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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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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 vs 정교분리

등록 2011-03-11 14:41 수정 2020-05-03 04:26

그때 산에 올라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코끝으로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저 무변광대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생각했다. 저 시간의 처음의 이전, 그 이전의 이전, 저 공간의 끝 너머, 그 너머의 너머… 어쩔 수 없이 시작과 끝을 인식의 틀로 가진 인간의 사고능력으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무한과 신비의 시공간에 생각은 되풀이해 걸려 넘어지곤 했다.

또한 그 어느 때는 오묘하기 이를 데 없는 생명의 신비를 궁금해했다. 진화론이 합리적이라고 여기지만, 억겁의 시간을 거치며 전진해온 생명의 진화를 긍정하지만, 그러면서도 기기묘묘한 수만 가지의 생물종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생식세포와 유전자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다시 걸려 넘어지곤 했다.

오래전 슬프게 이별했던 신의 이름을 새삼 떠올리고, 종교가 지닌 엄숙한 힘에 대해 고개를 숙이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잔인하리만치 이기적인 셈법에 지배당하는 세속의 일상을 털고, 이 짧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대비되는 영원의 시간성과 생명의 존엄성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두말없이 그것은 종교적 체험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조직이요 시스템이 돼버린 종교(기관)에서는, 내 게으름 탓인가, 그런 엄숙한 힘을 만나기 어려웠다. 근래 들어 종교가 존재감을 갖고 다가오는 건 오히려 세속적 일상, 특히나 정치와 만났을 때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 논란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무릎 꿇은 기도가 그런 경우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우리 헌법은 그 답을 주고 있다. ‘제20조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그런데 이 두 조항은 묘하게 충돌한다. 수쿠크법이 개신교계의 반발로 무산된 것이나 이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애처롭게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①개신교계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주장할 자유와 이 대통령이 자신의 종교에 따른 예배 행위를 할 자유를 누린 것이면서 ②종교적 이유로 국가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어기고, 국가원수로서 지나치게 특정 종교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 통합을 저해한 것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사례들이 있다.
교회 십자가의 불야성 조명 탓에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시민이 정부에 하소연을 했는데,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서 교회 십자가는 기념물·상징물로 보아 옥외광고물로 규정할 수 없고 따라서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①교회는 그 종교적 상징인 십자가를 장식할 자유를 가진다. ②정부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교회 십자가 조명을 종교 영역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사례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대신 옥살이를 한다. ①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그들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가진다. ②국가는 이들의 병역거부를 종교 영역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
앞의 두 사례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한쪽에 대해선 ‘특별 대우’가 이뤄지고 있고, 한쪽에 대해선 ‘특별 대우’가 부정되고 있다. 같은 논리가 다른 결과를 낳은 셈이다.(양심적 병역거부가 꼭 종교적 이유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이는 종교의 자유와는 다른 인권적 차원에서도 다뤄져야 한다는 점은 여기에서 잠시 제쳐두자.)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두 원칙이 파생시키는 이런 복잡한 충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국 포덤대학 로스쿨의 애브너 그린 교수는 이런 논리를 제시한다. 정책 결정이나 입법 과정에서 종교적 논거는 배제돼야 한다. 그러면 종교인들은 정치 과정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투영시키는 기회를 잃게 돼 비종교인에 견줘 불이익을 당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그 반대급부로, 종교가 배제된 정치적 과정을 거쳐 나온 법률이나 정책을 집행할 때 이로 인해 치명적인 종교적 상처를 받게 되는 이들에게는 일정한 면책을 줘야 공정하다. 그들은 정책 결정이나 입법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애초부터 잃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린 교수의 논리를 따르자면, 교회 십자가 조명이든 양심적 병역거부든 그것을 금지·처벌하는 게 치명적인 종교적 상처를 주는 일이라면 법 적용에서 면제를 해줘야 한다.
수쿠크법은? 종교적 논리를 배제하고 법을 통과시키되,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이슬람 채권을 사고팔지 않을 자유를 주면 되는 게 아닐까.(물론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도는? 답은 독자의 탁견에 맡긴다.


번거로운 논리는 지워버리자. 정치는 세속의 갈등을 (때로는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 조정하는 일을 하고, 종교는 그런 갈등 따위는 아예 풀어헤치고 지친 영혼을 영원과 생명의 고귀함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종교가 정치에 얽혀드는 꼴사나운 사태가 발생한다면, 거기에 연루된 종교(기관)는 돌이켜 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나.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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