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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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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교육의 풍경

등록 2012-08-21 16:23 수정 2020-05-03 04:26
#감옥에서 보낸 편지-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는 학교에서 ‘때리는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에 따라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개정 2011년 3월18일) 비록 교육과학기술부는 기합, 얼차려 등 ‘굴리는 체벌’을 하라 하고, 또 금지돼 있는 ‘때리는 체벌’에 대한 지도·단속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며 사실상 체벌을 조장하는 형편이지만 말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 광주, 서울 세 지역의 교육청, 그리고 그 밖의 몇몇 교육청만 제대로 된 체벌 금지에 의지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여러 학교에서 체벌이 일어나고, 법령으로 금지된 ‘때리는 체벌’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개인에게 전가된 비용

나는 학교 체벌 문제에서 교사들도 일종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교사들도 대체로 때리는 일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자기 직무를 잘 수행하려면 폭력을 쓰라는 유혹 또는 압력을 받는다. 많은 학급당 학생 수, 학생들의 동기나 욕구를 무시하는 일방적인 수업 방식, 다수 학생들에게 무의미하거나 괴롭게 느껴지는 입시, 경쟁 중심의 교육 등의 상황에서 폭력 없이 학생들이 교육에 참여하고 ‘말을 듣도록’ 하기 어려워도 이상할 게 없다.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해선 안 되겠지만, 한국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교사 개인의 부담, 그리고 학생들의 고통으로 전가해온 현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체벌을 대신한다며 널리 도입되고 있는 상벌점제도 성격이 그리 다르지 않다. 신체적 폭력보다 좀 덜 비인간적일 순 있어도, 교육의 구조와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점수와 징계로 통제하고 퇴출하는 방식이다. 체벌과 상벌점제의 공통점이자, 상벌점제가 체벌을 대신할 것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싸게 먹히는 방법’이라는 점일 듯하다. 시설이나 전문인력을 위해 예산을 들일 필요가 없고, 경쟁적 환경이나 교육 방식을 바꾸려고 어렵게 연구를 하고 의견을 모으고 공을 들일 필요도 없다. 나는 체벌과 상벌점제에서 ‘값싼 교육’의 풍경을 본다.

때로는 학생인권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우리 사회가 공적으로 교육에 돈 쓰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습권, 건강권, 문화적 권리, 자치와 참여의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예산이 드는 인권의 내용은 많다. 하다못해 인권 교육이나 침해 구제에도 적잖은 돈이 필요하다. 혹시 그런 돈이 쓰기 싫어서, 학생들에게 돈 쓰기 아까워서 학생인권을 열심히 반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꼭 필요한 복지정책도 돈이 아까워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의심은 더욱 커진다.

값싼 공교육=비싼 사교육

당연하게도 값싼 교육 때문에 내야 하는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공적으로 값싼 교육이란 것은 사적으론 비싼 교육이란 뜻이고, 그래서 사교육비나 대학, 고교 교육비 부담도 크다. 학생과 교사의 행복이나 인권도 희생당하는 비용이다. 체벌과 상벌점제의 부작용으로 학습되는 폭력성, 비윤리적·비민주적 문화, 또 늘어나는 학생 퇴출로 청소년들이 겪는 고통의 비용도 큰 문제다. 우리 교육이 처한 교육 불가능의 상황이나 빈발하는 사학 비리 등도 ‘값싼 교육’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비싼 투자’를 하고 사람들은 값싸게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교육은 진정 요원한 일일까?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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