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난 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자전거 가게 유리창을 깨뜨린다.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자전거 가게 주인에게 가서 사과를 하고 충분한 배상을 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한 것. 문제는 피해자인 가게 주인이다. 당연히 허허 웃으며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이고 유리창값도 한 번쯤 점잖게 사양하는 게 마땅한데도 이 사람은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그 아이를 비롯한 말썽꾸러기들이 날이면 날마다 가게 앞에서 축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러’ 가게를 향해 공을 날렸다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잔소리에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굳어진다.
사촌형과 함께 노숙자를 살해한 아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게 주인의 속 좁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원래 사과란 용서가 보장되는 행위가 아니다. 아버지로서는 속이 상하더라도 참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헤르만 코흐의 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조금 다르다. 죄책감에 바닥만 쳐다보는 아들을 바라보던 그는 가게 주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이, 잠깐만. 그 아가리 좀 닥치지 그래!”
깜짝 놀란 주인이 뭐라고 했느냐고 되물으며 계산대 뒤에서 뛰쳐나오려 하지만 아버지는 한발 더 나간다. 가게 안에 있던 자전거펌프를 집어들고 목소리를 내리깐 채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냥 거기 있는 게 좋을 텐데. 더 이상 유리창 깨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가게 주인은 갑자기 존댓말을 쓰며 진정하시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유리창값을 계산대 위로 던지고 가게를 나선다.
집에 와서, 정말 그 아저씨를 때릴 생각이었느냐고 묻는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내 말 잘 들어, 미헬. 그 아저씨는 신사가 아니야. 그냥 쓰레기 같은 작자야. 축구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쓰레기일 뿐이지. 아빠가 정말로 자전거펌프로 그 녀석의 머리통을 갈기려고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아이는 세상에는 ‘인간쓰레기’가 존재하고 인간쓰레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머리통을 갈길 만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아버지의 교육은 계속 이어진다. 사형제도에 대해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써야 할지 물었고, 과제물에는 “사형제도는 비인간적인 것이지만 아주 질이 나쁜 인간 말종들은 경찰관이 ‘실수로’ 뒷머리에 총을 쏘거나 창문 밖으로 내던져도 괜찮다”라는 내용이 들어간다. 아들에게만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역사 교사인 아버지는 학교에서 2차 대전에 대해 수업을 하며 학생들에게 전쟁의 희생자라고 해서 누구나 억울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자식한테 호통만 치는 부모, 되지도 않는 자기 이야기를 줄기차게 떠들어대는 사람, 심지어 심한 구취 때문에 주변 사람을 괴롭히며 해결할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희생자 명단에 올라가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계속 그런 교육을 받은 아들은, 어느 날 사촌형과 함께 노숙자를 살해한다.
사건은 우연히 일어났다. 10대 후반의 사촌형제는 학교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는 길에 맥주를 한잔 마시기로 의기투합한다. 맥주 살 돈을 찾으러 현금자동인출기 부스에 들어가려던 그들은,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한다. 부스 안에서 노숙자가 침낭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노숙자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악취에 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뛰어나온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치 있는 것
함께 있던 친구가 다른 현금인출기로 가자고 했지만 형제들은 거절하고 다시 들어가서 노숙자를 깨운다. 처음에는 조심스레 비켜달라고 말을 했지만 잠에서 깬 노숙자가 욕설을 하자 아이들의 표정이 변한다. 더구나 침낭 안에서 나온 노숙자는 뜻밖에도 여자였다. 겁을 낼 이유도 없다. 아이들은 점점 잔인해지기 시작한다. 노숙자에게 쓰레기를 집어던지다 결국 빈 석유통과 함께 불을 켠 라이터를 던진다. 장난에 가까운 행동이었는지 혹은 정말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석유통은 폭발했고 노숙자는 죽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명백하다. 그 노숙자는 쓰레기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용해야 하는 현금인출기 부스를 차지하고 잠을 자면서 비켜달라는 정당한 요구에 욕설을 퍼붓다니. 더구나 지독한 악취를 풍기면서. 피해자에게 쓰레기를 던지며 아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더러운 거지년아! 다른 곳에 가서 자란 말이야! 아니면 일을 하든가! 일을 하란 말이야!”
아이들을 자수시키자는 형의 제안에 아버지는 이렇게 항변한다. “물론 그 애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겠죠. 하지만 그걸 인정한다고 해도 현금자동인출기 부스 안에서 사람들을 방해한 그 노숙자가 갑자기 순수한 희생양이 될 수는 없어요. …(이런 일로 벌을 받기에는) 우리 아이는 너무 지적이에요. 보통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는 영리한 아이라고요.”
물론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다. 코흐의 는 소설이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된 것일 뿐 주인공과 똑같은 아버지를 현실에서 찾기는 어렵다. 작가도 그것을 느꼈는지 책 속에서 아버지가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이런 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이익이 가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일이 정말 없을까.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도 ‘가치’나 ‘쓸모’에 따라 차등이 있다고 여기고 있지 않을까.
다른 어떤 사회보다 경쟁이 치열한 우리 교육 현장. ‘가치 있는 인간이 되자’는 교훈이나 급훈을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가치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치 있는 것 아닐까.
2011년 청소년 캠프에 총을 난사해 77명의 희생자를 낸 노르웨이의 살인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범행 직전 인터넷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은 선의로 한 것이며 이슬람계 이민자들로부터 사회와 국가를 지키기 위한 예방적 조처라고 주장했다. 그의 눈에는 유럽으로 이민 온 중동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브레이비크가 꿈꾸는 사회
그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단일문화를 가진 완전한 사회”라고 칭송했다. 물론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운 범죄자의 헛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등급을 따지고 있다면, 서울역 주변에서 대낮부터 술에 취해 악취를 풍기는 노숙자를 보고 “저런 인간쓰레기들 좀 없어질 수 없나”라고 혼잣말을 한다면, 이민 온 사람들을 우리와는 조금 다른 존재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브레이비크가 꿈꾸는 사회로 한 걸음 내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길로 계속 간다면 그 결과는 짐작하기도 끔찍할 것이다. 사람들의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할 때 벌어지는 범죄야말로 모든 범죄 중에 가장 잔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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