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 주연을 맡은 1973년 영화다. 복수를 위해서 갱 두목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며 한순간도 경쾌함을 잃지 않아 시종일관 미소를 띠게 만드는 영화. 누구나 다 아는 주제가가 정말 잘 어울리는 명작이다. 감독상을 비롯해 아카데미상을 7개 차지했고,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전체 관람가로 개봉했다.
<font color="#C21A8D"> 죽은 이 만나고픈 부유층 대상 사기</font>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이 영화의 국내 상영을 놓고 심각한 논란이 있었다. 범죄를 옹호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당대의 스타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 사기꾼으로 나왔다고 해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전에도 범법자나 악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범행이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은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 중 범죄자가 돈을 챙겨서 사라지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최초의 영화였던 것이다. ‘건전한 국민정신을 함양’해야 할 사명을 가진 당시의 어른들이나 언론이 보기에 용납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그럼에도 영화 상영은 허용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이 영화에서 다루는 범죄가 ‘사기’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기 사건을 바라볼 때,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서 주인공들이 사기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범죄가 가능한 것은 상대방의 탓도 있었던 것이다.
범죄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시각은 분명히 잘못됐다. 성폭행 책임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터무니없는 주장은 물론 절도 피해자에게 왜 물건을 잘 보관하지 않았느냐고 비난을 퍼붓거나, 폭행당한 사람에게 뭔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겠느냐고 묻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 하지만 실제 사건들을 접해보면, 어떤 종류의 사기에 대해서는 피해자에게도 일부 원인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 ‘원인의 일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존심이다.
제프리 포드의 는 3인조 사기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이다. 지휘자 격인 토머스 셸은 방 하나를 ‘버가토리움’(‘벌레의 전당’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만든 단어다)이라 이름 짓고 다양한 종류의 나비를 키운다. 사기를 칠 때는 입속에 감춰둔 나비를 날아오르게 한다. 조수인 디에고는 셸이 길에서 만나 데리고 다니는 멕시코 출신 소년이다. 그는 ‘인도 아대륙에서 온 영계(靈界) 학자 온두’ 행세를 한다. 운전사 역할인 안토니 클레오파트라는 거구의 근육질 사나이로, 사기를 친 뒤 있을지 모르는 싸움에서 주역으로 활약한다. 이 세 사람은 죽은 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부잣집 사람들을 상대로 영혼을 소환하는 강신술을 보여준다.
<font color="#C21A8D">자존심 강할수록 더 큰 희생자 돼 </font>
죽은 사람의 영혼이 불려나오는(?) 현장은 현란하다. 눈동자가 뒤로 돌아가고 정신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의 셸이 입을 벌리고 고통스러운 한숨을 내쉬면 그 입속에서 커다란 갈색 나방이 튀어나온다. 나방은 유족의 심장 부근에 내려앉는데, 물론 그것은 셸이 미리 몰래 설탕물을 묻혀두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눈이 나방으로 쏠리는 때를 틈타서 디에고는 재킷 아래에 매단 가느다란 호스로 미세한 수증기를 뿜어낸다. 나방이 촛불에 뛰어들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는 순간 셸의 소매 속에서 쏘아져나온 빛이 디에고의 펜던트를 때리고 수증기 막에 죽은 사람의 사진을 투사한다. 그때 먼 곳에서 들려오는 망자의 목소리. 물론 셸의 복화술이다. 그는 놀라운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추리로 유족과 죽은 사람만 알 만한 사실을 얘기한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 가족에게 얼마를 달라고 한들 거절하겠는가. 3인조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운이 상당 부분 피해자들 덕분이라고 여긴다. 일단 목표를 정할 때부터 사기를 당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을 고른다. ‘영혼을 만난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절실히 원할수록, 그리고 자존심이 강할수록 훌륭한 희생자 후보가 된다. 3인조에게 당하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는 나머지 속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일단 한번 거짓말에 넘어가면 그다음부터는 식은 죽 먹기다.
셸 일당은 우연히 유괴당한 소녀의 행방을 찾는 일에 뛰어들었다가 우생학을 신봉하는 세력과 맞닥뜨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인종 간에 우열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인류를 ‘개량’하려고 남매 사이에 근친상간까지 강요하는 악독한 놈들에게 쫓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 들으면 기괴한 얘기 같겠지만, 20세기 초반 우생학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이론이었다. 윈스턴 처칠, 존 메이너드 케인스, 버나드 쇼 등도 우생학 지지자였다. 그러나 우생학이란 그 자체가 거대한 사기극이고, 그 신봉자들은 얼토당토않은 이론을 철석같이 믿는 자존심 덩어리다. 셸 일당은 결국 이들을 속여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검사 시절, 대규모 다단계 사기업체를 수사한 일이 있다. 조사 과정에서 놀랍게도 이 업체에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전직 검찰의 최고위직을 지낸 사람, 유명 언론사주 등이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짜 박사인 사기범은 물의 분자구조를 바꿔 새로운 형태의 물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물을 대머리에 바르면 머리카락이 난다는 것이다. 학식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피해자들이 이런 사람에게 속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자존심이 강했던 것이다.
<font color="#C21A8D"> 진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font>
사기 피해자들은 증거를 눈앞에 보여줘도 잘 믿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속았다고 하면 마치 스스로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낀다. 피해를 입은 것이 확실해질 때의 절망적 상황을 회피하려는 마음도 든다. 사기범들은 이 틈새를 이용해 피해자를 자기 편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생학 신봉자들이 셸 일당에게 당했듯이, 스스로를 속여서 만든 믿음은 결국 무너진다. 소설 속에서 인용된 존 키츠의 시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상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오직 진실’(Beauty is truth, truth beauty- that is all Ye know on earth, and all ye need to know)이지 결코 허황된 자존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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