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 택시에 아주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서울 밖으로 나가서 살아본 적이 경기도 수원에서 40일 있었던 것 빼곤 없는데다 본업인 사진을 찍으러 시내로 나갈 경우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수는 없어 택시를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보니 쭉쭉 뻗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는 ‘도시인의 낭만’ 비슷한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내가 택시를 사랑하는 이유
서울 택시에 쏟아부은 돈을 합치면 쓸 만한 스포츠실용차(SUV) 한 대 정도는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때론 고단한 일상을 잊게 해주는 말동무도 돼주고 가끔은 정치적 견해 때문에 다투기도 하며 어떨 땐 정말 훌륭한 음악을 준비해 틀고 다니는 여러 택시기사님을 만나는 재미도 있고 해서 이 깊은 애정이 쉽게 식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택시요금이 오른다는 이야기를 뉴스 등에서 접해도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기본요금이 600원씩이나 오르니 카드를 호기롭게 꺼내기보단 만지작거리다 다시 주머니에 넣는 횟수가 늘더군요. 막상 요금 인상 당일이 되니 부리나케 술잔을 내려놓고 전철에 올라타는 제 모습이 한편으로는 ‘바른 생활 사나이’ 같아 괜히 으쓱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분도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저만 이렇게 요금 인상에 예민한 건가 싶어 며칠 전에는 택시요금이 오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위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엄살을 부렸던 거래요. 실은 먼 거리를 택시로 이동할 때는 그다지 요금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기본요금이 오른 탓에 짧은 거리를 택시로 이동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기본요금 오른 것을 크게 체감한다는 이야기를 하나같이 하더라 이 말입니다. 술 마시고 차 끊겨서 택시 잡고 시속 100km로 올림픽대로를 질주하는 일 이 대부분인 저는 괜히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도착한 저는 그 원인 모를 부끄러움을 없애보고자 택시기사들 의 처우나 요금 문제들에 대해 뒤적거립니다. 아뿔싸, 서울 택시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아까 밝혔는데 실은 개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새벽에 택시가 총알처럼 달리는 것도 ‘기사님이 스피드 광이시군’같이 낙천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알다시피 택시에는 법인택시와 개인택시가 있는데 법인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는 이른바 ‘사납금’을 매일, 매달 내게 돼 있습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하면 기사들은 요금 전액을 회사에 주고 회사는 그 돈을 관리한 뒤 급여를 주는 전액관리제를 따라야 하지만 택시요금이 올랐으니 당연히 사납금을 올립니다. 다음달부터 법인택시 기사들은 하루 2만5천원, 월 65만원을 더 내게 되고, 이걸 못 채우면 급여에서 ‘까이는’ 제도가 사납금 제도라는 거죠. 당연히 이건 불법입니다.
총알 택시 기사는 스피드광이 아니다택시가 총알같이 달리는 이유 또한 기사님이 개인적으로 스피드광이라서가 아니라 연료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액셀레이터를 밟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소름이 약간 돋았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 느끼는 바람보다 월급 봉투에 든 돈이 휑하니 빠져나가는 게 백배는 소름 돋는 일이니 매일 운전대를 잡는 기사님들에겐 100km의 시속보다 사납금이 더 무서운 존재였을 겁니다.
여하튼 기본요금이 3천원이 되었으니 기본요금 자체로는 프랑스 택시와 한국 택시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었고, 택시기사 수입도 올랐다는 뉴스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1시간 일해서 빅맥세트를 사 먹을 수 없다는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아, 벌써 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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