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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으려, 닥치는 대로

세월호 참사 뒤 덮친 슬픔을 견디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봉사에 나선 신혜진 소설가
등록 2014-08-20 07:54 수정 2020-05-02 19:27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김상일 국장의 인터뷰를 읽고 그의 아내와 딸이 전해온 소감은 정확하고 따뜻했다. 그녀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무원도 이웃’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이 남편 문병을 왔다며 그런 이웃들의 위로를 받아 얼마나 울컥했는지 전했고, 외동딸은 아빠처럼 일하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며 우리 모두가 이웃이고 결국 이웃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할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눈 밝고 다감한 후기에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

따지지 않고 무엇이든 하는 그

내친김에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이웃을 또 만났다. 소설가 신혜진이다. 2006년 대산문학상을 받았고 재작년 여름 첫 소설집을 냈고 단편소설이 영화화되기도 한 명실상부한 작가다. 하지만 세월호와 관련한 그의 행보는 계통이 없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지 않는다. 얼핏 중구난방처럼 보일 정도다. 사고 직후 전남 진도에 물품 보내기 운동에 동참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도보순례단에 끼어 걷기도 하고, 직접 제작한 밀랍초 판매 수익금을 세월호 관련 단체나 개인에게 기부하기도 하고, 희생자 중 외국인 가족을 돕기도 하고, 노란리본 배지를 구입해 청소년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단식 농성하는 유가족을 방문하기도 하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고등학생들과 세월호 추모 영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자신의 본업인 글쓰기를 이용한 물밑 작업도 여럿이다.

페이스북과 전언을 통해 그의 쉼 없는 행보를 지켜보면서 문득 궁금했고 뒤이어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초창기 대개의 사람들은 무기력했고 참담했다. 다른 건 다 휘발되고 고통과 슬픔의 감정만 남은 거 같다는 사람이 숱했다. 거대한 쓰나미 앞에선 강건한 체력이나 넉넉한 품성이 다 소용없듯, 세월호라는 참극의 쓰나미 앞에서 우리는 한동안 길을 잃었다. 그 와중에 신혜진의 행보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답이란 걸 알려주는 듯했다. 내 정체성이나 내가 가진 것을 따지기 전에 일단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게 세월호 참사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그 거대한 슬픔과 고통 앞에서 어떤 맥락을 갖춘다는 건 불구덩이 속에서 정장을 갖춰 입고 탈출하려는 것처럼 기이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지레 손을 놓아버렸던 많은 이들에게 신혜진의 어떤 말들은, 그게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영감을 주거나 용기를 줄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그래서 인터뷰에 손사래 치는 그를 불러내 짧게 묻고 길게 들었다. 그의 표현을 빌려 물었다.

-원래 무당 체질이세요.

=아니요. 일 터지고 나서 제가 미친년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니에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고 저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미칠 거 같으니까 뭐라도 해야 되겠다, 그래서 하는 거예요. 그날,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휴가차 제주도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곳이 단원고 아이들이 묵을 예정이던 숙소였어요. 함께 있던 애들도 멘붕, 저도 멘붕.

-끔찍했겠군요.

=제주도에서 올라오자마자 단원고에서 아이들이 무사귀환 촛불 기도회를 한다고 해서 갔어요. 우리 집이 단원고와 2km 거리예요. 그런데 계속 잠을 못 자겠는 거예요. 하루 2시간 정도밖에 못 잤어요. 잠이 안 오고 자꾸 여러 사람의 이름을 불러요. 일종의 환청이죠. 그래서 괜히 단원고에 갔나보다, 괜히 분향소에 오래 있었나보다, 제주도에 괜히 갔나보다. 하필이면 내가 왜 안산에서, 하필이면. 그러다가 누구든 못 피해가는 문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이 너무 압도적이니까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나는 심약한 사람인데 이러다 미치면 어떻게 하지. 너무 견디기 힘들어 평소 제가 존경하는 몇몇 어른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해요, 저 미칠 거 같아요. 근데 아무도 대답을 못해주시는 거예요.

참사 뒤 느낀 마을·이웃의 따스함

-‘내가 유별나게 반응하나’ 그런 생각은 안 들던가요.

=아니요.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주변에 저보다 더한 사람이 많았어요. 선배 작가가 분향소에 왔다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데 울면서 먹어요. “언니 잠을 못 자죠? 얼굴 보니 그러네” 했더니 “애들이 자꾸 와”라고 말해요. 애들이 자꾸 온대요. “어떻게 해?” “어떻게 하겠어. 안아줘야지.” 그런데 저도 그렇고 그 언니도 그렇고 이른바 무당 체질이 아니에요. 오히려 건조하고 낄낄거리고 유쾌하게 떠드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지, 유달리 예민하고 신기(神氣)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세월호 트라우마는 제한된 사람들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통과 공포와 슬픔이란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도 가만히 있으면 미칠 거 같고 죽을 거 같으세요.

=지금은 그렇지는 않고 많이 분해요. 실제 유가족을 만나보면 착해도 너무 착한 분들이세요. 어떤 상황이 발생해서 경찰에게 욕지거리를 하다가도 상황이 끝나면 제게 음료수를 주시면서 ‘힘들죠?’ 그래요. 저는 심약해서 오래 못 버텼을 거예요. 그런데 그분들은 자식을 잃고 거리에서 그러고 계신 거예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저와 같은 아줌마, 아저씨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당한 것 같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어요.

-진짜 이웃으로 느껴지시나봐요.

=네, 우리 이웃이죠. 안산에 정착한 지 6년 됐는데, 제가 사는 데가 고물상 3곳이 있고 새로 생긴 술집이 많아서 쾌적하지 못해요. 소음도 많고 욕하고 싸우는 소리도 많고. 그게 짜증났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 사는 느낌이 들어 정을 붙이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진 뒤 한동안 그렇게 시끄럽던 곳이 적막강산이 됐어요. 다니는 사람도 없고 떠드는 사람도 없고 술 먹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는 거예요. 다 어디 간 것 같고 텅 빈 것 같고.

-개인적인 느낌인가요, 아니면 실제 그런 건가요.

=저희 동네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실제 그랬어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이 동네가 좋아졌어요. 만약 내가 이런 일을 겪어도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술을 참고 이렇겠구나. ‘아, 여기에 사람들이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술 좋아하는 이에겐 그게 얼마나 큰 공감인지 실감하겠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었다.

밀랍초 만들어 벌린 돈은 몽땅 기부

-밀랍초는 왜 팔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세월호 추모 영상을 만들겠다고 해서 일회성으로 제작비 마련을 위해 한 거예요. 참여한 애들이 12명이나 되는데 하다못해 밥이라도 사 먹여야 하잖아요. 다행히 제가 오래전부터 밀랍초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해서 노하우가 좀 있거든요. 근데 1차 판매가 끝났는데 사람들이 벌써 끝났느냐며 ‘나도, 나도!’ 하는 바람에 등 떠밀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6차례 판매에 기부금 액수만 1천만원이 넘더군요. 그때마다 사용처를 낱낱이 공개했고. 어떤 기준이 있나요.

=없어요. 그냥 제 맘대로예요. 주로 다큐 쪽으로 많이 갔는데 얼마나 유가족과 밀착돼 있나, 결과물이 얼마나 도움이 되나, 이게 나름의 기준이에요. 밀랍초는 만드는 것도 혼자 하고 파는 것도 혼자 해요. 얼마가 벌리든 그달에 다 기부하는 게 원칙이에요. 돈이 모이면 사업이 되잖아요. 그러면 실수할 수 있고 사람을 모아야 하고. 그런 게 감당이 안 돼요.

-상당한 중노동이라면서요.

=네. 밀랍초는 벌집을 녹여 만든 초예요. 파라핀초와 달리 오염물질을 방출하지 않고 세균 번식을 막아주는 효과까지 있어요. 연소 시간도 파라핀초에 비해 월등히 길고요. 그 대신 만들 땐 뜨겁기도 하고 완전 중노동이죠. 처음엔 잠을 못 자니까 주로 밤에 했는데 만들면서 계속 울었어요.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애들은 어차피 못 돌아오는데.

-그런데 왜 계속 했어요.

=사람들과 약속했으니까요. 사람들이 사겠다고 주문을 하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서로 고마워했던 거 같아요. 밀랍초가 마침 색깔이 노래요. 미리 짠 것처럼. 거기에다 ‘잊지 않을게! 끝까지 밝혀줄게!’라고 쓰인 라벨을 만들어서 수천 장 붙였어요. 저 스스로를 세뇌하다시피 한 거죠. 밀랍초를 그만 만들어도 잊어버릴 수가 없도록.

-페이스북을 보니 고맙다는 인사가 제일 많더군요.

=페친들 중에는 살 사람들은 이미 다 샀어요. 그런데 6차에 제일 많이 팔렸어요. 참 이상한 일이죠. 이 삼복더위에 누가 초를 켜요. 아이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분이 한참 전에 샀던 밀랍초를 잊고 있다가 ‘오늘 문득 아이들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며 초를 켰다는 댓글을 보면 예외 없이 울컥해요.

‘노란 편지’, 잊지 않았다는 신호

-밀랍초가 그걸 산 사람들에겐 아이들을 잊지 않게 하는 부적 역할을 하고 만든 이에겐 치유적 경험을 선사하는군요.

=그런 거 같아요. 어느 날 저희 집에 자주 오시는 우체국 택배 아저씨가 사업을 시작했느냐고 물으세요. 밀랍초 택배 물량이 갑자기 늘어나서 그랬겠죠. 제가 잘됐다 싶어 얼른 세월호 특별법 서명지를 꺼내서 설명했죠. 그랬더니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겠네요’ 하시는 거예요. 택배 물량이 많아졌으니까 우체국 차원에서 고맙다고 하나보다 생각했죠. 근데 알고 보니 희생 학생의 아버지셨어요. 자주 뵌 분인데 까맣게 몰랐던 거죠. 마침 그날 아이 가방이 올라와서 엄마가 많이 우셨다는 얘기를 하시는데 말문이 턱 막히더라고요. 한참 울었어요. 희생자 부모님들이 다 우리 동네 아줌마·아저씨라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멀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나봐요.

-이웃이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겠네요.

=네. 집에서 단원고까지 2km밖에 안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었나봐요. 그래서 제3자였는데 이게 정말 나한테 벌어질 일이었구나 실감했죠. 초를 만들 때마다 ‘이제 그만할 거야, 안 잊으면 되지, 꼭 초를 팔아야 돼?’ 그랬는데 아버님과 얘기한 뒤 할 수 있으면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쳐서 쓰러지지 않도록 그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을 장풍처럼 보냈다.

-글쓰기를 이용한 물밑 치유 작업도 많더군요.

=요즘 가장 중요한 일 두 가지 중 하나는 ‘노란 편지 쓰기’ 캠페인이에요. 희생 학생 친구들이 희생 학생과 함께했던 기억을 희생 학생 부모님께 편지로 써서 보내는 거예요. 부모님에게 아이를 잊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죠. 그 편지를 쓸 때 아이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안산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정비하는 프로젝트예요. 안산 시내 곳곳에 세월호 관련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는데 아직도 ‘무사생환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많아요. 가족들이 그걸 보면 마음이 어떻겠어요. 세월호 가족뿐 아니라 안산 시민들도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문학적이고 정서적인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동료 작가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그의 얘기는 오래 이어졌다. 특별법 서명 받기, 외국인 희생자 가족 치과 치료 주선, 외국인 분향소 안내, 유가족의 농성 상황을 알리고 격문 띄우기. 그의 얘기에 귀기울이다가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하는 일이 참 많아요.

=그렇다고 생각 안 해요. 저도 처음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미칠 거 같아서 시작한 일이고 하다보니 이렇게 됐어요.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 계속 계통 없이 가겠죠. 세월호는 사안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내가 이 타이밍에 이 일을 반드시 해야 되겠다 생각하면 하려고 해요. 그걸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8월15일에 저는 서울 광화문광장이나 진도 팽목항 중 한 군데를 갈 거예요. 그건 지나가면 다시 기회가 없잖아요.

-세월호 이전의 신혜진과 이후의 신혜진은 다른가요.

=조금 달라진 거 같아요. 저는 착하거나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노는 거 좋아하고 게으르게 사는 거 좋아해서 직장생활도 안 했어요. 시간 여유를 갖는 게 좋아서 최소한으로 먹고사는 것만 하고 살아요. 가난한 작가죠.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그래야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자주 우울하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나, 이런 생각만 했어요. 근데 요즘은 조금 달라요. 내가 누군가를 위로해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대견해해요. 내가 힘도 별로 없고 돈도 없는데, 작아도 뭔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구나, 움직이고 있구나를 느껴요. 그게 그렇게 힘이 되고 위로가 돼요.

진짜 이웃은 언제나 치유자가 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를 어떻게 도울지 몰라 난감할 땐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마음 가는 대로’ 힘을 보태는 게 진짜 이웃이다. 진짜 이웃은 언제나 이웃 치유자가 된다. 그러면 결국 나도 치유받는다. 치유의 선순환 구조다. 신혜진 같은 이웃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나희덕, ‘산속에서’

먼 곳의 불빛 같은 이들이 이웃이다. 불빛이 끊이지 않으면 결국 산길은 끝난다.

심리기획자 이명수, 녹취 이영하 시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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