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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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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누구나 있는 마음속의 용의자

질투로 인한 살인 그린 추리소설 스콧 터로의 <무죄추정>
멀쩡한 사람 갉아먹다 파국을 낳는 사랑보다도 강한 감정
등록 2012-03-21 16:34 수정 2020-05-03 04:26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질투가 그것이다. 적어도 범죄와 관련해서는 사랑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는 감정이 질투다. 애정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질투에 눈먼 살인범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평생 불평 한마디 안 하고 얌전하게 살림을 하던 아내가 남편의 부정을 발견하고 갑자기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배우자의 이미 헤어진 과거의 연인에게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끼고 학대를 하기도 한다. 질투는 잘 치료되지 않는, 일종의 정신병과 같다. 멀쩡한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만든다.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여검사의 피살

질투로 인한 범죄를 그린 추리소설 스콧 터로의 <무죄추정>.

질투로 인한 범죄를 그린 추리소설 스콧 터로의 <무죄추정>.

질투는 단순한 부러움이나 시샘과는 다르다. 학교를 다닐 때는 성적이 좋은 친구에게 시기심을 느끼기 쉽다. 사회에 나와서는 좀더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한 사람을 보며 배 아파한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취미활동 경험을 늘어놓거나 심지어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면서도 나보다 재치 있는 사람을 보면 순간적으로 화가 난다. 그러나 이런 걸 질투라고 할 수는 없다. 단순히 자극을 받는 것뿐이며 그 정도의 경쟁 심리는 자기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질투란, 애초부터 자기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는 어떤 존재에 대해 느끼는 강렬한 미움이다. 어떤 사람에게 일단 질투를 느끼면 그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하더라도 열등감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게 된다. 질투를 하는 사람은 항상 그 대상을 의식하지만 상대방은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감정은 예기치 못한 비극을 낳는다. 스콧 터로의 은 질투로 인한 범죄를 그린 추리소설이다.

킨들 카운티라는 가상의 도시 검찰청에서 근무하던 매력적이고 능력 있고 야심을 가진 여검사 캐롤린 폴 히머스가 집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끈으로 목이 묶이고 성폭행을 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가 아니었다. 목을 묶기 전에 이미 둔기로 머리를 내리쳐서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피해자의 몸속에서 발견된 범인의 정액은 더욱 기이하다. 피임약 성분이 섞여 있는 걸로 나타난 것이다. 성폭행범이 피임약을 사용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피해자를 잘 아는 누군가가 합의하에 섹스를 하고 그녀를 죽인 것이다.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려고 마치 묶인 채 성폭행을 당한 것처럼 위장한 게 분명했다.

사건이 일어난 때는 마침 킨들 카운티의 검사장 선거를 목전에 둔 시기다. 선거 유세에 바쁜 검사장은 차장검사인 러스티 사비치에게 이 사건 수사를 맡긴다. 소속 검사가 살해당했으니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중요한 사건이고, 따라서 검찰청의 2인자에게 배당을 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과 함께 범인을 찾아나선 사비치는 자신과 관련된 몇 가지 사소한 사항을 조사하지 말아달라고 경찰관들에게 부탁한다. 예를 들면 캐롤린의 전화 통화 내역을 확인할 때 사비치의 집 전화로 걸려온 통화 내역은 찾아보지 말라는 식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캐롤린이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 유부남인 사비치는 그녀와 연인 관계였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범죄와 관련해서는 사랑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는 감정이 질투다. 영화 <해피엔드>의 포스터.

범죄와 관련해서는 사랑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는 감정이 질투다. 영화 <해피엔드>의 포스터.

존재하지만 쳐다보려 하지 않는

그런데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비치에게 불리한 증거가 속속 나타난다. 캐롤린의 집 테이블에 놓여 있던 유리잔에는 그의 지문이 찍혀 있었다. 범인의 정액에서 확인된 혈액형은 사비치와 같은 A형이다(이 책이 나온 1987년까지만 해도 DNA 감식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집 전화로 캐롤린과 통화한 사실을 감추려 했다는 점, 성관계가 합의하에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 겹치며 사비치는 점점 강력한 용의자가 돼간다. 마침 검사장 선거에서 사비치의 상관이 낙선하고 정적이 당선되자 사비치는 살인죄로 기소된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에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저자 스콧 터로는 법률가답게 끔찍한 살인사건에 정교한 증거법 규칙과 미묘한 법조윤리 문제를 버무려서 품위 있는 추리소설을 만들어냈다. 그가 쓴 소설 몇 편을 읽으면 웬만한 영미법 해설서를 읽는 것보다 미국의 사법 절차에 대해 더욱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건 그런 것보다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 질투심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기 때문이다.

캐롤린을 살해한 것은 사비치의 아내인 바바라다. 수학을 전공하고 내성적인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인 사비치의 대사를 보면 그녀가 무엇을 느꼈을지 바로 알 수 있다.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사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바바라와 잠자리를 같이한 게 거의 20년이 되어갈 즈음에는 더 이상 그녀 혼자하고만 잠자리에 드는 것이 아니었다. 5천 개의 다른 성교들, 내 마음에 떠오르는 더 젊은 육체들, 우리의 생활을 떠받쳐주며 둘러싸고 있는 온갖 것들에 대한 걱정들.” 그에 비해 사비치에게 캐롤린은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진귀한 어떤 것”이었고, “조용한 가정생활을 위해서 종잡을 수 없는 충동들을 억눌러온 17년간의 성실한 결혼생활 끝에 여기 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캐롤린이 떠난 뒤 어느 날 사비치는 바바라 앞에서 엉엉 운다. 아내가 캐롤린의 것과 똑같은 술잔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여자에게 버림받고 와서 자기 앞에서 우는 남편을 보고 바바라는 남편에게 애인이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는다. 자기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는 존재. 캐롤린의 집에 있던, 사비치의 지문이 찍힌 술잔은 바바라가 가져다놓은 것이었다.

사비치는 결국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된다. 애초에 바바라의 목표도 남편을 살인범으로 몰아 처벌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느낀 좌절과 절망을 남편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캐롤린을 살해하고 그 몸속에 피임 기구에서 추출한 남편의 정액을 넣는 바바라의 모습을 상상하면 질투가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순간적 격정에 의한 살인’ 형량 감경

영미법상 살인죄의 형량을 감경해주는 사유로 ‘순간적인 격정에 의한 살인’(Heat of Passion Killings)이라는 것이 있다. 이때 순간적인 격정으로 인정되는 대표적인 것이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목격한 직후에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다. 누구나 마음속에 질투심이라는 지옥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에 이런 제도를 둔 것이다. 범죄 원인을 인간의 마음속에서 찾을 때 제1의 용의자를 꼽는다면 역시 질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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