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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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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의 고통 옆으로 다가가 눕다

중앙대병원 종양협진클리닉 전담간호사 임규복씨…

힘든 업무에도 환자 상태 호전되면 행복하다는 속 깊은 서른 살의 꿈
등록 2011-03-24 15:02 수정 2020-05-03 04:26

더디게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는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 그러니까 ‘남의 돈 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았다. 또 세상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성실히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규복(30), 그녀는 서울 동작구 중앙대병원 종양협진클리닉 전담간호사다. 8년째, 아침저녁 출퇴근도 아닌 3교대 근무를 해오고 있다. 그녀는 늘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자고 하니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들과 짠 것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자신은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그러나 그녀를 만난 뒤, 이 말은 겸양의 표현임을 알게 됐다. 이젠 당신이라면 충분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를 속이고 간 간호대학

“간호사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예전에는 숫기도 없고 말도 별로 없었거든요. 싹싹하고 그런 간호사 이미지랑 다르니까요.”
예전 그녀는 어땠을까?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의 그녀는 야무지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분명하다. 숫기가 없던 그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자연계열(이과)이었다. 흔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이과 계열을 택했다. 그녀도 공부를 곧잘 했다. 그런 그녀가 간 곳이 3년제 간호대학이다.
“그때 한창 취업난이었잖아요. 임상병리사, 간호사 같은 병원 일이 전망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0년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가 가시기 전이었다.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었고, ‘평생 직장’ 개념이 깨졌다. 당시 분위기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취업률이 높다고 여겨지는 전공에 사람이 몰렸다.

» 임규복씨는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암환자와 함께한다. 지난 3월15일 임씨가 병실에서 환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 임규복씨는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암환자와 함께한다. 지난 3월15일 임씨가 병실에서 환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원래는 생명공학 분야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솔직히 그쪽 전공으로 4년제 대학 원서를 썼어요. 전문대는 간호대학 하나 쓴 거고. 4년제 대학도 붙었는데, 붙고 나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그쪽으로 가서 나중에 연구소라도 들어가려면 석·박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럼 6년? 길게는 10년까지 걸릴 수 있는데, 집에 그렇게 오래 부담을 줄 수는 없더라고요. 엄마한테는 (4년제 대학에) 떨어졌다고 하고 간호대학에 갔어요.”

얼마 뒤 그녀의 거짓말이 들통났다. 집에 합격통지서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큰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여자가 하기에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여자가 나이가 들어도 경력을 인정받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이 사회에 별로 없다. 한창 꿈을 부풀릴 20살 때, 이미 그녀는 먹고사는 일이 꿈처럼 수월치 않음을 알고 있었나 보다.

“그때 벌써 철이 들었군요.”
“제가 장녀거든요.”
그 한마디 말로 정리한다. 나는 물었다.
“예상치 않은 길이었는데, 지금은 간호사가 되길 잘한 거 같아요?”
그녀는 틈을 두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들에게 ‘똘똘이 간호사’라고 불린다는, 내가 모르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2004년, 그녀는 중앙대병원 내과 병동에 입사했다. 처음 경험한 병원 생활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병원에 들어가고 3년은 기억이 잘 안 나요. 바쁘고 병원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어서요.”
무슨 일을 하느라 기억도 안 날 정도일까? 그러나 바삐 업무를 보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병원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드라마에서 본 몇 장면이 전부다.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잠이 부족해 벌건 눈을 한 의사들이 회진을 돌고, 진료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항암치료의 비명으로 가득한 병실

“간호사 하면 주사 놓는 것만 떠올리는데, 그 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간호사 업무는 케어(care)라고 배워요. 돌봄이죠. 의사는 완치를 목적으로 큐어(cure·치료)를 하잖아요. 의사가 질병 자체를 본다면, 우리는 사람을 보는 거예요. 정서적인 지지를 해주는 거죠. 작게는 병실에 가서 환자 손 한번 잡아주는 것도 우리 일이에요. 하지만 병실보다는 오히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아요. 환자 상태에 대해 기록하고, 케어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나 기획안도 올려야 하고. 자잘한 일도 많죠. 환자 상태를 기록하는 작업만 해도 기록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환자한테 몇 시에 무슨 시술을 했는지는 당연하고, 혈압·맥박·체온·호흡수까지 기록에 남겨야 해요.”

“일이 많군요.”
“간호사 인력이 적어 그런 것도 있고. 게다가 요즘은 환자들의 요구도가 높아져 일이 더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병원이 치료하는 곳이었잖아요. 요즘은 사람들이 병원을 서비스하는 곳이라고 인식해요. 의료 서비스라고 생각하니까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되죠.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보다 환자 대하기가 힘든 것도 있어요.”
“심한 요구를 할 때도 있어요?”

“자잘한 걸 시키는 거죠. 컵에다 물 떠오는 일 같은 거? 해줄 수는 있어요, 환자니까. 하지만 그런 거 다 해주기에는 다른 업무가 많죠.”
3교대로 24시간 병동을 지키는 간호사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는 엄살을 부릴 줄 모르는 성격인 것 같다.
“몸이 피곤해도 오히려 병원에 나오면 안 아픈 거 같아요. 나보다 훨씬 아픈 사람들을 보니까 오히려 내 병에는 둔해진다고 할까요?”

늘 아픈 사람을 본다. 게다가 그녀가 있는 대학병원 내과는 암질환 치료로 유명하다. 그녀는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암환자들과 함께한다. 악성종양인 암은 흔히 죽는 병이라고 한다. 항암치료는 중도에 포기하는 환자가 있을 정도로 고되다.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살려내라고 고함이 오갈 것만 같은 병실. 그녀는 이번에도 덤덤하다.

“거의 몇 달씩 항암치료 받으면서 지내는 환자가 많아요. 환자랑 보호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씻고, 전자레인지로 간단히 밥해먹고, 그렇게 사는 곳이죠. 오래 보니까 오히려 가족 같은 분위기죠. 아플수록 사람들은 서로 챙기게 되는 거 같아요.”

병원은 그녀의 일터이자 의료 공간이지만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살아가는 생존, 아니 생활 공간이다. 그 속에서 그녀도 그들과 같이 일상을 보낸다. 우리에게는 어색한 것이 그녀는 익숙하다. 항암치료 환자의 민머리가 더 눈에 익고,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회복된 환자들이 긴 머리를 하고 오면, 어색해서 자꾸만 흘깃거리게 된다는 그녀다.

그러나 일상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병환 끝에 목숨을 빼앗기는 곳이다. 죽음도 익숙할까?
“사람이 죽는 걸 병원에 처음 출근하자마자 봤어요. 처치실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있는 거예요.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나중에는 일이 바빠지니까, 환자가 떠나도 별 감정이 없더라고요. 해야 할 사망 처리 업무가 많거든요. 그걸 할 생각에 조급하기만 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빠 돌아가시고, 그때부터인 것도 같은데….”

암환자를 위해 시작한 공부

그녀의 아버지는 4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떴다. 아버지 생각에 암환자들에게 더 신경이 쓰인다고 그녀는 흘려 말했다. 그녀가 22살 때,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 근무를 시작한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신입 간호사로 일이 서툴러, 환자에게 빌며 대여섯 번씩 주사를 놓던 때였다. 아버지는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암은 재발 뒤 급격히 악화되는 병이다.

“아빠가 그렇게 된 뒤부터인지, 입사 3년이 지나고 여유가 생겨서인지 눈물이 나는 거예요. 고인이 누운 곳을 깨끗이 해놓는 것도 간호사 일이거든요. 처치하느라 피가 튀고 그런 걸 가족이 보면 속상하잖아요. 시트 갈고, 돌아가신 분 옷 갈아입혀드리고, 이걸 예전에는 후배들한테 맡겼는데, 요즘은 다른 업무가 늦어지더라도 내가 해요. 하게 되더라고요. 그럼 울컥할 때가 있어요.”

몇 년씩 얼굴을 보고 지낸 이가 죽는다. 이제 다 나았다고 인사를 온 사람이 갑자기 병이 악화된다. 잦은 죽음을 만나며 지치지는 않을까?

“멀쩡하게 내시경 받으러 왔다가 암 진단 받고 바로 입원하고 그러거든요. 항암치료가 진짜 힘들어요. 약도 독하고 면역력을 뚝 떨어트려서. 그렇게 힘들게 치료받고 결과가 안 좋은 거 보는 게 힘들죠. 내가 아는 게 없어서 저 환자에게 더 해주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조금 더 잘 알면 환자들한테 설명도 더 해주고, 안심시켜줄 수 있는데….”

그래서 그녀는 공부를 한다. 병원 근무를 하면서 평생교육원을 통해 4년제 학사 자격을 취득했다. 지금은 중앙대 대학원에 다닌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종양협진(협동진료)클리닉 전담간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전문간호사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전문간호사는 국가로부터 인정된 자격을 얻어 상급 실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다. 그녀는 전문간호사를 꿈꾸는 이유를 ‘권위’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간호사 3~4년이면 웬만한 레지던트 1~2년차보다 훨씬 더 넓게 환자 상태를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의사에게 간호사는 여전히 동료라기보다는 어시스트로 인식돼요.”

그녀는 권위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의사 처방이 떨어지면 간호사가 무조건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니에요. 의사도 사람이라 처방을 잘못 내는 경우가 있거든요. 필요한 약 처방이 안 됐거나, 불필요한 검사가 들어갔을 때 의사 선생님한테 가서 묻는 거죠.”
“말을 하면 의사가 처방을 고쳐요?”
“많이들 고쳐줘요. 그런데 간혹 처방에 이의를 제기해도 오더(order)대로 하면 되지 뭘 그러냐고 하는 의사가 있어요. 그럴 때는 더 얘기를 못하죠. 간호사의 자리는 코멘트까지니까, 받아들이는 건 의사 몫이고.”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다. 차분한 그녀로서는 나름대로 격한 반응이다.
“전문적인 권위가 부여되는 게 바로 전문간호사죠. 외국에는 처방권이 있는 간호사가 있어요. 아직 우리는 초기 단계지만.”
규복씨는 욕심을 부린다. 레지던트 4년차에게 “수간호사, 어디 있느냐”는 소리를 듣는 게 간호사의 현실이다. 보조적 업무로 인식되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그녀가 말하는 권위, 즉 전문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녀는 애쓴다. 비슷한 또래로서 걱정돼 물었다.

“개인 시간은 있어요?”
“개인 시간? 시간 나면 환자들하고 친해지려고 병실 들어가고, 후배들 데리고 밥 먹고 술 마시면서 병원 생활도 물어보고요.”
질문을 달리했다.
“어떨 때 행복해요?”
“밥 한 숟가락 먹던 사람이 두 숟가락 먹을 때? 앉아만 있던 사람이 서서 걸을 때 좋아요. 진짜 좋죠, 환자 상태가 좋아지면.”
“내가 조금 더 잘 알면….” 규복씨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3교대 근무로 인해 친구와 약속 한번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만나는 것조차 힘든 시간 동안 규복씨는 자신의 영역에서 관계를 만들고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보조적 역할 너머의 자부심

나는 그녀 앞에서 설레발을 떨었다. “어떻게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까지 해요? 전담간호사면 혼자 그 클리닉 일을 다 하는 거예요? 대단하네요.” 그녀는 영 재미없게 “멘토 선생님이 조언해줘서 공부하게 된 거예요. 생각보다 안 힘들어요. 운이 좋았어요”라고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종양협진클리닉이 뭔지, 전담간호사가 뭔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을 버벅거리며 따라가다 물었다.

“그러니까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죠?”
규복씨는 인터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을 칭찬했다.
“나는 자부심을 느껴요.”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글 희정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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