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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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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속 흐르는 복수는 나의 것


연인 살해당하자 복수 나선 남자, 빌 S. 밸린저 <이와 손톱>
태곳적부터 이어져오는 복수 본능이 정당화될 때는 없을까
등록 2012-03-09 16:09 수정 2020-05-03 04:26

문명은, 인류에게서 복수할 권리를 빼앗아갔다. 복수는 원래 범죄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아들이 처벌받는 옛날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복수는 의무이기도 했다. 청산해야 할 빚과 마찬가지로, 원한은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 복수는 엄연히 범죄다.

복수 금지는 언제나 정당한가

» <이와 손톱>

» <이와 손톱>

복수를 금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복수는 힘이 있는 사람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때로는 복수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과연 복수를 해도 좋을 만큼 피해를 입었는지, 복수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각자의 판단에 맡겨놓으면 극도의 혼란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사회가 법을 만들고 개인에 의한 사적인 앙갚음을 금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논리가 언제나 타당할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복수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때는 없을까. 특히 증거가 없어서든 수사기관의 실수 때문이든 법이 악인을 벌하지 못할 때, 피해자가 스스로 나서는 것을 막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핏줄 속에 복수의 본능이 태곳적부터 이어져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있을까. 정말 사랑하는 존재를 앗아간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아픔을 안겨주고 싶다는 심정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빌 S. 밸린저의 추리소설 은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물론, 복수를 결심하려면 그 이전에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빼앗겨야 한다. 따라서 은 사랑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원래 섬세한 연애심리 묘사에 최고로 강하지는 않은 장르로 알려진 추리소설답게 남자 주인공인 마술사 루 마운틴은 여주인공 탤리 쇼를 처음 만나는 장면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촌스럽다. 같이 살던 삼촌이 세상을 떠나자 혈혈단신 뉴욕에 온 탤리. 그녀는 차비가 모자라서 들고 온 짐을 택시 운전사에게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울상을 짓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우리의 주인공 루 마운틴은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아가씨가 허락한다면 제가 드리죠.” 놀란 눈으로 돌아보는 그녀. 아, 추리소설에 빠져 사는 덕후들이 꿈꿀 만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택시비를 내고 받아든 그녀의 짐은 놀랄 정도로 무겁다.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탤리의 삼촌은 동판을 새기거나 에칭 작업을 하던 제판공(製版工)이었다. 나이가 많아 실직한 그에게 조폐국 총책임자와 친구라는 의문의 남자가 접근한다. 지폐를 만드는 동판을 정교하게 만들어주면 그것을 조폐국에 보여주고 일자리를 얻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고 은퇴한 제판공을 속여서 위조지폐를 만들어보겠다는 속셈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탤리의 삼촌은 그 말에 혹해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동판을 만든다. 삼촌이 의문의 남자에게 살해당한 뒤 탤리 쇼는 그 동판을 들고 뉴욕으로 도망쳐왔다가 루를 만난 것이다.

법에 호소할 수 없는 이들의 복수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몇 달간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솜씨 좋은 마술사인 루는 탤리와 파트너가 되어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다. 그러나 탤리가 삼촌과 살던 필라델피아에 왔을 때 두 사람이 머무는 호텔로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탤리는 살해당한다. 물론 동판도 사라진다.

루는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 살해범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고 증거도 없다. 섣불리 위조지폐를 찍어내는 동판 얘기를 꺼냈다간 오히려 의심만 받을 판이다. 그는 스스로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실낱같은 단서에 매달려 범인을 찾아나선다.

» 우리가 <이와 손톱>의 주인공 루 몬타나의 절망적인 복수에 공감하는 것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누구라도 같은 일을 꿈꾸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 우리가 <이와 손톱>의 주인공 루 몬타나의 절망적인 복수에 공감하는 것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누구라도 같은 일을 꿈꾸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법에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개인적으로 원한을 갚으려는 루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사법제도를 이용해 복수를 하게 된다. 어렵게 찾아낸 범인에게 접근한 뒤 그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로 재판을 받고 처벌받게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다른 스토리가 번갈아 나오는데, 홀수 장에 나오는 재판 이야기가 바로 루가 만들어낸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이다.

첫머리에서 작가는 루 마운틴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아주 솜씨 좋은 마술사였는데도 일찍 죽은 탓에 다른 이들만큼의(해리 후디니나 더스틴만큼의)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을 성취한 인물이었다. 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셋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그것이 그가 복수를 한 방법이다.

루는, 만일 정당한 복수라는 게 있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를 가진 사람이다. 그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쇼에서 공연을 하는,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법이나 사회제도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음에도 법에 호소할 방법이 없다. 책의 결말 부분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을 만날 때 루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그의 절망적인 복수에 공감하는 것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누구라도 같은 일을 꿈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복수의 역사는 짧지 않다. 복수가 불러오는 폭력의 사슬을 깨닫고, 그것을 막으려고 법원을 만든 것도 오래전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의 대표작 는 바로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트로이전쟁에 나가던 아가멤논은 여신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으로 역풍이 불자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아가멤논의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딸을 죽인 남편에 대한 분노로 떨다가 승전하고 돌아온 아가멤논과 그가 데려온 카산드라를 살해한다. 그녀는 전혀 후회 없이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가멤논의 아들인 오레스테스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정부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아들아”를 연발하는 어머니마저 죽이고 만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신 아테나가 주재한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유죄와 무죄로 나뉜다. 양쪽의 표가 똑같이 나오자 캐스팅보트를 쥔 아테나는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그리고 그때 최초로 창설된 법정이 영원히 피의 복수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복수에 공감하는 우리들

복수의 시대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절에 끝났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로 원한을 갚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과연 복수는 우리의 핏줄 속에 흐르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는 복수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 에서 코로스는 이렇게 노래한다. “슬퍼하고 슬퍼하라. 하나 결국에는 선이 이기기를!” 루 마운틴의 복수를, 과연 선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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