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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장군이여, 평창으로 오라

등록 2013-07-03 17:49 수정 2020-05-03 04:27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최근 개봉한 슈퍼맨 영화 에서 사실 가장 슈퍼했던 대목은 외계 나쁜 놈 대장 ‘조드 장군’의 저질 지능이었다. 특히 그가 지구를 최종 접수하겠다며 ‘월드 엔진’이라는 최종 병기를 꺼내든 대목에서 그 저질 지능은 가장 빛을 발했으니, 공중에서 지상의 모든 물체를 떡방아처럼 반복적으로 들었다 놓으며 빻음으로써 외계인의 서식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 기계가 반나절 넘도록 도심지 몇 블록 간신히 분말화하는 동안, 작동 완료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조드 장군 쪽은 결국 전원 궤멸당하고 만다.

조드 장군의 본명은 ‘조두 장군’

이에 필자는 조드(Zod) 장군의 본명이 조두(鳥頭) 장군임을 확신하며, 그 안타까운 지능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담아, 그가 미국이 아닌 한국, 그중에서도 강원도 평창으로 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다. 뭔 소리냐.

얼마 전 필자는 평창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런데 필자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은커녕 그 일대의 산과 숲이 각종 공사로 시뻘건 흙더미가 되어 덤프트럭에 실려나가는 모습만 끝도 없이 목격해야 했다. 뭐, 겨울올림픽 개최지 선정 소식을 못 들은 것도 아닌 마당에 평창으로 휴가를 나선 내가 잘못했지만, 모처럼의 휴가를 망칠 수만은 없었던 필자는 타조처럼 그런 풍경이 안 보일 법한 장소를 찾아헤맨 끝에 간신히 해발 800m 고갯마루에서 울창한 숲길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안으로 채 몇 걸음 들어가지도 않아 건너편에서 가죽 벗겨진 산의 시체가 아이맥스 스크린처럼 펼쳐진 호러무비스러운 광경을 보아야 했다.

포클레인의 팔뚝 소리와 덤프트럭의 후진 경보음만이 음산하게 메아리치던 그곳을 빠져나와,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께 물으니 그곳은 최근 허가가 난 시멘트 회사의 채석장이란다. 필자는 사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가 됐으니 장사도 잘되고 좋지 않으냐.” 아주머니는 “보름 잔치 하자고 자기 살 발라 파는 게 어떻게 좋겠느냐”며 벌컥 화를 냈다. 킁, 왜 나한테 그러신담. 어쩌면 그녀는 필자 뒤에서 ‘저탄소 녹색성장, 숲이 희망입니다’를 목 놓아 부르짖던 산림청의 대형 표지판을 향해 화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드 장군이여, 안심하라. 이 아주머니 같은 인류는 결코 이곳의 대세가 아니다. 이곳은 ‘세계 속의 한국’ ‘관광 인프라 확충’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구호를 앞세워, 숲을 깎고 자르고 분쇄함을 주특기로 삼는 사람들, 즉 니네 편이 확실하게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아무리 지구인이 크립톤인보다 열등하다 해도 그렇지, 그렇게 울창한 숲을 한 방에 흙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고? 어허, 속고만 살았나. 이곳은 심지어 떼돈 들여 멀쩡한 강을 뒤엎은 뒤 바위와 아스팔트로 강변을 도배해버려도, 그리고 그 유지·보수·복구에 몇 배의 돈을 더 쓰게 해도, 정작 그 주모자들은 일전 한 푼 안 뱉는, 아니 오히려 한몫 쏠쏠히 챙기는 곳이다.

몇 마디 말만 준비하면 끝

그러니 조드 장군이여, ‘월드 엔진’ 돌리기 같은 무식한 고탄소 회색성장 행위는 이제 그만두고, 간편히 말로 하자. ‘대의민주주의 통해 적법하게 획득한 권력에 근거한 정당한 통치 행위’같이 뭔가 있어 보이는 몇 마디와, 뮌헨 같은 곳에서는 웬일인지 팔 걷어붙이며 거부하는 ‘경제적 파급효과’ 같은 신경안정제 몇 마디만 준비해두면 된다.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니냐고? 아서, 그렇더라도 절대 위축되지 말고 반복 또 반복하라. 그러면 오늘도 삽질 한 건 올리기에 여념 없는 이 땅의 수많은 조두들이 근면성실꼼꼼하게 알아서 뒤처리를 해줄 것이니. 그러니 조드 장군이여, 평창으로 오라!

한동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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