마음이었어요. ‘내 아이가 아니어라’와 ‘내 아이어라’. 죽음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과 시신이라도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혼재돼 있었죠. 그 조그만 천막 안에서 번호표 받고 시신 오길 기다리는 순간이라는 게…. 세상에 왜 이런 일이 있는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별 생각이 다 들어요. 물에서 올라오면 천막에 비슷한 아이들이 들어와요. 자식을 확인한 부모들은 무너져요. 어떤 애들은 그냥 예쁘게 잠자는 모습 그대로예요. 부모는 어서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워요. 집에 가재요. 나머지 부모들은 안도하면서 동시에 불안해하고요. 그게 24시간 반복돼요. 하루 종일 통곡하고 계속 통곡하는 거예요. 여기서 울고 저기서 울고 다 울음바다예요. 공무원들도 울어가지고 일을 못해요.
짧은 횡단보도를 쉬엄쉬엄 건너는 노인의 걸음처럼 그의 말이 눈물로 잘리고 끊겼다. 무식하게, 내가 물었다.
-공무원도 울어요, 그래요?
=압니다. 세월호 현장에서 공무원들을 한심해하고 답답해하는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근무 끝나고 숙소나 집에 가서 하염없이 우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고용복지부에서 파견 나온 한 분은 제가 봐도 감동스러운 거예요. 가족들에게 무엇이라도 하나 더 해주기 위해 자기 몸을 안 사려요. 공무원도 똑같은 인간이고 가장인데 이 시스템이 문제라서… 이번 기회에 잘 조율해야 되겠죠.
-팽목항을 경험한 공무원과 아닌 공무원은 차이가 많겠네요.
=그럴 거예요. 제 경우는 아버지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분들의 입장이 됐어요. 같이 있지 않았다면 이 사고의 엄중함이라든가 그런 거에 대해 이해는 했겠지만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이해와 체험은 다르죠. 거기엔 저도 아버지라는 인간적인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처음엔 이게 내 일이기 때문에 감정이입 없이 객관적으로 하려고 했죠. 흔들리면 공직자로서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제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잡아서 간 거죠. 근데 현장은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그곳은 뭐랄까, 아주 비참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내면을 뱉어내는 공간인데 거기서 기준이다 뭐다가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고요. 자식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이잖아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도 사고 초창기엔 잘못된 거 있으면 정부를 상대로 소리치고 그랬어요.
-그중에서 바지선 현장을 잊지 못하시겠다고요.
=다 불신인데 거기엔 진솔함이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잠수사들이 목숨 걸고 20분씩 작업하다가 헉헉대면서 올라오고 새로운 팀이 들어가고 가족들은 절절한 표정으로 잠수사들을 온전히 믿고 거기 서 있는 상황은 보지 않으면 몰라요. 성과 없이 작업을 마치면 가족들은 무너지고 잠수사들은 죄인이 된 듯한 표정을 지어요. 그런 때 잠수했던 해경, 특전사, 언딘 이런 사람들은 작은 정부예요. 가족들은 그 순간 정부를 믿고 고생한다고 위로합니다. 정부든 뭐든 그걸 떠나서 진솔한 순간이죠.
참사 안 함축된 대한민국의 부작용-가족들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자주 쓰시던데 가족들 상태가 말이 아니겠어요.
=가족분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환자예요. 예를 들어 팽목항에 천막을 쳤잖아요. 밑에 부직포를 깔아놨어요. 근데 부직포는 먼지가 많이 일어요. 10일 정도 지나면 호흡기에 엄청 심한 손상이 온대요. 그래서 잠자는 숙소만이라도 옮겨드리려고 말씀드렸는데 부모님들은 ‘새끼 물속에 집어넣고 무슨’ 그러면서 손사래치는 거예요. 그렇다고 밥을 제대로 먹습니까, 잠을 제대로 잡니까. 담배는 많이 피우고. 그렇게 한 달씩이나 있었으니 몸이 다 망가졌죠. 그런데 지금 그런 몸으로 국회도 가고 1박2일 도보 행진도 하고 단식도 하니…. 아이들이 물에서 올라오는 게 뜸했던 5월 중순쯤 되니까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예요. 대화하다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혼자 중얼중얼하기도 하고, 굉장히 논리적인 어떤 아버지는 초점도 없이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제3자가 보기엔 정신이 혼미한 거죠. 정상이 아니에요. 치료가 필요하죠.
-국장님도 진도에서 올라온 다음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셨다고요.
=네. 잠이 들지 않는 겁니다. 자다가 깨서 더 잘 수 없기도 하고요. 잠수부들이 입수·퇴수하던 모습과 소리가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안산 중앙역이 쓰나미로 물에 잠겨 있는 꿈을 꾸기도 하고요. 한참 고생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한때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임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는 무리가 있었어요. 사법고시나 공기업 면접장에서도 그랬고 심지어 헌법재판관 청문회 현장에서도 그랬습니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저는 요즘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팽목항을 경험한 안산시청 공무원 김상일에게 세월호 사건은 뭔가요.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현장에 있으면서 제가 느낀 건 기본적으로 이번 사고의 개념이 다르다는 거예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에요. 청해진 배가 가다가 넘어졌다, 이게 아니라 그 사고의 구조 속엔 대한민국의 모든 부작용이 함축돼 있어요. 속된 말로 대한민국의 민낯인 거죠.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이후 대한민국은 전국이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나인데 이 아버지들과 엄마들은 자식이 아직도 죽어가고 있어요. 배는 가라앉았지만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이 가족에게 보냈던 메시지, 동영상, 문자 이런 걸 다 가지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자기 새끼가 죽어가는 걸 눈 앞에서 부모가 봤어요. 그때의 아이들 목소리나 표정도 손에 쥐고 있어요. 근데 왜 죽었는지 정확한 원인을 몰라요. 그런 상황인데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하면서 가족들을 비난하면 어떡합니까. 만약 제가 공무원이 아니라 시민운동하는 사람이었다면 쫓아다니면서 그분들을 설득하고 싶어요.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대한민국 사람 중 이 사고 이후 안 운 이가 어디 있어요. 다 울었어요. 사람들이 TV를 못 보고 뉴스를 끄고 이런 것은 전부 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전부 내 자식 같아서 우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갑자기 괜찮아지냐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다 내 자식들이에요. 어차피 물리적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 죽었어요. 그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부모가 떠안고 있는 고통을 덜어주고 아이들을 잘 보내야 하는데 그러자면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부모들이 알아야 된다는 거죠.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을 만큼 동지적인 생각이라서 그가 32년차 고위 공무원이란 사실을 잠시 잊었다.
4월16일이나 8월1일은 같은 시간-안산시 공무원들 모두가 국장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지자체 공무원들은 말할 것도 없겠고요.
=당연히 다르죠.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직까지도 10명이 물속에 있잖아요. 그중에 애들이 5명이에요. 부모들 심정은 4월16일이나 8월1일이나 똑같아요. 시간적 개념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제가 현장에 있어봐서 알아요. 지금 부모들은 4월16일 그 사건의 연속선상에 있는 거예요. 아이를 건지지 못했으니 계속 그 상태인데 사회적 피로감이 있다며 이제 그만하자 하면 말이 됩니까. 무너진 신뢰를 바로잡으려면 이제 좀 천천히 가도 되지 않나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세상을 물려줘야죠. 지금 이 상태로는 누구도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5월 초에 대구 지하철 참사 가족들이 진도를 방문했어요. 그분들이 실종자 가족들보다 더 우셨어요.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거죠. 선장과 기관사가 도망간 거나 사후 수습하는 거나. 11년 전의 사고가 똑같이 반복된 건데 지금 이대로 가면 11년 뒤 똑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요. 이번엔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죠.
-시간이 좀 지나서 돌아봤을 때 진도에서의 50일은 국장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2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어요.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저는 그 현장에 있었어요. 거기서 가족들과 울고불고 뛰고 걱정하고 분노했습니다. 처절하게 반성하고 점검해서 아이들을 더 안전한 나라에서 이런 사고 없이 살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개인적으론 일상의 소박한 행복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저희 딸아이가 팽목항의 상황과 제 심경을 카톡으로 전하면 격려해주곤 했어요. 실종자 가족들 잘 챙겨주라고요. 그게 그렇게 힘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피해자 가족들은 어떻겠어요. 이제 그런 대화를 할 아이가 없는 거잖아요.
-지금 세월호 가족들에게 개인적으로 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뭘까요.
=특별한 건 아니고요. 팽목에서 우리 아이들 찾으면 소주에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얘기 한번 하자 그랬는데 그걸 못했어요. 아버지들끼리 그 얘기를 했는데… 그걸 하고 싶어요. 지금 그분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민에게 호소하고 단식하니 그럴 정신도 없겠지만 꼭 그러고 싶어요.
그는 구체적으로 누구 아빠, 누구 아빠를 거론하며 바람을 얘기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그의 표정이 공무원이라기보다 우리 이웃의 누구 아빠인 듯해서 정이 갔다.
끝까지 손놓지 않으면 옅어질 고통김상일은 공무원이란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을 가진 직업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이 하려고 마음먹으면 안 되는 게 없고 안 하려고 마음먹으면 되는 게 없다는 믿을 만한 속설도 덧붙였다.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공무담임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공무원이란 개별적 존재의 자기 가치감이 결정된다고 믿는 듯했다. 모든 공무담임권은 우리가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공무원이 있어서 다행이다’가 아니라 ‘참, 공무원도 우리 이웃이 맞지’ 그런 식으로 공무담임권을 행사하는 공무원을 보는 일이 꿈이어야 할 이유는 법 조항 어디에도 없다.
“어느 날 신생아실에서/ 우는 한 아기의 울음소리에/ 더 크게 따라 우는 아기들을 보았습니다/ 쓸쓸한 가죽을 쓰고 태어난 이 세상 모든 연약한 생물들의/ 아름다운 동맹이었습니다” -김원경, ‘환경지표 생물’
본래 우리는 울음으로 맺어진 아름다운 동맹 관계인 사람들이란 사실을 깜빡했다. 그게 이웃일 것이다. 그런 이웃들이 끝까지 손 놓지 않으면 이 참담한 고통과 슬픔은 반드시 옅어진다.
심리기획자 이명수, 녹취 강선일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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